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공원에 세워진 박정희 흉상.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제까지) 한국 경제가 박정희시대에 이룩한 괄목할 성과에 대해, 그리고 전제적이며 포악했지만, 그 나름으로 헌신적이기도 했던 '주식회사 한국'의 CEO 박정희에 대해 충분한 인정을 안 해준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 향수'에 휘둘리는 우익인사의 발언이 아니라 진보적 인문학자이자 민족문학론을 태동시킨 평론가 백낙청(67)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그는 "(경제발전 공적을 인정하더라도) 독재와 인권유린은 잘못된 것"이란 전제하에 새로운 형태의 '박정희시대 공과 평가'를 제안했다. 내주 출간될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릴 기고문을 통해서다.

'박정희시대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백 교수는 '박정희시대 민주화운동 진영은 부정부패와 천민자본주의를 규탄하는데 앞장서기는 했지만, 한국경제 발전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제안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식 고도성장 모델과 관련한 박정희의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정치적 탄압과 사회적 획일화를 통한 (경제성장) 방식이 역사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최선의 것이었냐는 문제는 남는다'는 전제를 깔았다.

정치적 탄압 있었지만 "박정희 시대 성장모델에 대한 연구는 수행돼야"

백 교수는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박정희의 정치행태 관해서는 이전처럼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박정희시대에 이룩된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일정한 평가가 필요하고, 그의 경제전략 중 아직도 유효한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과 박정희의 경제정책이 민주주의와 민족화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탐구는 진지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백 교수는 '독재만 하고 경제성장을 못 이룬 독재자가 많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에서와 같이 극적인 성장을 이룩한 일은 더욱이나 드물다는 점에서 어쨌든 유공자는 유공자"라고 박정희의 공을 인정한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비판적인 자세 또한 놓치지 않는다. '군사주의 문화와 대대적인 환경파괴에 근거한 박정희식 경제개발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모델은 아니"라는 것.

백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일본과 달리 문민통치의 강력한 전통을 지녔고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만만찮은 한국 사회에선 (박정희식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군부독재를 항구적으로 지속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든다. 이는 "잘 살아보세"라는 단세포적이고 획일적인 구호 아래서 경직된 군대의 방식으로 진행된 박정희식 개발정책은 태생적 한계에 의해 그 생명이 길 수 없음을 진단한 것으로 읽힌다.

기고문의 결론 부분에서 백 교수는 '비록 지속불가능한 것이기는 했어도 오늘날 우리가 그때 이룩된 경제성장과 자본축적을 토대로 좀더 지속가능한 발전을 논의할 수 있게 된 점은 무시할 수 없다'는 말로 다시 한번 경제정책에 한정해 박정희의 공적을 거론하면서도, 오늘날 한국사회가 처한 경제적 현실을 "제2의 박정희가 해결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백 교수는 또 몇 년 전부터 한국사회를 횡행하는 박정희 향수를 언급하며 이를 극복하는 대안의 하나로 60~70년대 민주화세력이 경제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함께 그 시절 박정희가 세운 나름의 경제적 공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박정희 경제정책에 대한 객관적 공과평가는 '박정희 향수' 극복의 한 방법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무관심, 인간의 고통과 고난에 대한 무감각,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 거부, 공동체적 철학의 부재'라는 악덕을 내장한 박정희 향수지만, 이에 대한 냉철한 평가 없는 마구잡이식 비난은 자칫 전망을 상실한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전향적인 자세로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공과를 짚어보자는 백 교수의 제안은 비단 문단과 학계만이 아니라 여전히 '박정희의 그림자'가 곳곳에 깔려있는 한국사회 전반에 던지는 하나의 '화두'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 백낙청 교수
이번에 <창작과비평>에 게재될 백 교수의 원고는 지난해 11월 호주 월롱공(Wollongong)대학에서 열린 '박정희시대-25년 뒤의 재평가'에서 백 교수가 발표한 기조연설문을 바탕으로 첨삭된 것이다.

<창작과비평> 여름호에는 백 교수의 글 외에도 박정희시대를 조망한 조석곤(상지대 경제학과 교수)씨와 황대권(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씨의 글이 각각 '박정희신화와 박정희체제' '지금도 계속되는 박정희 패러다임'이란 제목으로 실린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