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급식비를 내지 않고 '도둑밥' 먹는 학생들을 막기 위해서 학교 급식 시설에 지문인식기를 설치한 학교가 있었다. 그 사실이 보도가 되고 비난이 빗발치자 학교측이 지문인식기를 철거하긴 했지만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데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간주하여 생체 정보를 무단 수집한 학교에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지문날인 강요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했을지 궁금하다.
요즘은 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감시카메라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서울 강남에서는 방범을 위해 골목 골목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운영 중인데,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며 다른 지역들도 따라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감시카메라는 렌즈에 잡힌 모든 피사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 누군가가 날 지켜 보고 있다는 것은 내 행동을 알게 모르게 제약한다. 감시카메라로 인해 범죄를 줄일 수는 있어도, 사생활 침해나 인권침해 사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학교 급식 시설의 지문인식기와 무인감시카메라는 둘 다 자기 소유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기기라는 점에서 똑같이 반인권적이다. 감시의 수단이 늘어 날수록 우리의 행동은 제약되기 마련이다.
둘러 보면 우리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로부터 지적을 받은 초등학교에서의 일기검사가 그렇고, '살색'이라는 단어로 상징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그렇다.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 공공 시설물들이 그렇고, 내 머리 속 생각마저 재단해 내고야 말겠다는 국가보안법이 그렇다.
인권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타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은 채 자기가 누려야 할 권리에만 목청을 높인다. 지문인식기나 감시카메라는 그런 사고의 산출물이다.
획일적이고 권위적이던 군사 독재 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최소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보장되고 있다. 국민소득이 만 불을 넘어 이만 불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하니 먹고사는 걱정도 예전보다 덜하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가 '인권'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이 노동인권 보호에 미흡하다는 국가인권위의 지적에 대한 정계, 재계, 언론계의 전방위적 공격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권은 가만히 있으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고 가꾸는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나마 정부 안에 인권위원회가 만들어 지고, 정부 법안을 인권 측면에서 바라보게 된 것은 인권신장을 위해 애써온 많은 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권운동을 이야기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단체가 지난 12년간 인권 하나만을 붙들고 치열한 싸움을 벌여 온 '인권운동사랑방'이다. '인권하루소식'이라는 국내 최초의 인권전문 팩스신문으로 시작 된 '인권운동사랑방'의 활동은 그 자체를 이 나라 인권운동의 역사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다.
| | | ▲ <뚝딱뚝딱 인권짓기> 표지 | | ⓒ 야간비행 | 그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어린이 교양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한 13편의 인권이야기를 묶어 <뚝딱뚝딱 인권짓기>를 펴 냈다.
자칫 딱딱하게 느낄 수도 있는 인권이라는 주제를 만화와 그림 위주로 쉽게 풀어냈다. 인권을 이야기 하는 책 답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린이 독자들이 직접 자기 생각을 적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스스로 인권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여지도 만들어 놓았다.
이 책의 장점은 인권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급식비를 지원받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는 아이에게 "국가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정말 부끄러운 일은 이런 걸 창피하게 생각하는 거고, 또 국가가 이런 사람들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가방검사나 가정환경조사가 숨기고 싶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례라고 하면서도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이웃이 나서서 제지하는 게 사생활 침해 이전에 폭력이라는 또 다른 인권침해 행위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도 알려 준다.
폭력, 환경, 교육, 차별, 놀이, 건강, 민주주의, 복지, 사생활 등 이 책이 다루는 주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가볍게 취급될 수 있는 게 없다. '인권운동사랑방'의 12년 운동 경험이 아니라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이런 살아 있는 인권교과서를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이 비록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꾸며졌지만 사실 이 책을 먼저 읽어야 대상은 어른들이다. 도둑밥을 막겠다며 지문인식기를 설치하고, 학교와 집과 거리를 감시카메라로 지켜 봐야 안심이 되는 어른들, 장애인과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고 어린이들을 어른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어른들, 특히 인권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김대환 노동부장관에게 이 책을 권한다.
|
|
뚝딱뚝딱 인권짓기 - 만화 인권교과서
인권운동사랑방 지음, 윤정주 그림, 야간비행(2005)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