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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원로 교수들의 친일행적을 비판했다가 재임용에서 탈락, 6년이 넘는 법정 투쟁 끝에 복직한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는 학교측으로부터 해직기간 동안 밀렸던 임금과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30일 서울지방법원이 서울대로 하여금 지급하도록 판결한 돈은 김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해 해직됐던 1998년 9월 1일부터 복직된 2005년 3월 2일까지의 밀린 임금 3억2000여만원과 위자료 5000여만원 등 모두 3억7100만원이다.

김 교수는 "그 돈은 최소한의 보상일 뿐"이라며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은 아무리 많아도 적은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동안 이룰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그동안 화병으로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며 복직투쟁 기간 겪은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당장 김 교수가 밀린 임금과 위자료를 받아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서울대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공동대책위 교수님과 학생들, 시민사회 등 학내외 많은 분들이 지켜봐 주셨다"고 감사를 표했다. 특히 "끝까지 취재해서 보도한 언론의 힘이 컸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은 나왔지만 김 교수의 복직투쟁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대학측이 '미안하다, 욕봤다'는 사과와 위로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1998년 잘못된 재임용 탈락에 대한 학교측의 사과가 없었음을 지적했다.

또 김 교수에 따르면 그의 천막강의를 돕던 한 미대 대학원생이 괘씸죄로 졸업을 못할 위기에 있고, 김 교수는 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정운찬 전 총장이 퇴임기자회견에서 김 교수 사건을 언급하면서 "미대 교수들이 다 싫다고 하면 학교를 떠나는 것이 맞다, 교수 사회는 어느 정도 '도제식 관계'가 유지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 발언을 강력 비판했다.

김 교수는 "자유로운 연구와 성찰 보다는 서열화된 가족중심주의, 예를 들어 나이 든 교수와 젊은 교수,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위계화된 폐단들이 현 대학 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라며 공기관의 수장이 자리를 퇴임하면서 '교수사회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그런 것을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것은 적절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친일 미술가들과 그들이 남긴 작품에 대한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온 김 교수는 조부(이병도 박사)의 친일이력으로 취임 당시 논란을 겪은 이장무 신임 서울대 총장에 대해 "연좌제적 시각으로 봐선 안된다"면서도 "이 총장이 서울대의 역사적 정체성을 다져나가는 노력 의지를 표현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와의 일문일답.

"3억7100만원은 최소한의 보상...화병으로 죽지 않은 것 감사한다"

▲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 해직부터 복직까지 밀렸던 급여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났다.
"아직 임금이 지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냉정하게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재임용 탈락 사건들의 전례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대학교원 기간임용제 탈락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같은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밀린 임금이나 위자료 같은 부분이 명시가 안됐기 때문에 이번 소송을 거쳐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됐다고 본다. 엉성한 제도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이고, 복직소송과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한 소송을 거치며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버거운 부분이 많았다.

이 판결이 나오기까지 학내외 많은 분들이 지켜봐 주셨다. 공동대책위 교수님과 학생들, 시민사회, 특히 끝까지 취재해서 보도한 언론의 힘이 컸다. 이 사건 이전만 해도 재임용 탈락은 그저 교수가 자격이나 실력이 없기 때문이려니 했다. 하지만 언론들의 끊임없는 보도로 대학의 부조리와 부당한 교수 재임용 탈락이 어떤 식으로 조직적으로 이뤄지는지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 이번 판결로 더 이상의 소송은 없나?
"학교가 법원판결에 불복해 고등법원에 항소하면 과거에 그랬듯이 또 소송이 장기화되리라 본다. 그러나 작년 3월에 정운찬 전 총장과 양해각서까지 체결해 복직했는데 설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정 전총장은 복직 논의가 있던 작년 2월에 밀린 임금까지 보상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그러나 결국엔 말과 달리 소송을 통해 법원이 판단을 해준 셈이 되었다. 이젠 소송에서 벗어나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고 싶다. 이번 판결을 통해 당시 미대 인사위원회, 대학본부 인사위원회, 서울대 총장이 직무상 위법행위를 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증명됐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잘못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대학측이 '미안하다, 욕봤다'는 사과와 위로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잘잘못의 책임소재가 명백히 가려진 지금, 시치미 떼고 돈은 국가배상으로 처리하면 그뿐이라고 하는 것은 뻔뻔한 일이다.”

- 해직 이후 6년 6개월 동안 월급 없이 투쟁해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지급 판결이 난 3억7100만원으로 만회가 되는가.
"그동안의 손해에 대해 그 돈은 최소한의 보상일 뿐이다. 이런 건 얘기 자체가 안된다. 그 과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 저 사람 이번에 소송으로 돈 생겼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은 아무리 많아도 적은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동안 이룰 수 있었던 것들이 많았다. 화병으로 죽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천막강의 돕던 학생 괘씸죄 걸려 졸업 못할 위기...주시하고 있다"

- 아무래도 천막강의 때보단 복직 뒤가 연구하기는 훨씬 나을 것 같다.
"당연하다. 천막강의 기간은 마치 '유배지에서의 연구'였다고 할까. 13학기 동안 <디자인과 생활> 무학점 강의를 하며 학생 가르치는 일을 이어갔는데,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그 부분을 ‘근로의 연속성’ 차원에서 인정해준 것 같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어쩌면 국립대라 가능했는지 모른다. 많은 사립대의 경우 학교측의 물리적인 방해와 폭력으로 천막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다.

무학점 강의를 위해 복직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많이 고생했다. 정상적 수강신청과 겹치는 경우도 많았고, 강의장소가 매번 바뀌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빈 강의실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대책위 학생들은 매번 강의실을 알리는 포스터를 여기저기 붙이는 일도 해야했다. 그런 식으로 천막강의를 수년간 도왔던 한 미술대학 학생이 이번에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괘씸죄에 걸려 졸업을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해 있어 주시하고 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 소송에 이겨서 복직도 하고 밀린 임금도 받게됐지만 대학측의 기본 입장은 아직도 변함없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 <교수신문>에 실린 정운찬 전 총장의 퇴임기사(7월18일자 「"누님, 왜 이러세요?"-정운찬 총장 인터뷰 후기」기사)에서 정 전총장이 내 사건에 대해 '재임 중 가장 골치아팠던 문제 중에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정 전총장은 위의 기사에서 '미대 교수들이 다 싫다고 하면 학교를 떠나는 것이 맞다, 교수 사회는 어느 정도 도제식 관계가 유지되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정 전총장은 연구와 교육하는 것 외에 도제식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일제 강점기 군국주의와 가족 중심주의 유교를 결합시킨 일제의 텐노(천황)제의 잔재라고 본다. 텐노제의 핵심이 바로 천황을 중심으로 대동단결하는 가부장적인 위계질서가 아닌가. 그것은 패거리를 만드는 데는 유용한지 모르지만 학문과 연구를 위해서는 대학 사회에서 사라져야할 잘못된 습성이라고 본다.

사람들이 우리 한국의 대학에 대해 왜 그렇게 냉소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유로운 연구와 성찰보다는 서열화 된 가족중심주의, 이는 가족끼리 밥상에 둘러앉아 서열순으로 밥숫가락을 뜨는 '밥상의 윤리'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나이 든 교수와 젊은 교수,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위계화된 폐단들이 대학 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다. 그런데 공기관의 수장의 자리를 퇴임하면서 '교수사회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그런 것을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말인가 싶다. 학문발전과 교육정상화를 위해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화할 수 있는 대학풍토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도제식 인간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
ⓒ 오마이뉴스 안홍기
"이장무 총장, 연좌제 안 되지만 서울대 역사 바로잡을 의지 표현했어야"

- 신임 이장무 총장도 조부의 친일 이력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식민사관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이병도의 손자라고 해서 이장무 총장도 안된다는 연좌제적 시각으로 봐선 안된다. 이 총장은 취임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둘러싼 친일논란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서울대를 민족의 대학, 세계 속의 대학으로 발전시켜달라는 격려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단지 '격려의 말씀'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힘들겠지만 공기관의 수장으로서 조부의 친일행적을 인정하고, 서울대의 역사적 정체성을 다져나가는 노력을 하겠다는 의지가 표현됐어야 했다고 본다."

- 단지 친일 행적이 아니라, 서울대의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차원인가.
"서울대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 중에 경성제국대학교와 연관된 곳에 재직하는 것인지, 서울대에 재직하고 있는 것인지 정체성이 희미한 분들이 있다. 서울대는 이 점을 명확히 한 적이 없다. 1946년 미군정에 의해 설립되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경성제대를 물려받아 여태껏 학교의 정체성이나 역사성에 대해 제대로 논의한 적도 없었다. '서울대'가 ‘사립’이 아니라 굳이 ‘국립’이고자 했을 때, 학교는 일반 사립대가 추구해야할 공교육의 사회적 기능에 추가해 역사적 책무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 최근엔 각종 기념관 건축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4·19민주묘지의 기념탑, 동상, 부조 등은 친일부역행위에 앞장섰던 김경승이 만든 것이다. 악질적인 친일미술가가 민주화 기념물을 만들었다는 것 뿐 아니라 많은 전쟁기념관, 5·18묘역 같은 기념관들이 과거 독재정권이 추구했던 살벌한 숭고미만을 강조하느라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본래의 취지를 덮어버렸다.

이런 기념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희생자들은 왜 죽었으며, 역사의 교훈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압적인 '공간의 어휘' 속에서 방문자들은 위축되고, 그 많은 희생들이 국가이데올로기를 강조하기 위한 또 다른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희생자 개인의 아픔은 완전히 무시되고 덮여버린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티셔츠 등 붉은악마 응원용품을 높이 평가한 적이 있는데, 2006년 월드컵 응원용품은 어떻게 평가하나.
"이번 월드컵은 2002년과는 완전히 달랐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마음이 담긴 디자인이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그랜드 디자인으로 발전했고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 응원은 완전히 인위적이고 작위적이고 조작된 것으로 대중정치 메커니즘의 못된 것들은 다 들어 있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디자인 자체만 봐도 형식화되고 딱딱하게 후퇴했다. 마음이 동해서 우러나온 문화와 형식주의에 함몰해 인위적으로 조작된 문화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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