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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할 수 없는 보수적 논조의 만화지만, 논리와 전문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만화 <은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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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뿐만 아니라 만화에도 푹 빠져 지내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도 그렇지만 그동안 나는 일본 만화 중심으로 만화 기사를 써왔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왜 일본 만화만을 소개하느냐는 독자들의 비판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내가 유독 일본 만화를 자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국의 만화 마니아들은 영화 마니아들과 마찬가지로 탄탄한 이야기 구조의 만화를 좋아한다. 그들은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때문에 마니아들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전문성과 구체성,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성찰이 스며든 만화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요소는 '독특함'이다. 내가 지금까지 소개해온 만화도 대체로 이런 점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었다. '독특함'과 '치밀한 논리', 그리고 '전문성'이라는 3가지 요소를 갖춘 만화하면 그림체가 다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열렬히 환호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만화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전문성' 부재. 일본은 유독 자국 역사와 관련된 만화를 자주 출간한다. 300여 년 전 사망한 전설적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와 100여 년 전에 사망한 막부의 치안조직이었던 신선조의 무사들을 여전히 영웅시한다. 하지만 한국 만화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이러한 고찰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한국 만화 몰락의 공범자, 일본만화·만화 대여점·불법 스캔 한국 만화가 몰락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면이 많은데 일본 만화 개방, 만화 '대여점'의 탄생, '불법 스캔' 등을 들 수 있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지금은 '산업'에 가까운 규모를 자랑하는 영화업계와는 달리 만화업계는 대부분 규모가 작은 편이다. 때문에 '공짜' 혹은 '저렴함'을 추구하는 네티즌에게 대처할 수 있는 내성을 키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화는 '가볍게 한 번 읽고 마는 것'이라는, 사람들의 관념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 5분 만 걸어가면 대여점에서 300원(경우에 따라서는 100원)이면 만화를 빌릴 수 있는데 굳이 만화를 구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공유 사이트의 탄생과 더불어 인터넷으로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불법 스캔' 문제는 만화 마니아들이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만화의 몰락이 단순히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에서만 비롯됐을까? 물론 일본 만화 개방의 여파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유지호 시민기자가 <한국 만화, 어떻게 무너졌는가>에서 지적한대로 일본 만화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자금력을 앞세워 영세한 한국 만화출판업계를 유혹하며 물밀 듯이 밀려왔다.
 만화 <신암행어사>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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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독자가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일본 만화가 막강한 자금력으로 만화출판업계를 공략했다 해도 한국 만화가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 만화는 여전히 '허영만'과 '이현세'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탄탄한 이야기'와 '전문성'을 추구하는 만화 작가들이 아직은 그들밖에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성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단순히 일본 만화의 그림체를 모방하거나 무협 만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부 만화작가들의 안이한 인식도 문제다. 사실 나는 오늘 내가 좋아하는 한국만화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했다. 내가 소개하려던 <풍장의 시대>와 <신암행어사> 등은 역사를 소재로 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 일본 만화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만화가 있다면 독자들은 얼마든지 찾는다. 물론 소재도 꼭 역사일 필요도 없다. 일본 만화는 역사는 물론이고 교육, 경제와 함께 심지어 와인과 소년 교도소 문제까지도 그려내고 있다. 남은 것을 통렬한 자기 반성 영화도 마찬가지다. 몇몇 영화 마니아들은 한국 영화의 풍요 속에서도 '장르 영화 부재' 혹은 '장르화의 부재'를 꾸준히 지적하고 있다. 한국 영화는 안이하게 제작된 블록버스터와 멜로, 코미디가 장악하고 있을 뿐이다. 또 한국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개성을 하나의 장르로 고정시켜 독자적인 마니아를 형성하는 데 열성을 기울이지 않는다. 독특한 소재를 이용하거나 전문성이 발휘되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드문 일이다. 유지호 기자는 '일본 만화 개방'을 들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만화의 문제는 '일본 만화 개방' 그 자체보다는 '대여점'과 '불법 스캔'과 같이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본만화보다 판이하게 떨어지는 질적인 문제로 몰락했다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도 그 같지 않을까? 나도 개인적으로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국내 대형 배급사의 눈에 들지 못하는 소규모 영화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고사 당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하지만 스크린쿼터 문제를 상당히 냉랭하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지적도 영화계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왕의 남자>도 스크린쿼터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흥행 성적을 낼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왕의 남자>가 소위 A급 배우도 출연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따분해 하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소규모로 개봉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왕의 남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쿼터라기보다는 네티즌들의 입소문이었다. 사람들이 항상 '해외 명품'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작품의 질에 대해서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품만 좋다면 국내 만화도 얼마든지 지금의 한국영화와 같은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계와 만화계의 치열한 자기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TAG1@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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