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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초등학교 사회과 탐구 6학년 2학기 교과서 123쪽 '노벨상에 도전한다'는 제목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과학 기술은 매우 발달하여 세계적 수준에 이르는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세계의 과학 발달에 이바지하고 있는 인물에 대하여 조사해보자." 그리고 황우석 교수 사진이 있다. 황우석 교수 사진 아래에는 "복제 송아지를 탄생시킨 생명공학자 황우석 교수"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황우석 쇼크, 어린이들이 더 위험하다

▲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23일 오후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히는 동안 동행한 황 교수팀의 한 학생이 울먹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황우석 교수 바람은 어린이책 시장에도 불어닥쳤다. 속칭 '황우석 위인전'이다. 그동안 어린이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황우석 교수 관련 책을 쏟아냈다. 최근에 발간된 책만 보면 이렇다.

<황우석 박사의 아름다운 생명의 길>(이레미디어) 12월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2(줄기세포를 지켜라)>(학원사) 11월
<소를 사랑한 아이, 황우석(큰 인물 큰 이야기1)>(청개구리 펴냄) 11월
<소년 황우석1(세상을 바꾸는 과학자)(지엠디북 펴냄, 매일경제 과학기술부 지음) 11월
<만화 황우석(소몰이 소년의 꿈과 도전) 상·하> (동아사이언스) 10월
<얘들아! 황우석 선생님 성공을 배우자>(동서문화사) 10월
<황우석 박사와 줄기세포1(줄기세포가 뭐예요?)(학원사) 9월
<황우석의 꿈>(동서문화사 펴냄·이상화·이지현 외 지음) 8월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이웃을 위해 꺾이지 않는 황소고집 황우석- 나도 이렇게 되고 싶어요 18>(파란자전거) 7월


제목엔 없지만 내용에 황 교수가 등장하는 책은 더 많았다. 어린이 과학책에서 황 교수는 빠지지 않는 '황금주'였다.

<인간복제에 대한 호기심 73가지(복제소 영롱이와 복제양 돌리의) (황매) 8월
<교수님 교수님, 줄기세포란 무엇인가요?>(태서) 8월
<얘들아, 세상에서 가장 궁금한 게 뭐니?(과학기술편)>(토토북)- '세계 최초 인간 배아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
<생각쟁이 2005.2>(웅진닷컴)


이 책들은 어떤 내용일까? 초등학생을 겨냥한 책들은 대개 만화와 사진을 실었다. 내용은 비슷했다. 책 한 권을 보자. <만화 황우석>(동아사이언스)의 한 장면이다.

황우석의 죄, 어른들의 죄

외국인들이 돈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외국인이 철컥 돈이 가득 든 가방을 열어보이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줄기 세포 연구를 계속 하시죠! 모든 걸 책임지겠습니다!" 그러자 황우석 교수가 말했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이 연구는 절대 사고 팔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줄기세포의 특허권자는 황우석이 아니라 대한민국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구절도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열강의 침탈을 겪었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을 경험했습니까?! 항상 눌려 지내던 우리나라가 이번에 세계에 어깨 한번 쭉 펴고 살아보라고 이런 천운이 주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여타 책들도 비슷하다. 황우석 교수는 우직하다. (별명이 '찍소'란 것도 빠지지 않았다) 어려서 집이 가난해 고생했다. 그러나 역경을 딛고 큰 꿈을 이뤘다. 줄기세포는 이렇다. 난치병을 고치는데 크나큰 획을 그었다.

<애들아! 황우석 선생님 성공을 배우자>(동서문화사)에서 황우석 교수가 말했다.

"우리 연구는 2막짜리입니다. 내년 후반쯤이면 1막이 끝나고, 국민들의 아낌없는 중간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막이 끝나면 2막은 그리 길지 않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은 이랬다.

"황 교수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우렁찼습니다. 국민들 모두 그의 눈에서 그의 입에서 그의 손에서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읽었습니다." (176쪽)

책은 시급히 회수하지만...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

ⓒ 출판사
현재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파문을 타고 이 책들의 판매가 뚝 끊어졌다. 교보문고 어린이 책 담당자는 "책이 나왔던 초기엔 다른 책보다 더 잘 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만화 황우석>을 펴낸 동아사이언스 출판사는 현재 <만화 황우석>에 대해 모든 서점에 반품을 요청한 상태다. 동아사이언스 출판사 김재필씨는 "논란도 있고 인물의 신빙성이나 신뢰도에 문제가 있어 모든 서점에 회수를 요청했다, 회사 이미지 때문이라도 더이상 판매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모든 서점들이 가판에서 내린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장래의 희망직업을 적어내라고 했다. 그러자 황 교수와 같은 과학자가 되겠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황 교수를 다룬 책 한 권은 이렇게 썼다. "황 교수가 요즘 어린이들의 꿈을 바꿔놓고 있다." 실제 2005년도와 2004년도 수의대 지원률은 대폭 상승했다.

한 인터넷 서점에는 황우석 교수를 다룬 어린이 책 말미에 다음과 같은 리뷰가 붙어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애가 보았는데 어려운 용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재미있게 읽고 황우석 교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이 글이 올라온 때는 논문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이제 '황우석 위인전'을 읽은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무슨 말을 해야할까?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파문이 터진 뒤에 황우석 교수를 다룬 책에 이런 덧글이 붙었다.

"후편이 하나 더 나와야겠네요. 세상을 속인 과학자 황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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