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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상 4집 앨범 <기억과 상상>
ⓒ 이지상 홈페이지
데뷔 이래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초지일관 밑바닥 대중의 정서를 결 고운 서정으로 노래해온 가수 이지상. 그가 최근 4집 앨범 <기억과 상상>을 선보였다. 1집 <사람이 사는 마을>이 98년 출시됐으니 평균 2년에 한번 꼴로 그의 음악세계를 사람들에게 알려온 셈이다.

그의 이력에는 '전대협 노래단 준비위' '서총련 노래단' '조국과 청춘' '민족음악인협회'라는 다소 살벌한(?) 단체명이 항상 따라붙는다. 많은 이들이 삶의 마취제로서의 노래가 아닌, 역사발전의 복무수단으로서의 노래를 부르고자 했던 80년대. 당시 20대였던 이지상 역시 이런 대의를 피해가지 않았다.

그런 만만찮은 세월을 기타와 노래로 건너온 그이기에 '이지상의 노래는 철지난 운동권 가요일 것이다' 혹은, '딱딱하고 원칙론만 이야기하는 가수일 것이다'라는 선입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천만에다. 이지상을 만나 소주 한잔 기울여본 사람은 안다. 그가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가슴을 가진 연약한 사람인지를.

이지상은 말한다. "내 노래가 민중음악의 지평 속에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난 집회장의 분노보다는 생활의 다짐을 음악으로 옮겨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게 내게 어울리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지상은 이번 신작앨범에선 어떤 '생활의 다짐'을 하고 있을까? 앨범 제목은 그 해답을 간명하게 알려준다. 그렇다. '기억'과 '상상'이다. 그는 생활 속 어떤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으며, 어떤 희망을 상상하고 있을지. 그가 직접 쓴 노랫말 한 대목을 조용히 읊조려본다.

오늘도 한 아이가 죽었다
전쟁의 광기에 미친 세상의 유탄에 맞아 죽었다
앗살라 알라이쿰 이들에게 평화는 없다

누구는 제 손을 잘라 전쟁 반대의 혈서를 써대지만
누구는 젊디 젊은 청춘을 팔아 돈을 벌라한다
앗살라 알라이쿰 이들에게 평화는 없다…

- 위의 앨범 중 '오늘도 한 아이가' 가사 중에서.


이지상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무자비한 폭격 속에 죄 없이 죽어간 아이들의 눈동자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괴로움과 슬픔의 기억을 안고 가는 사람의 노래

괴로움과 슬픔을 기억한다는 건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고통스런 기억에 모두가 등돌린다면 비극은 분명 재발한다. 누군가는 잊지 않아야 할 기억. 이지상은 그 쉽지 않은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비단 전쟁만이 아니다. '미련한 세상'을 통해선 금전만능의 세계를, '해빙기'를 통해선 철거민들의 상처를, '겨우 열다섯'을 통해선 미군 탱크에 깔려 숨진 미선이와 효순이를, '폐지 줍는 노인'을 통해선 고단한 독거노인의 삶을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 속엔 노래를 통한 해결의 의지까지 넉넉하게 담겼다.

그렇다면, 이런 아픈 기억들을 극복한 후 이지상이 가닿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어떤 희망의 세상을 '상상'하고 있을까? 앨범에는 그 해답도 담겨 있다. 수록곡 '사랑'의 첫 가사를 보자.

나는 그대의 또 하나의 몸
그대는 나의 또 다른 영혼
사랑의 숲길을 함께 걸었죠
절망의 강도 함께 건너가요…


우리가 자신만큼 타인을 아낄 수 있다면 이 땅은 분명 아름다워질 터. 내 몸을 다른 이의 몸처럼, 내 영혼을 다른 사람의 영혼처럼 귀하게 여기는 세상을 이지상은 '상상'하고 있다. 그런 세상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죽는 전쟁도, 누구는 굶어 죽고 또 다른 누구는 배가 터져 죽는 불합리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희망 가득한 세상을 상상하게 하는 가수

미국과 이라크가, 부자와 빈자가, 자본가와 노동자가 사랑은 물론 절망까지도 함께 끌어안으며 걸음을 맞춰 걸어가는 상상.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해진다. 배부름과 등 따뜻함을 동시에 전해주는 이지상의 노래들.

앨범 <기억과 상상>을 만난다는 건 괴로움과 슬픔의 기억을 뛰어넘어 희망 가득한 세상을 상상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 즐거운 상상에 동참하는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이지상의 홈페이지(www.poemsong.pe.kr)를 방문해도 좋겠다.

김경환의 시에 이지상이 곡을 붙인 '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를 듣는다. 그들에 의하면 '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 때 자란'단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손톱이 자라지 않는 '즐거운 상상'을 하는 시간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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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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