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상무예 중 가장 파괴력 있는 무기로 <삼국지>의 관운장이 썼다는 '마상월도' 훈련 모습입니다. 사진의 자세는 무예24기가 실린 무예도보통지 마상월도 중 '추산어풍세(秋山御風勢)의 모습입니다. 빠르게 말을 몰아 '가을 산에 이는 바람을 다스리듯이' 월도를 휘두릅니다. 시연자 최형국 단장.
ⓒ 푸른깨비 최형국
저 멀리 포근히 눈 쌓인 한라산을 뒤로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전통무예인 마상무예 복원을 위하여 조랑말과 함께 쉼없이 뛰고 달리며 그 작은 실마리를 풀어 봅니다.

전통시대에 말과 함께 하는 무예는 그 자체로 충분히 국방의 중요한 축을 이뤘습니다. 화약의 발명 이후 전쟁의 개념을 확 바꿔버린 조총과 화포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마상무예는 그 속도전과 돌파력으로 1800년대까지 그 의미를 잃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 단체 기사 장면입니다. 일렬로 줄을 맞춰 한 공격물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가하는 방식입니다. 달리는 말 속도가 더해져 화살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선기대 시범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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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조총이나 화포의 재장전 시간이 기병들의 순간 돌파력을 능가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연발 총의 발명은 곧 '전쟁 혁명' 혹은 '군사 혁명'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전장에서의 전략 전술의 기본을 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미 마상무예의 실질적 가치가 사라진 오늘,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지나간 무예의 역사를 되살려 보려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역사 속에 선조들의 몸짓을 되살리고 기억하며 당시의 실질적 가치를 넘어선 문화적 가치로 확대 재생하기 위해서입니다.

▲ 이처럼 말을 내달리며 털공을 끌고, 뒤에서 쫓아가며 활로 쏘는 것이 우리의 전통 기병 훈련 중 하나였던 모구(毛毬) 혹은 사모구(射毛毬)입니다. 실제로 움직이는 물체는 맞추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고난도의 기술입니다. 시연자 김광식 교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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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마상무예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騎射)'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주요한 무관 선발시험인 무과시험에서 기사는 늘 핵심 과목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시속 약 50~60km 정도의 속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활을 쏘면 화살의 파괴력은 일반 보병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능수능란하게 말을 몰아 활을 쏘고 어느 때에는 적의 앞쪽에서 혹은 옆이나 뒤쪽에서도 빠르게 공격할 수 있었기에 적의 전열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 모구를 쫓아서 신나게 달리다 보면 실제로 사냥하는 기분이 든답니다. 실제 동물을 해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에 임하였던 선인들의 너그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이렇게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을 기사라고 하고, 일반 과녁이 아닌 사람 모양을 한 짚인형을 공격하는 것을 '기추(騎芻)'라 합니다. 실질적인 공격 효과를 얻기 위해 조선 후기에는 기추를 주로 훈련했습니다. 또 여기에 사냥하는 훈련을 겸하기 위해 말 뒤에 털공을 달고 달려가면 그 뒤를 쫓아가며 공을 맞추는 '모구(毛毬)' 또한 많이 훈련했습니다.

▲ 모구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바로 전의 자세입니다. 달리는 말의 속도에 맞춰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고삐를 완전 개방하고 화살을 날립니다. 모구가 둥글기에 이리저리 움직여서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이번 제주도 마상무예 훈련에서 처음으로 모구를 만들어 활을 쏘아보았는데 정말 쉽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말이 털공을 보고 자신을 공격하는 동물을 인식하고 무서워해서 그냥 공 뒤를 쫓아가는 것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이리저리 말 눈앞에서 모구를 흔들고 한참을 적응시키고서야 비로소 말(馬)이 말(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 말을 타고 창을 쓰는 기창 훈련의 모습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삼갑창(三甲槍)'이라하여 둥근 원형 경기장안에 세 명이 함께 꼬리를 물고 달려 서로 찌르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또한 무예도보통지의 기창(騎槍)에서는 서로 창으로 교전하는 기창교전이 실려있기도 합니다.
ⓒ 푸른깨비 최형국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말들이 화살이 날아갈 때 '쉬이익~'하고 소리나는 것에 거의 직각으로 몸을 비틀어서 싫어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까.

호마와는 다르게 제주의 조랑말은 조금 덜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아무튼 말에게 상황변화는 곧 목숨과 직결된 문제였기에 극단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다행히 마장에서 말을 관리하던 분들이 직접 말을 조련해 줘서 이 난국도 생각보다 빨리 헤쳐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기사 및 모구 훈련을 마치고 곧장 다른 큰 무기를 말 위에서 다루는 훈련을 했습니다. 조선 기병의 필수 무기였던 일종의 쇠도리깨인 마상편곤을 비롯하여 <삼국지>의 관운장이 사용하였던 월도(月刀) 그리고 기창(騎槍) 등 다양한 마상무예를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 마상무예 중 마상환도의 모습입니다. 조선의 칼은 검집에 고리가 달려 환도(還刀)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 고리에 칼을 걸어 몸에 붙여 사용하였습니다. 부디 사극에서도 검집까지 손에 들고 말달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시연자 배국진 교련관.
ⓒ 푸른깨비 최형국
날씨마저 훈련 기간 내내 포근해서 이번 훈련은 최고의 마상무예 훈련으로 길이 남을 듯합니다. 제주의 벌판을 달리고 이제 곧 육지로 그 희망찬 발걸음을 옮깁니다.

덧붙이는 글 |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2006-01-29 18:3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최형국 기자는 무예24기보존회 마상무예단 '선기대'의 단장이며, 수원 무예24기 조선검 전수관장입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으로 몸철학과 전쟁사 및 무예사를 공부하며 홈페이지는http://muye24ki.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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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의 역사와 몸철학을 연구하는 초보 인문학자입니다. 중앙대에서 역사학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경기대 역사학과에서 Post-doctor 연구원 생활을 했습니다. 현재는 한국전통무예연구소(http://muye24ki.com)라는 작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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