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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와 같은 대학 철학과에 근무하시는 이찬훈 교수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교수님은 평소 사진 찍는 일을 취미로 삼고 계시는 분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도 이 교수님의 전화를 받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알게 된 일이다.

이 교수님은 필자에게 "김해시 지내동의 철새 서식지를 아느냐"고 물으셨다. 금시초문이라고 말쓰드리자 자신이 필자에게 전화를 건 자초지종을 말씀하셨다. 즉 평소에 부산에서 김해로 출퇴근을 하면서 김해 들목인 야트막한 야산에 새들이 날고 앉는 모습을 보고서는 어느날 새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교수님에게 새들로 인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충을 호소하더라는 것이다. 그들이 겪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곳 주민들은 시내에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주 순박하고 친절하여 자신에게 차까지 대접을 하더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주민들의 사연을 듣고는 뭔가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필자에게 전화를 하였다는 것이다.

▲ 새들이 대숲에 앉아 있는 모습
ⓒ 강재규
이 교수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필자의 궁금증도 더해졌다. 이 교수님의 얘기를 듣고는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듯하여 점심시간에 맞추어 함께 찾아가 보기로 이 교수님과 약속을 하였다.

자동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새들의 분비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찾은 시각이 낮이라서 그런지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위치만 확인을 한 후 다음에 다시 찾아 주민들의 구체적인 고충을 들어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6월 21일 오후 7시경 미리 준비한 카메라를 들고 새들의 서식지를 다시 찾았다. 마침 이찬훈 교수님도 약속이나 한 듯이 나보다 먼저 이 곳을 찾아 새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저녁시간이라 대숲 바로 아래에 사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 곳은 2002년 4월 15일 중국 민간 항공기가 추락하여 128명의 사망ㆍ실종자를 낸 사고지점에서 50여m 아래에 있고, 부산-김해를 잇는 14호 국도에서도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돗대산 서쪽 사면에 위치해 있다.

얼핏 보아서는 도심지와 가까워 새들의 서식지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이지만, 서낙동강이 바로 인접해 있고 김해평야가 가까이 있어 새들이 먹이 활동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듯하였다.

이 곳에서 50여년을 살았다는 주민 김선자 할머니(71·지내동 114번지)에게 새들이 언제부터 서식하기 시작했느냐고 물었더니 4-5년 전부터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 마리에 불과하였는데 점점 개체 수가 늘어나 지금은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늘어났다고 한다. 필자의 눈에도 그 수는 엄청나 보였다.

▲ 새들이 둥지를 튼 바로 아래에 자리한 강승일씨 댁
ⓒ 강재규
생활하는데 어떠한 어려움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김 할머니의 아들 강승일(47)씨는 밤낮 없이 지저귀는 새소리 때문에 잠을 자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하소연을 했다. 새들의 지저귐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 새들의 배설물에서 나오는 악취로 더운 여름에도 창문을 열고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한다. 필자가 이 곳을 찾았을 때에도 시골의 양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역한 냄새가 났다. 그리고 새들이 날개짓을 할 때에는 깃털이 집안으로 바로 날아들어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새들이 날개짓을 하고 바람이 불자 깃털이 필자쪽으로 날아드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을주민들은 또 새들이 조류독감과 같은 나쁜 균을 옮겨와 질병을 발생시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대숲 바로 아래에서 주민들이 재배하는 채소류도 먹기가 겁이 난다고 하였다.

▲ 야구방망이로 통을 울려 새들을 쫓는 모습
ⓒ 강재규
주민 강승일씨가 야구방망이로 쇠통을 치자 그 소리에 놀라 새들이 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러나 많은 새들은 이에 익숙해져서인지 쇠소리에도 도망을 치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쇠통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떠났던 새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답답한 나머지 가끔씩 야구방망이로 쇠통을 쳐서 새들을 쫓아보지만 그때뿐이라는 것이다. 환경부나 김해시에도 해결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몇 번이고 진정을 해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역이나 중앙의 TV에서도 촬영을 해서 보도를 하였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고 한다.

필자가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 사진을 찍는 사이, 마음씨 좋은 김 할머니는 어느새 매실 쥬스를 만들어 와서는 우리들에게 권했다. 역한 냄새와 새들이 내는 소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김 할머니와 할머니의 아들 강승일씨의 표정은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 새들과 식구처럼 생활해서 좋은 일은 없나요?"하고 물었더니 그냥 씨익 웃으시고 만다. TV 나왔다고 하시기에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며 "할머니 유명인사 되셨네"하였더니 또 빙긋 웃으셨다.

▲ 할머니가 매실쥬스를 내오고 있다.
ⓒ 강재규
대숲에는 3월 중순이 되면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길러 10월 중순이면 떠난다고 한다. "몇 년 사이에 이렇게 개체가 많이 늘어난 것을 보면 새들이 자꾸 친구들을 불러 모으는 것만 같다"며 강승일씨는 웃는다. '새들과 함께 지내 이렇게 여유로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서식하는 새들은 주로 백로, 황로, 해오라기, 왜가리 등 여름 철새들이다. 도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도시인으로서는 행운이다. 필자 역시 처음 이 곳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새들의 서식지를 도심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김해의 자랑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여기에 사는 주민들의 애로 사항을 듣고는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로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민들은 '바로 집과 접해 있는 대나무 숲이라도 일부 제거하면 새들이 뒤로 조금은 물러나지 않겠는가'하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 통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의 모습
ⓒ 강재규
물론 김해시에서도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즉 이 곳이 '철새보호구'도 아니고, 단지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틀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인 만큼 시가 보상하여야 할 법적인 의무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지역 시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시는 그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적극 나서서 문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닌가 한다.

사람과 자연(새들)이 서로 도움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하루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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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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