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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팀 논문의 2번 줄기세포의 체세포 기증자(척수장애) 아버지 김제언 목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요즘 뉴스가 무서워요....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황 교수가 왜 이런 상황까지 몰고 왔냐는 것입니다. 황 교수님이 책임을 져야 겠지요. 그러나 저는 용서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하렵니다".

10세 아들은 체세포를, 아내는 난자를 황우석 교수팀에게 기증한 김제언 목사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그렇게 말했다.

황우석 연구팀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연구가 의학적으로 과장되었음을 일찍 지적하지 못했다는 서울대 의대 교수 21명의 '뒤늦은 반성문'이 담긴 성명이 20일 발표된 가운데 황우석 교수가 10살된 체세포 기증자의 부모에게 임상실험을 두 번이나 제안했다가 연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아들의 체세포는 황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2번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사용됐다. 그런데 2번 줄기세포의 경우 아직 진위논란에 휩싸여 있다. 황 교수팀에서는 진짜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MBC < PD수첩 >이 전문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DNA 지문분석에서는 환자의 체세포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현재 줄기세포 연구수준에서 사람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황 교수의 임상실험 제안은 연구윤리나 의료윤리 측면에서 또다른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황 교수, 아들 반드시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

20일 오전 경기도 시흥에서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난 김제언(N교회) 목사는 황 교수의 연구를 위해 척수장애를 앓는 10살배기 아들의 체세포와 아내의 난자를 기증한 인물. 김 목사는 황 교수의 요청으로 그동안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위원회(IRB) 위원도 맡아 왔다.

김 목사의 아들은 2002년 8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척수장애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황 교수와 김 목사 가족은 같은 해 10월 처음 만났는데, 김군이 황 교수에게 "선생님이 저를 일으켜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황 교수는 "내가 반드시 너를 걷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듬해 김군의 체세포를 수 차례 떼어간 황 교수팀은 지난 5월 <사이언스>를 통해 "김군의 체세포로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 2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김 목사의 아내도 황 교수의 연구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난자채취 시술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목사는 < PD수첩 >이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는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 2번의 존재를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황 교수가 지난해 10월경 올해 5월쯤 수술을 하자는 말을 할 정도로 줄기세포 연구에 자신감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는 황 교수가 김 목사의 아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들의 체세포로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귀띔해줬다고 한다. 5월 <사이언스> 논문을 발표한 뒤 황 교수는 "아들의 줄기세포가 너무 잘 만들어져 미국 뉴욕의 슬로언-캐터링 암센터에도 샘플을 보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호언장담하던 황 교수는 그후부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막상 5월이 되자 황 교수는 "오는 10∼11월에 (수술을) 하자"고 했고, 10월 서울대에서 김 목사를 만난 자리에서는 "내년 10월쯤 하자"고 다시 말을 바꿨다.

"5월이면 된다 → 10월이면 된다 → 내년 10월에 하자"

▲ 황우석 교수팀 논문의 2번 줄기세포의 체세포 기증자(척수장애) 아버지 김제언 목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황 교수가 연구를 세 가지나 하다보니 워낙 바빠서 임상을 연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임상 날짜를 학수고대했던 것도 아니다. 황 교수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만약 수술이 너무 빨리 되면 우리 쪽에서 거부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줄기세포 연구수준으로 사람을 상대로 임상실험을 하는 것은 수년 내에 꿈도 꿀 수 없다는 게 의학계의 진단이다.

김중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사람에게 실험을 해서 줄기세포가 암세포로 바뀔 가능성은 80% 이상"이라며 "사람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병현 인하대 의대 교수도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인간을 상대로 한 임상실험을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렇듯 현 단계에서는 환자가 떠안아야 할 위험부담이 큰데도 황 교수는 환자 가족에게 수 차례 임상실험을 제안했다가 별다른 해명 없이 연기를 거듭한 것이다.

김 목사는 "황 교수는 연구가 빨리 진척되면 임상실험이 가능하리라고 확신했고, 내게 배려한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 같다"며 "100% 확신 없이 어떻게 실험하겠는가? 황 교수가 그렇게 무모한 사람은 아니라고 본다"고 이해했다.

"황 교수 추천으로 수의대 IRB 위원 맡았지만..."

한편으로, 황 교수가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를 한두개 만들었다하더라도 '확실히 자신있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차일피일 실험을 미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김 목사는 "그런 것은 심증만으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황 교수가 왜 이런 상황까지 몰고 왔냐는 것이다. 황 교수 말대로 논문은 1∼2년 늦게 발표해도 괜찮다. 설사 원천기술이 없다고 해도 황 교수는 줄기세포 수립에 가장 근접한 사람 아닌가? 왜 그랬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황 교수가 자신의 연구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김 목사를 서울대 수의대 IRB(기관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한 것도 도덕적인 논란을 촉발시킬 대목이다. 황 교수는 2004년 말 종교계 몫으로 김 목사와 동국대 불교대학원장인 보광 스님을 IRB 위원에 천거했다. 김 목사는 황 교수가 환자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감을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2005년 생명윤리법 발효를 앞두고 국제기준을 맞추다 보니 IRB가 급조될 수밖에 없었다. 황 교수의 연구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안티세력으로 IRB에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고 본다. 환자의 부모가 IRB에 들어갔으니 황 교수에 우호적이지 않겠냐고 보는 것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누가 IRB 위원이 된다고 해도 황 교수를 지원했지, 감독하려는 관점이 아니었을 것이다."

"믿고 싶다, 그러나 내 아이 줄기세포가 없다면..."

▲ 황우석 교수팀 논문의 2번 줄기세포의 체세포 기증자(척수장애) 아버지 김제언 목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황우석 박사팀은 2번줄기세포를 환자맞춤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목사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MBC < PD 수첩 > 특집방송이 15일 방영되기 전 한학수 PD로부터 "아들의 체세포로 만들었다는 줄기세포 2번과 체세포의 DNA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2탄 방송이 그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우리 아이의 줄기세포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하면 황 교수가 과정마다 설명하고, 연구실도 보여주고, 언제쯤 시술하겠다고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모든 게 거짓이었다는 얘기잖아요? 난 요즘 뉴스가 무서워요. 우리 아이에게 '모든 게 거짓'이라고 말하면 아이 심경이 어떨까? 아이도 줄기세포 2번이 자기 것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한 PD의 얘기를 들은 후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아들에게 '이건 1∼2년에 되는 일이 아냐, 상당히 오랜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반드시 이뤄주실 거야'라고 얘기해뒀다. < PD 수첩 > 특집방송이 있던 날 아내는 셋째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방송을 보고 너무 놀라더라. 황 교수에게 연락이 안돼 이병천 교수에게 메시지를 남겼지만 아무 연락이 없었다."


김 목사는 "< PD수첩 >이 없었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속았겠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졌을 것"이라며 "황 교수가 나름대로 일을 추진했다면 아들이 치명적인 위험을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 PD수첩 >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황 교수의 과학적 재능 사장시키기엔 국가적 손실 크다"

김 목사는 최근의 상황 전개로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지만 여전히 황 교수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아들의 줄기세포가 없고,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해도 기꺼이 이해하고 용서하겠다는 생각이다.

"논문에 인위적 실수, 의도적인 실수가 있었다면 학자의 양심으로 문제가 있다. '논문을 속인 학자가 과연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겠냐'는 사람도 있지만, 줄기세포 2, 3번은 성공했으리라고 믿는다. 줄기세포의 존재 또는 원천기술의 유무를 떠나서 황 교수가 가진 과학적 재능을 사장시키기에는 국가적 손실이 크다.

과학자에게 윤리가 정말 중요하지만, 때로는 과학자의 재능을 살리기 위해 윤리적 부분을 약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황 교수가 책임질 부분은 분명히 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걸 포기하면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먼 미래를 내다봤으면 좋겠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 목사는 아들이 작년 이맘때 써놓은 헌금봉투를 보여줬다. 금방이라도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에 젖어있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소년은 마치 앞날을 일찌감치 내다본 듯한 글귀를 봉투 앞면에 적었다.

"이대로라도 좋아요."

▲ 황우석 교수팀 논문의 2번 줄기세포의 체세포 기증자(척수장애) 아버지 김제언 목사가 아들이 헌금봉투에 적은 '이대로 라도 좋아요'라는 글을 보여주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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