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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자전거 관련 시민단체, 동호회와 함께 [연속기획] '자전거는 자전車다-자동차와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하여'를 10주에 걸쳐 진행합니다. 세 번째 주에는 30여 년 동안 자전거를 탄 한 미국인이 바라본 한국 자전거 문화가 나갑니다. 과연 우리나라 자전거 문화가 이방인의 눈엔 어떻게 비쳤을까요. <편집자주>
▲ 모피를 입고 타는 여성
ⓒ 이탈리아 모데나 Sue Darlow

한국에서 자전거생활화를 이야기할 때 흔히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 자전거가 대표적인 교통수단인 나라들이 아주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리고 그런 '자전거 천국'을 한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그런 나라들의 너무나 잘 갖춰져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를 그 중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으로 주목하게 된다.

한국에서 자전거생활화운동을 하는 분들은 주로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가 정말 보통사람들의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전용도로도 좋지만 이와 함께 자전거 타는 '사람'과 자전거 자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나의 생각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불법주차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보행자가 인도를 다니려면 불법주차한 차들을 마치 장애물경기처럼 피해 가면서 다녀야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들이 마음 놓고 인도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은가? 인도와 횡단보도가 만나는 지점에 불법주차한 차들부터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일관되게 견인하지 않는 한 자전거 전용도로가 주차장이 될 것은 뻔하다. 전용도로가 그런 상태로 주차장이 되어 버려 자전거가 어쩔 수 없이 차도를 다니게 된다고 치자. 그러면 차들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다니라고 지금보다 더 빵빵거리고 난폭해질 것이다.

나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반드시 필요한 구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국도를 다니는 경운기에게 경적을 울려대는 차가 없듯이 도시에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공존의 미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더불어 최소한 오직 자기네들만을 위해서 도로가 주어졌다는 특권의식을 버리게끔 설득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전거들이 차도를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것과 인도에 주차하는 의식이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의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전용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전거 애호가들이 주도하는 문화가 문제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발바리
한국은 '자전거 천국'인 나라들과 또 다른 차이가 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측면으로 바로 자전거와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다른 것이다. 흔히 자전거 천국이라고 주목받는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자전거 선진국에선 자전거 애호가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돈으로 몇 십만 원에 해당되는 가격에 구입한 자전거를 매일같이 타는 사람이라도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자전거'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내서 '라이딩' 나가지 않아도 주말에 자전거를 차에 실어서 산에 가서야 타는 이들보다 주행량이 훨씬 많다. 그리고 주로 보게 되는 자전거가 산악자전거와 그것을 모방한 듯한 형태가 아니라 한국에서 '숙녀용'과 '신사용'으로 알려진 자전거가 그 주종을 이룬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한국 대부분의 도시들이 유럽 대부분의 도시와 달리 언덕 지형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산악자전거 계열의 유행은 분명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자전거 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자전거 애호가들이 주도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전거를 본격 취미로 삼는 이들이 '보통사람들의 자전거'에 관심이 많은 것이면 모르겠으나 문제는 마니아 위주의 문화가 알게 모르게 '지배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 그냥 타지 못하고 선수들의 필요에 의해 디자인한 헬멧을 쓰고 온갖 외국 메이커의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을 것(로얄티 한 푼도 못 받으면서 말이다)을 강요하는 분위기다. 자주 타려면 그런 '선수복' 하나만으로 불충분하니까 최소한 두벌 이상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타기도 전에 벌써 옷값만도 몇 십만 원씩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자전거 두 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30년 정도 된 비앙키(Bianchi)제 투어링용 싸이클이다. 프레임에다 내가 원하는 부품을 하나 둘씩 장착해서 이제 아마 부품 값이 프레임보다 더 할 것 같다. 어쨌든 몇 년 전에 새로 도금했는데 그 중간에 맡겼던 가게는 공장에서 돌아온 나의 프레임에다가 비앙키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 현란하게 생긴 산악자전거 제작회사 스티커를 내게 물어보지도 않고 다운투브(프레임 앞쪽에서 페달 있는 쪽으로 대각선으로 연결된 부분)에 부착해 경악한 일이 있었다.

왜 그러셨냐고 물어보니까 아무것도 없으면 너무 이상하다는 것이다. 나는 물론 나중에 페인트가 벗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스티커를 떼어냈다. 그런 몇 달 후 가게 주인은 외국인인 내가 타니까 멋있다는 걸 알겠다, 그러나 한국인은 그러면 폼이 안 난다는 것이다. 웬 폼? 이게 바로 문제구나 했다. 너무나 많은 한국인들이 유럽의 모범적인 자전거 문화를 가진 나라를 보고 감동을 하지만 한국에 다시 와서는 폼을 내느라 실용적인 자전거 문화라는 실익을 놓친다.

선수복 입고 타면 사람들 시선 달라져

▲ 독일 베를린
ⓒ 발바리
사실 '폼'을 내려면 유럽에서 신사용 자전거를 타고 의회에 다니는 정치인이 탈법한 고풍스런 분위기의 프레임에다 정장을 하고 그렇게 출퇴근하면 좋은데 경주용 자전거 메이커의 이름을 빌려야 '안 이상한' 경주 위주의 문화가 지배문화가 되다 보니 엄두를 못 내는 모양이다.

사실 나도 '선수복' 같은 옷이 있고 가끔씩 입기도 한다. 나야 워낙 자전거광이고 특히 장거리를 다닐 때는 그렇게 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로에서 그렇게 입고 탈 때 자동차 운전자들에게서 받는 '대우'의 차이를 느낀다. 한국은 외제든 큰 차든 아직 비싸 보이는 차가 대접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전거 역시 겉으로 보이는 '값'에 의한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내가 선수복을 입고 차선 하나를 차지하면서 다녀도 비키라는 차가 거의 없는 반면에 비록 같은 속도라도 평복을 입고 다니면 '비켜달라'고 난리들이다. 또, 비록 오래된 것이지만 내 싸이클을 타고 다닐 때와 이민가방 두 개나 실을 수 있는 아주 크고 특이한 형태의 자전거를 탈 때를 비교하면 역시 대해주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금방 느낀다. 역시 비싸보이는 자전거를 타고 화려하게 입고 겉으로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타는 것이, '안전' 차원에서도 더 좋은 방어수단이 될 수 있기는 하다.

특히 가끔씩 길거리에 잠궈 놓은 자전거 바구니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진 것을 보면 실용적인 자전거가 길바닥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도로에 버리는 것이 양심에 걸려 남의 자전거 바구니에 버리는 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한 사람이 많은 사회를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주로 가격이 싼 자전거들이 그런 수모를 많이 당하게 되는데 이는 못 가진 자에 대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화려하게 입고 겉으로 비싸 보이는 옷을 입고 타는 것이, '안전' 차원에서도 더 좋은 방어수단이 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자전거생활화'와 같은 운동을 하는 분들이 거리에 '캠페인'하러 나갈 때에도 그렇게 화려하게 입을 때다. 거리의 행인들에게는 '나도 자전거 타려면 그렇게 입고 타야 되는구나'라는 인식을 알게 모르게 심어줌으로서 그만큼 부담을 주는 게 아닌지 의문이다.

평복 입는 게 캠페인 효과 더 크지 않을까?

▲ 가끔씩 길거리에 잠가 놓은 자전거 바구니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진 것을 보면 실용적인 자전거가 길바닥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서반석
앞으로 한국에서 자전거가 보다 보편화되려면 자전거의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나라들에서처럼 대다수 타는 사람들이 평복을 입고 다닐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자전거생활화를 홍보하기 위해 거리행사를 할 때만큼은 평복을 입는 게 선전 효과가 더 높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리는 날에 정장을 하고 그런 행사를 하게 되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아, 나도 자전거를 못 탈 이유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비싸고 화려한 색깔의 옷에다 온갖 영문글씨가 그려진 옷을 입고서 '고유가 시대에 자전거를' 혹은 '자전거면 충분하다'고 홍보하면 오히려 부담을 주는 역효과를 자초하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사실 내가 20년 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느낀 점 한 가지는 한국인들이 레저를 할 때도 '유니폼'을 입고 한다는 것이었다. 산에 가기 위해선 특별한 옷을 사야 한다. 평범한 바지로는 골프를 못한다. 그러나 등산복 없이도 산책을 다닐 수 있듯이 자전거를 '그냥' 타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야 자전거가 골프와 같은 '엘리트' 활동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판하면서도 나는 한국의 자전거 문화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주 발전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실용적인 자전거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 중 산악자전거와 싸이클의 장점을 모두 살렸다는 새로운 형태, '하이브리드'(사실 예전 50년대쯤에 많이 유행했던 형태와 아주 비슷)와 몸통이 작은 '미니벨로'를 갈수록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숙녀용도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으로 출시되고 있는 현상은 언뜻 보기에 별 것은 아니지만 '문화사적으로' 보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자전거가 사은품 신세를 벗어나기에 아직 멀었다 해도 사람들이 '자전거' 하면 흔히 기어가 필요 이상 많고 타이어가 우둘우둘해서 잘 굴러가지도 않는 산악자전거를 모방한 형태를 주로 떠올리는 획일적인 분위기가, 아주 약간씩 변하는 것 같다.

또, 요즘 방송을 보면 자전거가 어딘가 여유롭고 풍요로움을 표현하려는 장면에 소품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광고에서는 아주 우아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전에 말 그대로 '폼'을 내려면 최대한 비싼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으나 이젠 자동차를 갖고 있는 사람도 차 대신 자전거로 다니는 것이 오히려 잘 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처럼.

역시 경제 발전에 따른 인식변화의 결과다. 옛날에 잘 살아보세 하면서 고가도로 만든다고 독립문 같은 문화재를 원래 있던 자리에서 옆으로 치웠다면 지금은 육교 대신 횡단보도를, 고가 대신에 청계천을 복원하려는 사회가 된 만큼 언젠가 이른바 '2만불 시대'에 진입하게 되면 자전거 환경이 보다 좋아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 다퉈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든다고 발표하는 데에서 그 조짐을 엿볼 수 있다. 생색만 내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고 역시 주차장이 돼버려서 당분간 전용도로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겠으나 일단 그렇게라도 생색을 내야 잘 사는 고장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한국의 자전거 문화에 대한 정답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 외국의 사례를 이야기할 때 자전거 전용도로 등 시설만 보지 말고 사람과 자전거 등 전반적인 문화를 참고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 일본
ⓒ 대전충남녹색연합 자전거모임 양흥모

덧붙이는 글 | 서반석(미국인, 본명: 슈로퍼르)은 7살 때 자전거를 처음 조립했습니다. 86년에 한국에 왔으며 현재 네덜란드 레이든대학 박사과정 중입니다. 자전거를 탄 지는 대략 30년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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