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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 장지연이 일제 말기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시를 게재하는 등 친일 행위에 나섰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에 포함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고교용 교과서에 실린 사설과 사진.
ⓒ 금성출판사

1905년 <황성신문> 사설 '시일야 방성대곡'을 발표, 대표적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아온 위암 장지연(언론인·1864∼1921)이 훗날 친일파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는 29일 논란 끝에 장지연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전에도 위암 장지연의 변절과 친일 의혹이 수 차례 제기돼 왔지만, 그 친일 행각이 공식 기록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에 따라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장지연 친일 행각' 논란이 다시 불붙으면서 그에 대한 재조명 운동까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장지연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한 국가보훈처와 '위암 장지연 기념사업회' 등 민간 단체의 향후 대응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진주경남일보> 주필 장지연, 일장기 아래 천장절 축하시 수록

경남 민언련 "장지연 서훈 박탈 요청할 것"

경남 민언련(공동대표 강창덕, 김애리)은 29일 성명을 내고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 장지연의 친일 혐의를 공식 조사하도록 요청하고, 국가보훈처에 서훈 박탈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경남 마산시 현동 소재 장지연 묘소에 대한 지방문화재 지정(경남도문화재 94호) 취소와 장지연로(路)로 이름 지은 현동∼수정간 도로 이름 개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경남 민언련 등 지역 시민단체들은 지난 7월 장지연 묘소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자 철회를 줄곧 요구해 왔다. 경남 지역에서는 '신문의 날'이 되면 장지연 묘소를 참배하는 행사도 있었지만 시민단체의 요구로 올해부터 중단된 상태다.

이밖에도 독립기념관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시일야방성대곡' 발표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100주년 기념사설비> 건립을 백지화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언론재단이 연간 4000만원을 지원하는 '장지연상'도 재검토 논란이 일고 있다.

경남 민언련은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발표를 계기로 친일인사를 애국지사로 오도하여 국민들을 속인 지방정부는 국민 앞에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며 "또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장지연의 무덤과 그를 기리는 도로이름, 행사를 하루빨리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동안 위암 장지연은 을사늑약을 비난한 사설 '시일야방성대곡' 등을 통해 일제 말기 대표적인 '항일 언론인'으로 꼽혀왔다. 이는 그가 근무하던 신문사 두 곳이 항일을 주장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가 정간 혹은 폐간 당했기 때문이다.

장지연이 사장으로 있던 <황성신문>은 '시일야방성대곡'(1905년 11월 20일자)을 실었다가 정간 처분을 당했고, 주필로 일하던 <진주경남일보>는 경술국치일날 매천 황현의 '절명시'(1910년 8월 29일자)를 실었다가 강제 폐간 당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해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후 장지연에게 '건국훈장공로단장'을 수여했다. 지난 2004년 11월에는 국가보훈처가 장지연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일제 시기 그의 활동은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 널리 가르쳐지고 있다. 현재 일반 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고교용 '한국 근·현대사'(금성출판사)에는 장지연에 대해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등의 신문은 을사조약을 전후하여 필봉을 휘둘러 일제의 침략을 규탄하고 민중을 계몽하는데 앞장섰다"며 "<황성신문>의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을 써서 을사조약 체결을 만천하에 알렸다"고 돼 있다.

하지만 '시일야방성대곡' 이후 장지연의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가 장지연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로 꼽은 이유는 바로 이 '그 이후' 행적 때문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장지연은 1910년 8월 매천 황현의 절명시를 실었다가 <진주경남일보>가 폐간 당한 뒤부터 친일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돼있다. <진주경남일보>는 폐간 10일 만에 복간됐다.

그뒤 장지연은 이듬해 11월 2일 두 개의 일장기 그림 아래 천장절(일본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한시(漢詩)를 싣는 등 노골적인 친일 면모를 보였다. 당시 이 신문 주필은 장지연이었다. 이밖에도 장지연은 1916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문> 1면에 일본을 두고 '동양의 패자'라고 추켜세우는 글을 쓰기도 했다.

유치환은 '판단 보류'... 2차 명단 포함 여부 관심

위암 장지연의 친일 행각은 학계에서도 알려져 있던 사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편찬위는 장지연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에 대해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연의 경우 드러난 친일 행위만큼 초기 항일 행적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윤경로 위원장은 이날 K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장지연씨의 경우 이번에 논란이 좀 있었다"며 "위원회 안에서도 논란이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번이 1차 발표이고 2차 발표가 있으니 보류를 하자는 게 원칙이었지만, 대체로 알려진 사람들은 넣었다"고 말했다.

(사)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는 이번 발표에 대해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조심스게 반응하고 있다. 사업회 관계자는 2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장 뭐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12명의 임원진들이 모여 논의를 해봐야 견해를 밝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1차 수록 예정자 명단에는 통영 출신 문학가인 유치환씨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보류됐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는 빠지더라도 추가 자료 확보 여부에 따라 내년 2차 발표에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유치환 제외는 2003년 작가회의와 실천문학, 민족문학작가회의가 1차 발표한 친일 인사 명단에 따라 결정됐다"며 "결코 (친일인명사전 수록) 판단에서 완전히 보류되거나 제외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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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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