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황우석-PD수첩>의 진실게임에서 PD수첩팀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황우석 교수팀의 부적절한 대응도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다수는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러한 '압도적 황우석 지지' 현상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다양한 분석을 싣습니다. 이 글에 대한 시민기자나 독자 여러분의 반론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반론은 기자회원으로 가입해 기사를 쓰거나 기사 말미에 댓글로 달아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먼저 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한 논란도 많지만, 나로선 현재 처한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생각해 볼 경우 그다지 반대하고 싶진 않는 입장임을 우선 확고하게 밝혀두는 바이다. 나 자신이 지금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줄기세포 연구 자체가 윤리적으로 위배되니 마니 하는 그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이 글은 '황우석과 < PD수첩> 사태'에 대한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과 그 뿌리 깊은 이유에 대해서다.

모든 첨예한 윤리문제들의 배경에는 찬성이든 반대든, 어느 쪽을 선택하든 모호함과 안타까움의 색조가 불가피하게 깃들어 있다. 이러한 문제가 민감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민감하다고 한다면 그럴수록 철저히 공개적이고 투명한 과정과 절차로써 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일단 현재 시점에서의 분명한 사실은, 양측 모두 '연구과정의 윤리'(연구내용이 아님, 내용 논란은 진행 중)와 '취재과정의 윤리'라는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를 도표로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 황우석과 < PD수첩> 사태에 대한 정리 도표
ⓒ 정길영

같은 잘못도 비중이 다르고 경중이 있다?

현재로서 남겨진 문제 가운데 황 교수의 연구논문 내용의 진위 여부야말로 의도적인 조작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지만, 나는 이 글에서 이번 사태에서 불거져 나온 연구논문 내용의 진위 여부 문제는 진행 중인 사안이라 일단 제쳐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연구논문 내용의 진위 여부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있어 어떻게 50대 50의 찬반논쟁도 아니고 거의 대다수가 일방적이고도 압도적으로 황 교수를 지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그 본질적 이유에 대해서다. 내가 보기엔 이것은 단순히 국익보다 더 깊숙한 차원의 문제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볼 경우 이번 < PD수첩>의 중요한 실수는 황우석을 단순히 일개 유명 과학자의 탐구 정도로서 생각하고 이를 검증해보려 한 점에 결정적인 오판의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뒤에 언급될 것이지만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 황우석이란 인물은 단순히 능력이 뛰어난 한 개인 과학자로서의 의미가 아니다.

어쨌든 이번엔 진실 규명보다 국익이 더 우선시되면서 거의 전국민들에게 욕먹는 사태를 보고서 나는 지난 2002년도 한반도를 휩쓴 월드컵 열풍이 떠올랐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양측 다 분명한 문제점을 드러냈음에도 이에 대한 반응은 왜 이리도 일방적인 것일까?

나는 솔직히 황 교수가 설령 난자제공을 매매로 얻었다고 하더라도 만에 하나 그것이 서로 간에 투명한 절차와 과정에 따른 것이었다면 그 자체가 잘못이라곤 보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물론 < PD수첩> 방송은 난자매매 자체가 나쁜 것으로 비춰졌기도 했지만, 사실상 황 교수의 문제점은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잖은가.

황 교수의 잘못은 적어도 그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계속 사태를 외면했을 만큼 거짓말을 한 것이 명백하고도 분명하게 드러났었다는 점에 있다. 또한 연구를 위해 단순히 거짓말 살짝 한 것을 가지고 방송언론이 그렇게 흠집을 낼 수 있느냐고 반문할 진 몰라도, 분명한 것은 황우석 교수가 이 중대 연구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라는 사실이다.

솔직히 난자를 제공한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제공한 난자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알 수 있어야 투명한 것 아니겠는가. 만일 우리 자신이 총책임자라고 생각해보라. 제공받은 난자의 궁극적 출처도 분명하게 모른 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만 얘기해버리는 것은 명백한 책임회피요 부실한 일처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알고 보면 서로 엮여 있다.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은 대외적인 것이었고, 업무 처리과정의 부실함은 내적 현실이었다. 그러나 < PD수첩> 팀을 구속하라는 비난은 엄청 나왔어도 황 교수를 구속하라는 얘기는 현재 어디에도 없다.

이 시점에서 혹자는 내가 지금 < PD수첩> 팀의 잘못은 놔두고 황 교수의 잘못만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렇게 쓴 이유가 있다. 이것은 '그렇다면 황 교수의 잘못은 감싸고 < PD수첩>의 잘못만 지적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라는 그 역공의 질문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많은 여론의 글들을 잘 살펴보라. < PD수첩>의 취재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잘도 주목하지만, 황 교수 지지자들 가운데서 황 교수의 분명한 잘못도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본적이 없다. 아니 그냥 아무 잘못조차 없는 듯 그저 묻혀갈 뿐이다.

우리네 한(恨)의 굴절된 표출, 한반도의 국민은 언제나 목말라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일방적 반응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왜 우리 국민들은 이토록 명백한 양측의 잘잘못 앞에서조차 온갖 억지와 추측들을 동원하면서 일방적으로 황 교수를 두둔하고 방송사는 비난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온 국민의 90% 이상이 황 교수를 지지할 정도라고 하니 가히 경이적이고도 국가적인 지지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기이한 광기의 현상에서 오래전 전 국민을 휩쓸었던 월드컵의 열풍이 떠올랐다. 우리는 예로부터 약소민족이라는 점을 집단무의식 중의 하나로서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한(恨)이 많은 민족이요 백성이라고 한다.

한때라고 하더라도 왜 우리는 박찬호에 열광하고 현재는 박지성에 열광하는가? 그 사람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거나 그들에게서 한 몫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닐진대, 그 무엇이 이들로 인해 이토록 나를 흥분시키며 들뜨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비좁은 한반도 땅에 사는 우리들은 오래전부터 무의식적으로나마 세계를 빛낼 영웅을 간절히 목말라 하는 것이다.

"Dynamic Korea"라는 한국의 역동성은 내가 볼 때 반만 년 한맺힘의 몸부림에 다름 아닌 표현이다. 월드컵 4강의 열풍은 이 나라 전역을 온통 하나로 뒤흔들어 놓았었고, 우리 안에 응어리졌던 한을 마음껏 풀게끔 하였다. 박찬호나 박지성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혁혁한 성적을 내면 전 국민들이 저녁에 술 한 잔을 걸칠 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우리나라의 능력과 역량은 참으로 드높지만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웅크리고만 살아왔었다.

우리 한반도 사람에게 황우석 박사란 일종의 한풀이다. 우리가 황우석에 열광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근원적으로 한민족 정서와 관련한다고 본다. 물론 당연히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염려해서 황 박사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러한 차원을 몰라서 일컫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이고 더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황우석 지지 열풍에 대한 이유를 말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지금, 세계 만방에 이 작은 땅덩어리의 동방의 나라 한국을 찬란히 빛내줄 -어쩌면 우리의 오랜 숙원이었던 노벨과학상도 탈 수 있는- 그 영웅에 목말라 하는 우리 약소민족의 한맺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황우석 지지 신드롬은 이미 한민족의 파토스다. 이는 집단무의식의 전염과 발현이며 단순히 국수주의나 국가주의 운운하는 것보다도 더욱 깊숙한 차원의 지점에 속한다.

이 한맺힘은 오래 전부터 이 땅에 과잉한 교육열을 달궜으며, 전국민을 뒤흔들었던 월드컵의 열광을 불러 일으켰다. 한맺힘의 표출이 늘 바르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황당한 얘기라고 생각할 진 모르나, 강남 대치동 아줌마들의 몸살과 금번의 황 교수 지지와 < PD수첩> 때리기는 알고 보면 같은 패턴의 변종에 다름 아니다. 냉정하게 얘기한다면 그것은 둘 다 '굴절된 한풀이'인 것이다. 물론 대치동 아줌마들의 몸살에 대한 고발을 < PD수첩>이 방송했을 경우, 이번 황우석 사건 만큼의 후폭풍은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예컨대 만약 현재의 프리미어리거 세계적인 축구선수 박지성이 약물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제보가 있을 경우 < PD수첩>이 이를 상세하게 보도했다고 한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는 황우석 만큼이나 거센 후폭풍이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 현재 잘 나가는 한국의 세계적인 축구 선수를 왜 하필 일개 언론방송이 축구에 대해서 혹은 스포츠의 세계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렇게 흠집 내는데 골몰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에 대한 네티즌들의 글들을 유심히 잘 분석해보라.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왜 지금 일개 방송사가 황우석 죽이기를 하느냐고 다들 난리다. 황우석 교수는 이미 전 국민들의 영웅이자 국보급 성역인 것이다. 애국주의니 뭐니 해도 어쨌든 황우석 교수는 우리 민족의 신화적 영웅이다. 이른바 '황순신'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황우석을 성웅 이순신에 견주는 네티즌 글도 심심찮게 많이 보았었다.

그러니 어찌 "일개 < PD수첩>"이 무슨 권리로 무슨 자격으로 세계적인 우리 과학자를 평가하느냐란 표현이 정말 알게 모르게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황우석을 비판하면 "매국노"가 되는 반면에, 황우석에 대해선 우리 국가의 자랑 혹은 "국익"이란 표현도 비일비재하게 나온다. 국익이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황우석 연구로 인한 그 이익의 지분을 전국민들이 골고루 나눠가질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국익'의 실체란 무엇인가?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알린 황우석 교수가 자랑스럽게도 나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고무된 동종의식이 국익의 정체라는 얘긴가?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황우석에 대한 일방적 지지 뒤에 잠복된 거대한 집단무의식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던 것이다. 적어도 황 교수의 명백한 잘못 앞에서만큼은 현재 이 나라 국민들은 온통 눈이 멀어 있는 것이다. 국익도 '진실에 기반하지 않는 국익'이라면 진정한 국익이라고 할 수도 없잖은가.

황우석 교수의 연구 시스템에 새로운 전환과 도약을

혹시 오해할까봐 얘기하지만, 나는 황 교수의 연구 자체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임을 분명히 못박아두고자 한다. 솔직히 이번 < PD수첩>이 심각하게 몰랐던 점은, 바로 '황 교수가 어떤 식으로 탐구했느냐'가 아니라 '황 교수가 한국의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라는 점에 대해서였다. 네티즌들의 거센 후폭풍을 맞았던 < PD수첩>은 바로 이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흔히 이번 사태를 두고 '진실' 대 '국익'이라고 말하지만, 그 같은 '국익' 뒤에는 '우리네 한맺힘의 정서'가 집단무의식으로서 엄연히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진실을 들이대어도 그러한 집단적 정서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정서적 경험이란 경험의 가장 원초적 형태이며 그것은 논리나 이성이 결코 통하지 않는 차원이다. 오히려 이성이 정서의 하위범주로서 작동될 뿐, 명백한 사실 앞에서조차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귀에 꽂히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 PD수첩>은 진실을 말했다고 하더라도 '책임 없는 진실'을 말했다고 비판하지만 책임이란 것이 꼭 언론만의 것도 아니잖은가. 앞서 말했듯 모든 과학기술 연구에도 책임은 뒤따른다. 이미 모두에게 적용되는 그런 식의 주장들은 결국은 하나마나한 얘기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서 앞으로는 모든 절차 과정들을 정말 투명하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뚫고 나가길 간절히 소망하고 소망하는 바이다.

나는 명백한 잘못과 오류 앞에서는 늘 겸허한 신화창조를 원한다

끝으로 황우석 교수가 한반도 국민의 정서적 한(恨)과 관련이 있다는 나의 분석적 얘기가 황당하게 들린다면, 반반 논쟁도 아니고 거의 전 국민의 90% 이상이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난 그 이유에 대한 분석과 설명부터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에 대해 황우석 박사는 잘못이 없고 < PD수첩>이 잘못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게 아니겠느냐 라고 말하겠지만, 그렇다면 또 황우석 교수 역시 분명히 거짓말을 한 점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또 궁금해지는 것이다.

민감한 부분에 있어서의 명백한 거짓과 미숙함이 드러난 마당에서조차도 국민의 대다수가 이를 지지하는 현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집단무의식'의 차원이라고밖에 볼 수 없잖은가. 흔히 일방적인 황우석 지지와 < PD수첩> 때리기를 '광기'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 있는 것이다.

분명한 잘못과 오류 앞에서조차도 열려 있지 않는 신화적 우상이란 맹목적인 집단적 광기의 숭배 대상으로 전락될 뿐이다. 우리가 '오류'와 '비극' 앞에 겸허하지 않을 때 이미 그것은 그 자체로 '종말'인 것이다. 오류와 비극을 위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더 나은 미래로 열린 '기회'이자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 명언은 그렇게 새삼스런 경구도 못된다. "진리를 사랑하는 길은 곧 오류를 보호하는 것이다."("love of truth is error's safeguard") 나는 황우석 박사에게서 지금 보다 더 튼튼한 세계적인 신화창조를 기대해 보고 싶은 사람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