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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연구팀의 논문 조작 사건은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 왔다. 황우석 사태가 이처럼 큰 파장을 일으킨 데에는 '황우석 신화'에 도취돼 진실을 외면하고 대중들을 오도한 신문·방송·통신사들의 책임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였던 이성주씨의 근저 <황우석의 나라>(바다출판사)는 눈여겨볼 만하다. 97년부터 2004년까지 <동아> 의학담당 기자였던 저자가 황우석 사태 당시 <동아>의 막전막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3년간 다니던 직장을 지난 1월 그만뒀다고 한다.

이씨는 "기자에게 눈으로 보고있는 진실을 기사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차꼬이자 고문"이라고 지난 몇 달간의 고민을 토로했다. <오마이뉴스>는 황우석 사태 당시 휘청거렸던 <동아> 편집국의 내부를 조명한 <황우석의 나라>를 소개한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일부 내용은 23일 저자와의 인터뷰로 보강했다. <오마이뉴스>는 24일 책에 언급된 <동아>의 김학준 사장과 임채청 편집국장의 반론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두 사람은 각각 '지방출장 중', '회의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편집자주>
▲ <황우석의 나라> 저자 이성주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1월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로 황우석씨의 논문조작이 확실시되자 <동아>의 한 간부가 이성주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큰일날 뻔했어. 황 교수가 <동아> 선정 2004년 '올해의 인물'로 뽑힌 뒤 신문사 동료들과 함께 그와 저녁을 먹었어요. 황 교수가 급히 갈 데가 있다면서 고급술집에 가서 기분 좀 풀라며 신용카드를 주더군요. 우리가 '이러는 법은 아니다'고 사양했기에 망정이지…."

황씨는 왜 언론사 간부들에게 신용카드를 주려고 했을까? 다음의 에피소드를 통해 황씨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2002년 4월 황 교수는 서울대학교 동원관에서 한 방송국의 다큐멘터리팀과 저녁을 먹다가 전화를 걸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기준 총장의 땅 문제로 기사를 쓰는 모양인데 A일보의 편집국장과 B일보의 간부에게 전화해서 잘 봐달라고 부탁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대답하더라.'

당시 다큐멘터리팀의 한 팀원은 '황 교수가 우리와 함께 식사한 동원관의 방을 이기준 총장과 자신만 쓴다고 하는 등 과시가 대단했으며 촬영이 끝날 무렵 자신에게 온 편지다발을 보여줬는데 온갖 민원성 편지도 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이기준 당시 서울대 총장은 대기업 사외이사 겸임과 아들의 병역문제 등으로 학내 교수 및 학생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었는데, 황씨는 자신이 해야할 연구는 뒷전으로 미뤄놓고 언론사에 '이기준 구명' 로비를 벌이고 있었던 셈이다.

이씨가 2004년 8월 미국 존스홉킨스대로 연수를 떠나기 직전에도 황우석팀에 대한 호감이 흔들리는 일이 생겼다. 한 기자가 황씨의 신용카드로 고급술집을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사실을 이씨가 알게 된 것이다. 이씨는 "기자들에게는 검소한 생활을 그렇게 강조하더니… 뒷머리를 홍두깨로 퍽 맞은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일부 기자들의 이같은 행태가 '황우석 장학생'을 만들려는 황씨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씨는 "<연합뉴스>, <경향>, <조선>, KBS 등에는 황 교수의 장학생이라고 불리는 특별관리대상 기자들이 있다"며 "일부 기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며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지만 나머지 몇 명의 기자는 그야말로 황 교수의 '홍보대행사' 직원 같은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줄기세포 연구, 모두 사기라면 어쩌죠"
황창규 삼성반도체 사장의 선견지명?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사진)이 지난해 9월 22일 <동아일보>가 주선한 황우석씨와의 대담에서 '줄기세포 사기극'의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주장이 터져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성주씨에 따르면, 황 사장이 갑자기 "줄기세포 연구가 모두 사기라면 어떡하죠?"라고 질문을 던지자 황씨는 순발력 있게 "그럼, 제가 다 책임을 지겠습니다"하고 받아넘겼다는 것이다.

황씨는 대담이 끝나자 황 사장에게 갑자기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실을 꼭 한 번 보여주고 싶다"며 예정에 없던 실험실 방문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는 문제의 발언을 기사화하지 않았다.

논문 조작이 사실로 드러난 지난해 연말 김학준 <동아> 사장은 부서 망년회에서 기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밝히며 "다들 웃고 넘어갔지만, 그때 그 말의 의미를 알았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다고 한다. 동석한 김 사장의 부인도 "유태인들은 어릴 때부터 안 속는 법을 가르친다"고 맞장구쳤다.

황 사장은 24일 삼성전자 홍보실을 통해 "황 교수와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고 김 사장의 전언을 부인했다.
취재원의 신용카드로 취재원도 없이 자기들끼리 흔전만전 돈을 쓰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는 '뇌물'이라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검찰은 황씨의 논문 조작과 함께 연구비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지만, 기자들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씨는 저서에서 <사이언스> 논문 교신저자였던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에 대해 "그는 줄기세포 연구의 대가도 아니었고, 황씨와 비슷한 복제분야 전문가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과학기술부가 2004년 제1회 서울 줄기세포 심포지엄에 섀튼을 초청하려했지만 그가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없는 것을 보고 초청대상에 제외됐는데, 황씨의 영향력 행사로 우여곡절 끝에 초청됐다는 비화도 들려줬다.

이씨는 "지나친 반미정서 때문에 차분한 일 처리가 안 보일 뿐이지, 미국도 결국 섀튼의 잘잘못을 단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씨는 "프랑스가 드레퓌스 사건을 반성하며 이성적·합리적 사회로 승화했듯이 우리 사회도 이번 사건을 성숙한 사회의 통과 의례로 삼아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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