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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 김영균·안홍기·박상규·김덕련 기자

▲ 고 노충국씨에게 위암 의증 여부를 알려줬다는 군 병원 측의 주장은 결국 거짓으로 밝혀졌다. 노씨 장례식이 4일 오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으로 치러졌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10월 27일 위암으로 사망한 고 노충국(28)씨의 군 병원 외래진료기록지와 내시경 검사 소견서에 적힌 '위암의증' 기록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군 병원이 노씨에게 위암 가능성을 경고했다고 발표한 국방부 해명도 거짓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따라서 진료기록 조작 행위가 개인적 차원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상부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진상규명거리로 떠올랐다.

군 당국은 지난 10월 24일 <오마이뉴스> 첫 보도로 이번 사건이 알려진 뒤 "담당 군의관은 노씨에게 악성종양의 가능성을 설명했고 민간병원에서 검사받기를 권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인권단체 관계자, 일부 의사들은 이같은 군 당국의 주장에 강한 의구심을 표해왔다.

이들은 국군광주병원이 처음부터 순순히 외래진료기록지를 공개하지 않고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내놓은 점, 진료 날짜를 기록하는 접수 직인 위에 글씨가 쓰인 점 등을 들어 군 병원의 진료기록지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7월 중순 이후 진료기록지·내시경검사소견서에 써넣어

조작① 노충국씨의 군 병원 외래진료기록지. 4월 28일 진료기록의 마지막줄, "내시경 소견상 malignancy 배제 어려워" 부분은 7월 중순 이후 적어넣은 것이다.
ⓒ 오마이뉴스
조작② 노충국씨의 군 병원 내시경 검사 소견서. 맨 마지막의 "r/o gastric cancer(위암 의증)"이라고 적힌 부분 역시 7월 중순 이후 써넣은 것이다.
ⓒ 오마이뉴스
노씨를 최초로 진료한 국군광주병원 군의관 이아무개(32) 대위는 사건이 이미 커진 3일 오후 아버지 노춘석씨를 만나 "외래진료기록지 내시경 소견서 중 '위암 의증' 부분을 나중에 써넣었다"고 고백했다.

4월 28일 노씨에 대한 외래진료기록지 마지막 부분에는 내시경 검사를 했던 이 대위의 필적으로 "내시경 소견상 malignancy(악성종양) 배제 어려워"(한글 번역은 편집자)라고 적혀있다. 또한 같은날짜 내시경 검사 소견서에도 '내시경 최종소견'란 맨 마지막 줄에 "r/o gastric cancer(위암 의증)"(한글 번역은 편집자)이라고 적혀있다. 결국 이 두 문장은 '사후 조작'이라는 말이다.

이 대위는 3일 오후 아버지 노춘석씨와 여동생 노현숙씨를 만난 자리에서 "노충국씨가 위암 말기라는 소식을 듣고 너무 무서워 내가 나중에 '위암의증'이라는 진단을 써넣은 게 맞다"고 털어놨다. 지난 7월 7일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은 노씨 아버지가 같은 달 중순경 군 병원으로 찾아오겠다고 전화했다는 말을 듣고 (위암의증 소견을) 가필했다는 것.

당시 노춘석씨는 7월 중순경 국군광주병원에 외래진료기록지를 보기 위해 찾아가겠다고 연락한 뒤 7월 27일 직접 방문, 두 시간의 실랑이 끝에 기록지를 복사해갔다.

이 대위는 또 노춘석씨에게 "노충국씨 사건이 보도된 이후 괴로워 잠도 못 잤다"며 "신문과 TV에 관련 보도가 나오면 아예 꺼버리곤 했는데, 아버님한테 털어놓고 나니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고 고백했다고 노씨는 전했다.

그러나 이 대위는 노씨의 위암말기 소식과 아버지가 찾아올 것이라는 얘기를 누구로부터 전해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군의관 이 대위의 고백을 들은 아버지 노춘석씨는 이날 국군광주병원장을 찾아가 이에 대해 항의했다. 그러자 병원장은 "나도 오늘(3일)에서야 보고 받았다, (그 전에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정원 분석 결과도 '사후 조작' 뒷받침

▲ 국군광주병원의 고 노충국씨 '내시경 검사 소견서' 일부분. 내시경 최종소견 3번에 '위암 의증(R/O gastric cancer)이라고 적혀있으나, 중앙인영필적감정원은 1번과 2번 소견 사이의 간격과 2번과 3번 소견 사이의 간격이 크게 차이가 나고, 글씨 크기도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동시에 일괄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 오마이뉴스
한편 노씨의 외래진료기록지를 감정한 감정원에서도 '가필 흔적'이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0월 31일 노씨의 외래진료기록지 조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칼라 복사된 외래진료기록지를 서울시에 소재한 중앙인영필적감정원에 감정분석을 의뢰했다. 중앙인영필적감정원은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의 해직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11월 공문서를 감정한 세 곳 중 하나이다.

감정원은 3일 오후 보내온 감정서에서 "감정대상 필적(위암의증 부분)은 여백, 접수인과 교차 및 필적의 기울기 특징을 볼 때 본문과 동시에 일괄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고 밝혔다. 이는 '위암의증' 대목을 나중에 써넣었다는 이 대위의 고백을 뒷받침한다.

군의관 차원의 조작인가... 국군의무사령부 "전혀 모르는 일"

이처럼 진료기록 조작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조작 행위가 군의관 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 또는 상부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가 새로운 규명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난 24일 밤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이 사건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보고했던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사전 조작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도 주목된다.

국군의무사령부는 외래진료기록지의 조작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국군의무사령부 정훈장교는 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군의관이 외래진료기록지를 고쳤다는 사실을 알았느냐'고 묻자 "의무사령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그는 "현재 국방부 합동조사팀이 전적으로 조사하고 있고, 설사 조사과정에서 군의관으로부터 그런 진술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국방부 공식 발표 전에 의무사령부로 알려주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국군광주병원장에게 이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를 수차례 했으나 오후 5시 현재 "회의 중", "영내 순찰 중"이라는 부속실 관계자의 답변만 돌아왔다.

국방부는 지난 10월 28일 '고 노충국씨 사망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합동조사팀을 구성, 군 병원의 오진 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방부는 조만간 합동조사팀 조사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노충국씨 사건을 추적중인 MBC 시사프로그램 < PD수첩 >은 오는 8일 밤 방송을 통해 담당 군의관의 진료기록 조작 고백 등이 담긴 육성을 생생하게 내보낼 예정이다.

국방부 '진료기록 조작' 이미 파악했었다
병원장 "군의관이 28일 합동조사팀에 고백"

▲ 군 제대 2주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중 숨진 고 노충국씨 장례식이 4일 오후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으로 치러지고 있다. 화장이 진행되자 고인의 유가족들이 멍하니 분향소를 바라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외래진료기록지와 내시경 소견서에 쓴 '위암 의증' 기록은 나중에 써넣은 것"이라는 고 노충국씨 담당 군의관의 고백이 3일 나옴에 따라 그동안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진료기록 조작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그러나 담당 군의관이 혼자서 임의로 조작했는지, 아니면 상부 지시로 기록을 덧붙였는지에 대한 명확한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약 담당 군의관이 상부 지시로 기록을 바꿨다면 국방부와 육군본부, 국군의무사령부 등은 조직적 은폐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 노충국씨를 최초로 진료한 국군광주병원에서는 이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홍근태(대령) 국군광주병원장은 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담당 군의관이 기록을 바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최근 국방부의 조사를 받을 때 군의관이 기록을 바꾼 사실에 대해 말한 것 같다"며 "우리도 그 조사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국방부 합동조사팀은 지난 10월 28일 국군광주병원을 찾아 담당 군의관과 병원장에 대한 조사를 벌인 바 있다. 합동조사팀은 또 최근 조사에서 군의관의 기록조작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조사팀은 다음주중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고 노충국씨 사망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합동조사팀은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사실확인을 거부했다. 최홍숙 국방부 합동조사팀장은 4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담당 군의관이 기록조작을 실토했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므로 어떤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어 최 팀장은 "최대한 신속하게 수사를 벌여 곧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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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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