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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서울시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중국 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청'(漢城)에서 '서우얼'(首爾)로 바꾸기로 했다고 23일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1월 19일 서울시가 한청을 서우얼로 바꿔줄 것을 요청하자 중국 언론들은 '한국 민족주의의 발흥'이라며 비판 일색이었다. 또 지난 1992년 한중 수교 때도 한국이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서우얼(首兀)'로 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실상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러나 서울의 중국이 표기 변경이 이뤄짐으로써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에 이어 '연타석 홈런'을 친 셈이 됐다.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을 위해 지난 9개월간 주중 한국 대사관 등이 상당히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 2004년 1월 '중국어 표기 개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준비한 것은 서울시이기 때문이다.

23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 회사 기자가 관련 부서에 확인한 결과 "중국은 가까운 시일에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청에서 서우얼로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화통신>은 이 문제에 대한 한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서울을 한청이 아닌 서우얼로 표기하는 것이 국제 관례에도 부합하고 중국의 외국 지명 번역 규정에도 맞는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이 중국의 국영통신이기 때문에 이날 보도는 사실상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올 초 서울시가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중국의 반응은 상당히 싸늘했다. 일단 중국 정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에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로 해석됐다. 대신 대부분의 중국 언론들은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중국 언론 대부분 비판적

이들은 한청(漢城)이라는 지명이 한자 문화권에서 600년 넘게 사용되어 이미 습관이 됐다는 점을 내세웠다.

즉 1394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부터 사용되어 이미 중국 대륙은 물론이고 타이완·싱가포르·홍콩 및 화교 사회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언어 습관을 인위적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舊金山'(샌프란시스코), '牛津'(옥스포드) 등 실제 발음과 전혀 다른 중국어 표기가 있는데 왜 유독 한국만 한청(漢城)만 문제삼느냐는 힐난도 있었다.

더 나아가 일부 중국 언론들은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을 한자 문화권, 즉 중국 문화권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한국 민족주의의 발흥' 탓이라고 봤다.

올 1월 25일 <샨터우 특구 만보>의 경우 "한자 범람으로 한국어가 사라질 것을 걱정했나? 한국의 (서울) 명칭 변경은 억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맹비판했다.

당시 이 신문은 "한청이라는 명칭은 1394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정한 것"이라며 "그러나 19세기 들어 한국은 민족주의의 고양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1970년부터 한국에서는 초·중·고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고 표음문자인 한글만 남겼다"며 "이번 서울의 명칭 변경은 한국 민족주의 발전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25일 홍콩의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름에 무슨 뜻이 담겼기에'라는 사설에서 "수백년 관행이었던 한성이 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가?"라며 한국과 중국 민족주의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봤다.

중국 외교학원의 저우잉성 교수는 "한국은 수도 서울의 이름을 변경할 권리가 있다"며 "그러나 중국과 한자 문화권의 나라들도 역시 변경된 이름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이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변경하든 말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저우 교수는 "한국은 자신의 문화를 보호함과 동시에 외래 문화, 특히 광대하고 심원한 중국 문화를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당부성 경고(?)도 잊지 않았다.

"지명의 변경 권리는 해당 국가에 있다" 수용한 듯

▲ 지난 1월25일 중국 <샨터우특구만보>에 실린 서울 명칭 변경 비판 기사. '한자 범람으로 한글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했나?'라고 제목을 달았다.
물론 이런 와중에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시각을 보였다.

예를들어 저명한 지리학자인 상하이 푸단대학의 거젠슝(葛劍雄) 교수는 "지명을 그 땅의 주인이 정한다는 것은 국제적 관례"라며 "만약 다른 사람들이 변경된 지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이유가 있을지라도 중요한 원인은 (상대방과) 우호관계가 아님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수도의 이름을 베이핑(北平)에서 베이징(北京)으로 바꿨다"며 "중국과 우호 관계를 맺은 모든 나라들은 이런 중국 정부의 결정을 존중했다, 타이완도 처음에는 베이징을 받아들이지 않고 베이핑이라고 썼지만 지금은 베이징이라고 한다"고 사례를 들었다.

이날 <신화통신>의 보도를 보면 중국 정부가 서울의 명칭 변경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거 교수의 논리와 똑같다. 즉 "서울을 한청이 아닌 서우얼로 표기하는 것이 국제 관례에도 부합하고 중국의 외국 지명 번역 규정에도 맞는다"는 것이다.

이는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애초 중국 정부의 냉담한 시각와 중국 언론들의 비판적 논조, 한·중 수교 때 서울의 중국어 표기 변경이 거부당한 경험 등 불리한 조건에서 이 같은 성과를 올림으로써 이명박 시장은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공적을 추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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