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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정, 선거구제 개편, 개헌을 둘러싼 논란이 반대 분위기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연이은 제안으로 'X파일' 파문을 뒤로 밀어내며 정치권의 돌풍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찻잔속의 태풍처럼 보이던 것이 이제는 여당 내에서 상당한 동조자를 확보하기 시작했고 한나라당에서도 당 대표의 입단속에도 불구하고 몇몇 의원들로부터 연정 논의가 슬슬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의 정치적 사안들이 정치권에서 의원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쉽게 편 갈라지는데 반해 이번 사안은 정치적 성향이 서로 반대라 할 수 있는 보수적인 한나라당과 진보적인 민주노동당에서 함께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당이 닮아 간다고 하는 것은 물론 난센스다. 그것은 그 사안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 때문에 반대할 수 있지만 또한 당이나 의원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복잡하거나 헷갈리는 문제일 때 자신보다 정치적 판단이 앞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이나 집단 등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고 그 사안의 성격을 어림잡는 것도 일반인들이 정치적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한 방법일 것이다.

유시민의 정치적 성향, 개혁인가 보수인가

이번 대연정 논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며 앞장서서 논란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그의 좋은 입심은 논란에 활기를 주는데 꽤 큰 역할을 할 듯하다. 적어도 그가 가세하고 한나라당이 강력하게 반대한다면 구도가 묘하게 얽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시민 의원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 때문이다. 이면에 있는 이해 구도를 읽지 않으면 정말 헷갈리기 쉽다. 유시민 의원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역시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를 통해 정치적 문제에 접근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정형근, 김용갑 의원은 보수, 수구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개혁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비난 또는 비판받는다. 반대로 노회찬, 단병호 의원은 개혁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에게 지지받고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비판 받는다.

그런데 정형근 의원 같은 사람이 오해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비난 받거나 노회찬 의원 같은 사람이 개혁적인 사람들에게 비난 받는다면 당사자들은 정말 억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특정 정치인에 대해 그 성향을 잘못 알고 반대로 비난하거나 지지했다면 속은 국민은 얼마나 억울할까?

유시민 의원은 대중적으로, 특히 젊은 층에게 대단히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다. 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젊은이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틀에 매이지 않는 튀는 이미지와 개혁적인, 심지어는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불가리지 않고 아무하고나 싸움질하는 그의 대담무쌍한 기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먼저 기개나 자유분방함이야 제쳐 두고, 대중적으로 각인된 만큼 그는 정말 정치적으로 개혁,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에게서 내비치는 대담한 기개와 자유분방함의 이미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별적이고 사소한 문제에 대한 그의 단편적인 반응이 아니라 국회에서 쟁점이 되었던, 정치적 성향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주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그의 태도를 통해 이를 한번 확인해 보자.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서 보수적 입장 견지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서 그는 어떠했는가!

김선일씨의 죽음과 관련한 추가파병 문제에서 배짱 좋게 '사람 하나 죽는다고 파병 포기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하던 그는 추가파병을 지지하면서 뜬금없이 '파병하면 콜레라를 앓는 격이 되고 파병하지 않으면 페스트를 앓는 격이 되므로 어쩔 수 없이 파병할 수밖에 없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왜 그런 비유를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다. 아마 파병을 하지 않으면 닥칠 미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것 같은데 그가 미국이 왜 페스트 균 같은 존재인지라도 설명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장래를 생각해서 미국에 찍히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는 지난 연말 파병기간 연장동의안에서는 정치적 능란함을 다시 한번 발휘하며 반대하기는 했다. 그가 어떤 쪽에 표를 던지더라도 통과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심지어 '이철우 의원 간첩설' 발언으로 국회에서 징계 논란까지 빚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까지도 반대했다.

한-칠레 FTA 협정에서는 어떠했는가!

그는 찬성의견을 내놓는데 그치지 않고 농민단체 등 반대하는 사람들이 경제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경제학 강의를 하는 수고까지 한다. 나아가서 수매제도는 부농만 배부르게 하는 것이므로 폐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천박한 신자유주의 논리의 복사판인 그의 FTA 예찬론은 제쳐 두고라도 수매제도에 대한 그의 몰상식이야말로 어처구니없다.

지금 한국의 큰 부자들은 거의 모두가 2, 3차 산업과 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옛날처럼 토지를 기반으로 한 대지주가 부자의 중심세력인 때는 지난 지 이미 오래다. 수매제도는 우리 현실에서 볼 때 국가차원에서 할 수 있는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유시민 의원의 말대로라면 전량 수매를 주장하는 농민회 회원들은 전부 부자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모두 바보거나.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태도 그 때 그 때 달라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어떠했는가!

작년 말 정치권에서 여야가 법의 개정, 폐지 문제를 두고 팽팽하게 대립하고 시민 사회단체에서도 연일 폐지를 주장하면서 전국민적 쟁점으로 국가보안법 문제가 떠올라 있을 때였다. 유시민 의원은 갑자기 국가보안법 폐지 당론을 포기하고 자유 투표로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만약 폐지 당론을 밀고 나갈 경우 표결 후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폐지안이 부결될 경우 책임을 한나라당이나 보수적 성향의 의원들에게 통째로 떠넘길 수 있는 방법이고 어렵겠지만 혹 통과되더라도 한나라당 등 보수, 수구세력들의 공격의 화살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열린우리당 내에서 의원들 사이에 개정, 폐지 의견들이 갈리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무런 책임 안 지고 폐지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유시민 의원은 자기의 이 기막힌 제안에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찬성할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시민 사회단체에서는 유시민이 한나라당하고 내통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기대했던 당시 열린우리당 지도부조차도 폐지 당론을 유지하자는 주장을 고수했다. 자기 주장이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갑자기 튀듯이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든 그가 또한 이번에는 연정을 위해서 국가보안법 문제는 능히 2-3년 미룰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일관된 입장 견지하며 싸운 것은 노무현 탄핵 반대뿐

사실 의원 활동을 하면서 유시민 의원이 확실히 그리고 일관되게 하나의 주장을 가지고 싸웠던 주요 정치적 사안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하나였다. 그런데 이 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적 반발은 노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의미보다는 당리당략적 이해에 근거해서 대통령을 탄핵하고자 한 한나라당의 횡포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 때 노무현 대통령이 대미 저자세 외교와 민생 문제에 대한 개혁 정책의 후퇴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진보세력의 일각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꼭 반대해야만 하는가라는 주장까지도 나왔다.

그런데 유시민 의원이 이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며 매달린 이유는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한 이유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국민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하여가 아니라 야당의 횡포로부터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고자 탄핵 반대의 촛불을 들고 나선 것이다.

이에 반해 그는 국민의 뜻과 권리를 지키고자 했다기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고자 했고 그것에 따른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확보하고자 했다. 적어도 이후의 그의 일관된 행동을 볼 때 그런 추론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에게 민의와 국민적 이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그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노동당 의원은 물론 열린우리당에서조차도 별로 개혁적이지 않다. 앞에 열거한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보다 연배가 아래인 386 의원이나 그보다 연배가 위인 임종인, 최규성, 장영달 의원 등에 비해서 훨씬 더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대중들에게 그가 개혁적으로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언변과 정치적 노회함이 허구적인 정치적 이미지 창출

그것은 과거 그가 명망 있는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점, 그의 뛰어난 언변과 튀는 정치적 퍼포먼스, 그리고 짧은 정치 연륜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치적 노회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 어쩌면 그의 언행 하나 하나에 광분하는 보수 언론도 한 몫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성향 못지않게 유시민 의원에 대해 우려스러운 것은 소외된 사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소름끼칠 정도의 냉혹함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도, FTA와 관련한 농민문제에 대해서도, 청년 실업자 문제에 대한 그의 신경질적인 반응에서도 이런 점은 한결 같이 드러난다.

그는 6일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87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청년, 노동자, 재야단체의 투쟁의 공로를 이야기하지만 정치인이 된 후 그의 평소 발언들을 뜯어보면 그것 역시 별로 진심어린 말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미 그는 최근 가혹한 발언으로 이들 민주화 세력 모두를 야박하게 내쳤다. 사실 유시민 의원은 이번 대연정, 또는 선거구제 개편과 같이 정치 엘리트들의 주요 관심사인 문제들에 대해서 열정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국민들의 직접적 생존권적 이해가 걸린 문제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매몰차게 무시해 왔었다.

어쩌면 정치적으로 설사 보수적이라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신뢰감을 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바뀌더라도 극단적인 방향으로까지는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정직하게 드러내놓고 평가받아야

유시민 의원에 대해 정치적으로 개혁적이길 강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이 정치적으로 어떤 견해를 가지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정치적 자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 개개인은 자기와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으면 지지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그에게 좀 더 솔직해지라고 권하고 싶을 뿐이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만큼 그들에 대해 제대로 알 권리가 있고 그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시민 의원은 얼마 전 홍준표 의원이 발의한 재외동포법 개정안에 대해 자신이 찬성한 것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 법에 대해서는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욕먹지 않기 위해 찬성표 던졌다'고 말했다. 물론 동료 열린우리당 의원인 임종인 의원 등이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소신을 지켜 반대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늦게나마 그가 자신의 행동이 정치적인 이해에서 나온 것임을 솔직히 시인한 것이 퍽 다행스러워 보인다.

그가 다음에는 뒤에 자신의 정직하지 못함을 시인할 것이 아니라 소신을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시나 연정론과 관련하여서 뒤에 '솔직히'라는 말을 앞에 붙여 또 딴 소리를 한다면 듣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소외된 자에게 가해지는 대담무쌍한 기개는 폭력일 뿐

그리고 하나 덧붙일 것이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그가 좀 더 따스한 마음을 가지라고 권유하고 싶은 것이다. 그는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야당 의원이나 사회 지도층에 대한 그의 발언에 대해 '싸가지 없음'이라는 말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마치 정치적인 순수함, 사심 없음 인양 교묘하게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사회의 소외된 자들에 대해 내뿜는 독설에서 보이는 진짜 '싸가지 없음'으로 볼 때 그것은 한낱 정치적인 언술에 불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분명한 것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그의 대담무쌍한 기개는 폭력 이외의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만약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 자신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아니면 양심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다면 그 때야말로 노회한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속마음은 어떻든지 간에 적어도 겉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적인 발언을 자제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싶다. 그러면 그에게도 득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로 하여금 '더 중요한 정치인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것'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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