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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동아시아 연구센터 엠마뉴엘 패스트라이쉬 객원연구원이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보내온 글입니다. <편집자주>
▲ 미국의 이라크 침공 3주년인 지난 2006년 3월 2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나라 밖 상황을 외면하는 시민들, 국가의 운명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엘리트층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빠져버린 한 강대국에 대해서 저명한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지성인들의 무책임과 도덕적 타락이 이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이들이 사회에 대한 의무나 지행 일치의 중요성을 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뜻했다. 그 사회는 실질적 지도층이 결여되었다. 정부의 도덕적 타락은 어느 정도 바로 이러한 지성인들의 의무 불이행 탓이다."

임마뉴엘 쑤(Immanuel Hsu) 교수가 이 구절에서 언급한 대상은 19세기 후반의 중국이지만, 미국 정부의 나태한 태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위의 묘사는 오싹한 여운을 남긴다. 소수의 사람들이 미국을 이란과의 무모한 전쟁으로 끌고가려는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미국이 난국에 처한 지금, 미국의 지성인들은 이상하게도 잠잠하다. 한때 동북아의 강대국이었던 중국이 19세기 초 아편과 유럽의 경제적 침략이라는 위협에 직면했을 때, 그 나라 최고의 지성인들이 무관심에 발목이 묶였던 것처럼.

미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쇠락하고 있고, 냉소적 정치인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 정치무대의 등장 인물만 바꾸면 하룻밤 새 국정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

미국의 위기, 그러나 지성인들은 이상하게 잠잠하다

▲ 2003년 4월 미 해병대가 포로로 잡은 이라크 군들을 끌고 가고 있다.
ⓒ 미 국방부
청조(1644~1911) 말, 중국 지식인들은 집에 틀어박혀 인생의 목표를 망각한 채 가족들에게 헌신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들은 아편 무역이 성행하도록 놔두었고, 결국 중국은 엄청난 무역 적자로 국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또 그들은 서양 강대국들을 배우려고 노력하기는 커녕 '중국이 여전히 강대국'이라고 확신하려는 무의미한 노력을 계속했다. 이는 오히려 중국 쇠락의 징조로 해석됐다.

오늘날 미국의 지식인은 부유한 동네에서 은퇴해 지낸다. 또한 교육받지 못한 대중과 거리를 두기 위해 폐쇄된 공동체 안에서 같은 부류끼리 교류한다. 통제된 사회적 단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미국인들이 인종 갈등을 무시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유엔을 "부적절하다"고 언급했고, 체니 부통령은 다른 국가들을 무시했다. 고통스럽게도, 이같은 행위는 청조 당시의 중국이 영국·미국의 사절들에게 복종의 뜻으로 황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라고 요구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중국은 그런 행위가 정말로 영국이나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유엔에서 미국이 한 행동은 의미있는 전략이었다기보다는 정치인들이나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꿈꿔온 미국의 우위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 기간 중 그에게 쏟아진 모욕도 성마른 미국이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저지른 장난이었다. 200여 년 전 중국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진타오를 향한 미국의 조롱은 쇠퇴의 징조로 인식됐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 유린을 비난한 것도 자신들의 인권 경시와 관련된 비난을 피하기 위한 술수였다.

그들은 잡동사니 정보를 읽고 있다

▲ 지난 3월 1일(현지시간) 인도 보팔에서 열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시위자들이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사진을 태우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추악하고 부끄러운 진실은 바로 미국인들이 오랜 세월 이어온 정치적 의무 및 시민의 의무라는 전통을 경시했다는 것이다.

임박한 국가 위기에 대처하여 미국인들이 회합을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누군가는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치·경제적 힘을 가진 사람들은 <뉴욕타임즈>의 '이 주의 예술' 섹션에 나오는 잡동사니 정보를 읽거나, 최근에 다녀온 투스카니 여행에 대해 잡담이나 하고 있다.

왕조가 혼란에 처했을 때 바둑이나 두며 시간을 보내던 중국 관리들과 다를 바가 없다. 국가의 서글픈 상황이 목가적인 삶을 침해하는 경우에도 이들은 국가의 운명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은 직면하지는 않고 정치인들 사이에 만연한 부패를 탓할 뿐이다.

미국 정부는 계속해서 기능할 것이다. 제도는 매우 오랜 세월 지속되어 왔으며 이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있기 때문에 바꾸기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방 정부를 구성하는 기관들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운영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미국을 지배하는 법은 아직 대부분 그대로이지만, 연방 정부의 법 집행과 법에 응하는 자세는 쇠퇴했다.

한 예로 샌드라 오코너 전 대법원 판사는 '사법부의 독립'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 3월 10일 조지타운대학 연설에서 그녀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호해주는 것은 법령과 헌법이 아닌 바로 사람들" 이라고 지적했다. 제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경시된다면 그 제도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 역시 국가 대사에 지성인들이 등을 돌린 후에 제도들이 원래의 목적에서 퇴색했다. 청조 말기 정부 관료직은 더이상 지성인들의 목표가 아니게 됐고, 개인적 치부가 국가 번영에 대한 공헌보다 우선시되었다. 이는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원하는 직장 1순위에서 정부 기관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고립되어 혼자 볼링 치는 미국인들

미국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70년간 미국 사회의 균형을 유지시켜 주었던 민감한 줄다리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30년대 이후 기업과 경제적 최상층의 권력은, 교육받고 재정적으로 안정적이며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의사·변호사·교수·회계사·공무원들에 의해 효과적으로 견제당했다. 민주당원이든 공화당원이든, 이들은 정부가 지역 사회의 요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확실히 했다.

이러한 균형은 이제 깨져버렸다. 그리고 아마도 다시는 되찾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활동적이었던 전문직 계층은 점차 정치적 과정에서 자신들을 분리하게 되었다. 테다 스카치폴(Theda Skocpol)이 <민주주의의 쇠퇴: 참여는 사라지고 경영만 남는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지역 사회의 엘리트들은 한때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명해주던 정당이나 봉사 클럽·친목모임에서 탈퇴했다. 이제 그들은 이방인들이 감시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로버트 D. 푸트남(Robert D. Putnam)은 미국인들이 어떻게 자신들 내부에만 신경쓰게 되었으며, 고립된 삶을 선택하고 사회적 의무를 저버리게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종합적 통계를 내놓았다.

저서 <홀로 볼링하기>에서 푸트남은 미국인들이 더 이상 팀을 짜서 볼링을 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이것이 넓은 의미에서 지역 사회와 시민 참여로부터의 후퇴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민 참여는 지난 40년간 30~40% 감소했다고 푸트남은 지적했다.

이 '후퇴'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생각해볼 때,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아렌트는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에게서 힘이 나오는 한, 정치적 고립은 '무력(無力)'과 같으며 따라서 고립된 사람은 무력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고립됨으로써 생기는 결과 중 하나는 오늘날 민주당, 공화당이 본질적으로 소수 그룹의 이익만을 대변해주는 껍데기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때 공통의 이익을 가지고 평범한 시민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역 본부들의 지지를 받던 정당들은 이제 사막에서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조악한 확성기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캐시 로스-도케(Kathy Roth-Douquet)와 프랭크 쉐퍼(Frank Schaeffer)의 <무단결근: 미국 상류층의 군대면제가 미국에 끼치는 폐해>에 언급된 것처럼 미군은 더이상 특권층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이 아니다.

만일 많은 상류층 자제들이 이라크와 이란의 분쟁지에 배치됐다면,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인식이 곧바로 주류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선거를 의식해 일으킨 전쟁에서 치른 막대한 인적 비용도, 더는 추상적이지 않은 '누군가'의 문제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칼 로브와 서태후, 그들을 권력에 올린 것

▲ 지난해 7월 14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오른쪽)이 백악관을 같이 나서고 있다.
ⓒ AP/연합뉴스
청조 말기와 미국을 비교하는 것은 미국의 또 다른 미스터리인 칼 로브 백악관 정치고문의 화려한 경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칼 로브가 완전히 신임을 잃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 낙관적으로 판단할 근거는 많지 않다.

칼 로브의 대담한 정책이 먹힌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 전체를 통틀어 그에 필적할 정치적 천재가 없었던 탓은 아니다. 정치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생겨난 거대한 공백상태가 정확한 이유다.

칼 로브가 음모를 꾸미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에 대한 관심은 연예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난하면 할수록 정작 그가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활개칠 수 있었던 근본 원인, 즉 시민사회의 부패를 편리하게 외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청조 말기 국정을 농단한 서태후
ⓒ Wikipedia
수백년 정치사에서 칼 로브같은 인물은 권부에 항상 존재했다. 칼 로브에게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그 자리에 최대한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칼 로브를 권력에 편집증적 집착을 보였던 한 여성, 중국의 서태후와 비교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서태후는 황실의 관료들을 위협하여 굴복시키고 청나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권력을 손에 쥐고 흔들었다. 그녀는 반대세력을 독살하거나 협박하고 권력에서 배제시키며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부패한 대신들의 도움을 받아 그녀는 1861년부터 1908년까지 사실상 독재자로 정계를 평정했다.

그렇다면 고급 교육을 받은 수십만 시민을 보유한 중국은 어쩌다 한 개인이 정부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것을 수수방관했을까. 서태후가 권좌에 오른 것은 그녀가 정치계의 귀재라서가 아니라 지식인들의 참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중국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축적한 부와 직계 가족의 특권을 수호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점차적으로 시민사회는 기능을 멈췄다. 반대의 힘이 균형을 잡아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패는 사회 모든 계층에 우후죽순처럼 퍼져나갈 수 밖에 없었다.

서태후는 권력을 독점하는 과정에서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의 심리와 종교적 극단주의자들을 이용했다. 흑마술을 행하는 지방의 반군단체 의화단은 서태후를 지지한 세력이었다. 서태후는 정기적으로 의화단원을 풀어 정치적 숙적을 위협하고 사회혼란을 야기시켰다.

미국인들이여, 스스로를 돌아보라

▲ 이라크전 개전 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3월 19일 미국 아이오와주 시더 래피즈에서 반전론자들이 구호판과 촛불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연합뉴스
앞에서 말한 단순 비교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노력을 빙자해 청조 말기에 팽배한 부패 사기극과 부시 행정부에서 일어나는 개각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있다.

중국의 근대화 노력의 일환이었던 '변법자강운동'으로 불린 군대 개혁은 서태후 측근의 간신들의 배만 불리고 끝났다. 서태후의 여름별장은 해군함대를 증강할 예산으로 지어졌다. 이는 군수업체 특혜 계약을 이용해 랜디 듀크 커닝햄 의원의 측근 등 특권 세력이 배를 불린 사례라든지,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정당 행사장으로 변칙 이용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19세기에 중국은 노후한 둑과 관개시설로 인해 끔찍한 홍수를 겪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즈의 제방시설 붕괴가 여실히 드러낸 미국의 국정 태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 미국인들은 미국 민주주의 쇠퇴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부시 행정부나 적대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로 돌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수동적 자세와 무사안일의 유혹에 빠져 지역 사회와 국가의 운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그 화살은 돌려야 할 것이다. 당면한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고 궤도를 이탈한 현 상태를 바로잡는 첫 걸음으로 말이다. (*번역: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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