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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시마 과장> 시리즈의 작가 히로카네 칸시는 "중년 독자들이 읽을만한 만화가 없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히로카네 칸시는 실제로 그의 발언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다.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인간교차점>을 비롯해, <황혼유성군>이나 <시마 과장> 시리즈 같은 그의 작품들은 중년 이상의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그려진 만화들이다.

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무지한 편견도, 어쩌면 그들이 읽을만한 만화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알고 있다. 작품에 따라 만화는 우리가 살면서 자주 놓치는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다는 것을 말이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그런 만화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만 하다. 만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많이 알려진 만화지만, 그 작품을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어른들을 위해서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일본판 '바른생활 사나이' 유택 교수

사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이라는 제목은 인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잘 선택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의 전반적인 내용과 주인공의 성향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 학산문화사
여류 작가인 야마시타 카즈미의 이 만화는, 68세의 경제학 교수인 '유택'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유택 교수는 매일 밤 9시에 잠이 들어 다음날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습관을 늘 지키고 있으며, 무단횡단을 절대 하지 않을 정도로 반듯하고 정확한 인물이다. 길을 걷다 방향을 꺾을 때도 90도 각도를 유지할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학창 시절에는 조회 시간에 방귀를 뀌고는 훈화 말씀에 열중하는 교장 선생님을 향해, "교장 선생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방귀를 뀌고 말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용서를 빕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을 정도다.

이런 그의 생활 습관을 보면, 숨 막힐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이라고 속단할 수도 있지만, 유택 교수가 그런 인물이었다면, 이 감동적인 만화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활 습관에 맞는 원칙과 정의를 실천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며, 남들은 가볍게 넘길 사소한 현상과 변화에도 늘 관심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연구하려는 사람이다.

유택 교수에 대한 인물 설정은 만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호기심 어린 연구의 대상은 주로 인간이다. 남들에게는 차갑기 짝이 없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사연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예민하게 파악하는가 하면,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그의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거나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 앞에서는 누구라도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택 교수'는 그렇듯 늘 진지하고 성찰어린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자연을 대한다.

그는 경제학도 "일종의 인간학"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경제는, "복수의 인간이 서로 뒤섞여야 비로소 성립"하는 것으로서, 경제학에 대해서도 "사고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적인 피가 끓지 않으면 훌륭한 연구를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엉뚱할 정도로 반듯한 유택 교수지만, 그의 눈빛에는 따스한 인간적인 피가 흐르고 있으며, 그에 걸맞은 신념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 학산문화사
그의 아내도 그의 그런 눈빛을 사랑하기에 40년이 넘게 그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심을 간직한 그의 다섯 살 난 외손녀도 인간에 대한 그의 순수한 시선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에 늘 외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그의 행동을 따라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잊고 있던 삶의 의미와 따뜻한 시선 일깨워

인간은 누구나 이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득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내가 편리해지기 위해서다. 인간이 때때로 어리석은 동물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이득은 살기 위한 방편이자, 편리함을 위한 수단일 뿐인데, 인간은 이득 그 자체에 함몰돼 이득의 노예가 되고 만다.

그런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 유택 교수의 반듯한 생활은 유머로 보일 소지도 있다. 하지만 유택 교수의 반듯함은 그의 진지한 신념과 예민한 관찰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신념 끝에 우러나오는 자신과의 약속으로 볼 수 있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그의 주변 사람들과 제자들은, 그런 어려운 일을 잊지 않고 실천하는 그이기에,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신념이 진실하기에, 너무 반듯한 나머지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유택 교수가 그렇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사하는 감동은, 우리 스스로도 잊고 있던 삶의 의미와 따뜻한 시선을 일깨워주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는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대해 "만화로도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했다. 물론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어렵고 심오한 철학적 개념이 등장하는 만화는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유택 교수가 실천하는 일상의 아름다운 발견은 세상의 그 어떤 철학적 개념 못지않게 고귀하면서도 꼭 필요한 성격의 것이다. 너무 필요한 덕분에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 감동을 선사해주는 인물이기 때문인지 유택 교수는 특별히 젊어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님에도, 젊은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신념이 꺾이지 않은 인물, 그리고 인생에 대한 잔잔한 활기가 느껴지는 인물은 쉽게 늙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나이가 들더라도 곱게 나이가 든다. 유택 교수는 다시 한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큰 교훈을 선사한다. 멋진 노년이란 무엇인지, 진정한 영원한 젊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은 죽기 때문에 꿈을 가질 수 있다

물론 그가 꿈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도 그 젊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은 죽기 때문에 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이 중요하고,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구절은 내가 만화 <천재 유교수의 생활>을 보면서 가장 감동을 느낀 구절이기도 하다.

"생명에 한계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은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에서 부정적인 생각부터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택 교수'는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잊지 않는 사람이다. 남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실에서 오히려 꿈과 배움의 의미를 찾는 사람을 어디 쉽게 볼 수 있던가?

<천재 유교수의 생활>은 복잡다단한 인간의 일상에서 그렇듯 긍정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만화다. 자극이 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이런 감동을 아름답게 다듬어낼 줄 아는 작가의 시선과 역량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애장판 1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학산문화사(만화)(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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