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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였다~"
"파닥파닥, 만선이네."

한국의 누리꾼들은 강태공이 아니건만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뉴스에는 이른바 '월척'을 외치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알맹이보다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장사하는 소위 '낚시' 기사 때문이다.

"걔가 걔라며?" 호기심만 남기는 낚시 기사

사실 낚시 기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 종이매체가 위세를 떨치고 있을 때 스포츠신문은 '제목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놀라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펼쳐든 스포츠신문의 제목에 이끌려 눈을 찡그려가며 기사 본문을 눈도둑질 하던 일말이다. 말이 스포츠신문이지 스포츠 기사보다는 연예 기사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그 신문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끌기 위해 낚시 기사를 종종 선보였다.

낚시 기사는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을 당사자의 이름은 감춘 채 A군, B양 등 이니셜만을 남발하며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내용을 풀어내는 식이다. 당연히 사람들에게 "그게 누구냐" "걔가 걔라며?"하는 식의 의문만 남길 뿐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이 밖에도 부실한 내용을 과장된 제목으로 포장한 기사나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홍보 기사도 사람들을 낚곤 했다. 이러한 낚시 기사의 남발은 결국 사람들이 스포츠신문 그 자체를 비하하게 만들었다.

왜 누리꾼들은 성지순례를 하나

종이매체에서 인터넷매체로 진화하면서 낚시 기사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 최근 포털 사이트의 영향력이 커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연예나 스포츠 중심으로 기사를 배치하면서 낚시질은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송고하는 걸로 운영되는 인터넷 언론이 나타날 정도.

연정훈, '한가인의 잠자리 선물(?)' 너무 무서워
'황금사과' 고은아, "지현우 같은 남자 싫어"
남진 "'크라잉 넛'이 내 노래에 소름끼쳤다고?"
남친과 결별한 하리수 "한달간 매일 울었다"
한일전서 '제2의 똥침 사건' 나올 뻔했다


▲ '낚시 기사'의 고전 반열에 오른 '한가인 잠자리(?)' 관련 기사. 안이한 기사를 쓴 매체 측이나 선정적인 제목으로 수정해 중요화면에 배치한 포털이 만들어낸 '낚시 기사'다.
ⓒ 네이버 화면 캡쳐
오래 전부터 떠돌거나 최근 나타난 낚시 기사들 제목이다. 곤충 '잠자리'를 교묘하게 포장해 네티즌들이 '성지순례'하게 만들었던 영화배우 연정훈·한가인 부부 기사는 '낚시 기사'의 표본(?)에 등극한 지 오래다. 또 탤런트 고은아가 싫다던 '지현우'는 실제의 지현우가 아니라 지현우가 드라마에서 맡은 '캐릭터'였다. 나머지 기사들도 뚜껑을 열어 보면 허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기사들이 알맹이와는 사뭇 다른 엉뚱한 제목으로 누리꾼들의 분노를 낳았다면 최근에는 특정 연예인의 사소한 발언이나 사생활을 소재로 어이없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기사들 대부분은 해당 연예인이 발매한 앨범이나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알리는 것으로 끝맺음하는데 선정적인 제목으로 관심을 끌려는 의도가 훤히 보인다.

누리꾼들은 이런 기사에 "기자가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식의 악플을 달기도 한다. 기사가 되지 않는 내용으로 기사 써서 주목도 받고 마지막에는 활동 홍보까지 해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박명수 "자식 낳으면 성형시키겠다"
강수정 "어깨 넓다고 엄마가 살색옷 입으래요"
정선희, "박명수에게 마음 흔들린 적 있다"
강동원 "난 못생겼다" vs 장동건 "나 잘생겼지"


이 기사들도 제목만 보면 인터뷰 기사 같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해당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서 한 얘기들을 정리한 것일 뿐이다.

물론 낚시 기사는 '진짜 원조' 스포츠 면에도 있다. 스포츠 '낚시 기사'는 주로 비시즌기에 볼 수 있는데 전지훈련 등에서 선수들이 나눈 사소한 농담이나 장난을 대서특필(?)하거나 해외 언론의 기사를 잘못 번역해 독자들을 화나게 하는 식이다. 그런 기사를 많이 쓰는 모 야구 전문 기자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스포츠 SF 소설가'로 불리며 안티카페까지 생기기도 했다.

물론 기자로서는 자신이 쓴 기사를 많은 독자들이 보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알맹이 없이 제목으로만 승부하는 그런 기사를 대하는 순간 누리꾼들은 '속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누리꾼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악플'이다.

포털, 가십 기사 집합소에서 벗어나라

▲ '낚시 기사'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
ⓒ 네이버 화면 캡처
한때 출근길을 휩쓸었던 무료 신문 열풍도 잠잠해지고 이제 대한민국의 화젯거리는 포털 사이트가 장악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종이 매체에 비해 접근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활을 건 포털 사이트들의 경쟁은 누리꾼들을 피곤하게 하고 있다. 포털 사이트 간의 경쟁 때문에 흥행을 위해 그들의 잣대로 뉴스를 편집하기도 해 기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낚시 기사로 돌변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초·중·고교생, 키·체중↑... 체력·시력↓ -> 안경잡이 살찐 학생↑
성인여성 "남성보다 일 많이 하고 여가시간은 적어" -> "서류가방이냐 기저귀가방이냐"
한나라당 의원들 "DJ는 거인" -> 한나라 의원 "DJ 생가 초라"


스포츠나 연예 분야에 편중된 기사 배치도 문제다. 어떤 경우에는 낚시 혐의가 짙은 사소한 연예 기사가 엉뚱하게 메인에 배치돼 특정인이 괜한 욕을 듣기도 한다. 이러한 낚시 기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트랜스젠더 가수 겸 배우 하리수다.

일부 연예 기자들이 그녀에 대한 과대포장 낚시 기사를 남발한 결과, 트랜스젠더에 거부감을 느끼는 일부 누리꾼들이 그녀의 성적 정체성까지 드러내놓고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기자는 석 달도 안 된 사이 하리수에 대한 낚시 기사를 16건이나 써, 누리꾼들로부터 '하리수 관련 강태공'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인신공격 등 잘못된 방식으로 하리수에 대한 비호감을 표시하는 일부 누리꾼들도 문제고, 가수나 배우로의 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오락프로그램에 열중하는 하리수 당사자의 잘못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연예 기자들이 낳은 '상처'라는 면도 있다고 본다. 연예인 누구 누구는 웹서핑을 하지 않는다는, 웃지 못할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그 정도는 심각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연예 공화국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를 도배하고 있는 연예인 관련 기사들을 보면 가끔 헷갈리기도 하지만…. 진지하고 무게 있는 기사는 포털 사이트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걸까?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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