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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세 '신인작가' 류해윤옹
ⓒ 박수호

'대보럼날, 제사엄식, 동란에 피란민덜….'

누리꾼들의 언어가 아니다. 78세에 첫 개인전을 열게된 '신인작가' 류해윤 옹의 작품명들이다. 흔히 미술관에서 자주보는 '무제' 혹은 영어로 된 제목들에 비하면 소박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작가는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고향 마을과 고택은 물론 서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갤러리 쌈지가 새해를 여는 첫 전시회의 주인공으로 그를 지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할아버지는 오늘도 세탁소 한켠에서 붓을 든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해야 하니 작업에 방해 받지 않는 아침과 늦은 저녁이 할아버지의 작업 시간이다.
ⓒ 박수호
그의 작품활동은 71세 때부터였다. 세탁소와 복덕방을 같이 운영하던 그가 우연히 달력종이 뒤에다 펜으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베껴 그렸던 것이 발단이었다.

베끼는 횟수가 반복되면서 그의 그림은 점점 사진과 닮아가고 있었다. 마침내 사진같은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그의 창작욕은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했다.

화가인 아들 장복씨의 눈에도 세탁소 한켠을 채워나가기 시작한 그의 그림들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3년 전부터 아들은 달력 종이를 아트지로, 펜을 붓과 물감으로 바꿔주며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하지만 후원은 어디까지나 용구 제공 등에 그칠 뿐 그림에 대해서는 일절 말을 아꼈다.

"아버지 그림을 보면서 과연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자기가 그리고 싶은 것이 있고 거기에 충실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미술이란 걸 아버지는 가르쳐 주십니다."

아들이 그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해줬으면 하는데 말이 없어 아쉽다는 류옹에게 장복씨가 묵묵부답인 이유다. 다만 그간 무뚝뚝했던 부자간의 대화도 같은 길을 걷게 되면서 더욱 많아졌다는 그의 귀띔이다. 흔히 '대를 이어' 탄생하는 부자 화가에 비하면 이들에게는 '대를 거슬러'란 표현을 써야하는 것도 이색적이다.

▲ '나들이'(2000)
ⓒ 류해운
지난 4일, 첫 관객을 맞는 류옹의 얼굴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작품 같지도 않은 것들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니 송구스럽다"면서도 그림들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흐뭇하다"란 말은 빼놓지 않았다. 그는 담배도 하지 않고 운전도 못하며 금강산도 가보지 못했다(아내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그림 속에서 그는 마도로스처럼(그의 표현대로라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캔버스에 붓을 대고 있었으며(자화상, 2000), 세련된 스트라이프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아내가 모는 빨간 스포츠카로 드라이브도 한다(나들이, 2000). '이런 시절 보내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류옹은 연작으로 그린 금강산도 TV화면과 신문을 보고서 감탄했던 것이 붓을 들게 한 계기라고 소개했다.

화가들이 들으면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을 듯한 대목이다. 하지만 전시장을 찾은 화가 이근명씨는 "원근법 등 미술의 기본기를 오히려 배우지 않았던 것이 류옹의 상상력과 서사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며 "하지만 '나들이'에서 보듯 차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꽃과 그냥 보이는 꽃의 미세한 차이도 표현할 만큼 섬세하고 예리하다"고 말했다. 전업작가 이봉임씨도 "원색이 주는 편안함과 순수함은 물론 그림 하나하나에 작가의 진정성이 오롯이 담겨있다"고 평했다.

1960년 9월 19일 미국잡지 <라이프>의 표지를 장식한 사람은 주름살이 곱게 잡힌 할머니, 안나 로버트슨(Anna Robertson)이었다. 그랜드마 모지즈(Grandma Moses)로 더 알려진 이 할머니는 시골의 평범한 주부로 70세에 그림을 시작해 78세에 이웃의 작은 구멍가게에서 첫 전시회를 열고 79세에 개인전을 열어 일약 세계적인 화가로 주목받았다. 류옹 역시 첫 전시회를 78세에 열게 됐으니 앞으로의 행보도 모지즈와 계속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류옹은 오늘도 세탁소 한켠에서 붓을 잡는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해야 하니 작업에 방해 받지 않는 아침과 늦은 저녁이 그의 작업시간이다. 얼마 전 38년간 맡아오던 통장직을 그만두면서 다소 여유가 생겼다지만 동네 대소사도 빠짐없이 챙길 만큼 그는 여전히 활동적이다.

전시회가 끝나면 아들과 2인전도 열어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사오정, 오륙도 등 우울한 유행어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류옹의 발걸음 하나하나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리라 기대한다.

▲ 관객에게 작품 설명하는 할아버지. 가운데가 아들이자 '선배' 화가인 장복씨다.
ⓒ 박수호

덧붙이는 글 | 갤러리 쌈지 '할아버지의 기억' 전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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