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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익 선생 외고손자 허종씨
ⓒ 최재원
"지금의 고려대 역사는 지나치게 김성수 선생 중심으로 편중되어 있다. 고대가 진정으로 교육구국이념과 항일독립운동정신을 모태로 하는 민족대학이라면, 설립자 이용익 선생에 대한 비중있는 평가를 새롭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설립자 이용익 선생의 증손녀 이분옥(83)씨의 아들인 허종(50)씨는 18일 인터뷰에서 단호한 어조로 이와 같은 의견을 표명하였다.

"고대, 설립자 이용익 선생 예우 미흡"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한말의 조정 대신이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석현(石峴) 이용익 선생(1854-1907)이 1905년 설립했다. 이후 이용익 선생이 독립운동으로 망명길에 올라 직접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천도교 손병희 선생 등을 거치다, 계속되는 재정위기로 1932년 당시 민족자본가 중 한 사람이던 김성수 선생이 인수하여 1946년 지금의 고려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허씨는 "지금 고려대가 설립 100주년을 기념한다고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보성전문의 인수자였던 김성수 선생 일가만 있을 뿐 정작 설립자인 이용익 선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고려대 이용익 선생 흉상
허씨는 그 예로 "인촌의 동상은 고려대 본관 앞에 세워져 있고 기념관과 기념도로까지 만들어진 데 반해, 설립자인 이용익 선생의 동상은 대학원 건물 앞에 조그맣게 흉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건물 내부에 가려져 있던 것을 홍일식 전 고대 총장 재직시절 밖으로 꺼내온 것이다"고 얘기했다.

또, "이용익 선생이 세운 또 다른 학교인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이용익 선생을 설립자로서 지금까지 제대로 예우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고 섭섭한 감정을 털어놨다.

"이용익 선생께 건국훈장 내려야"

▲ 이종호 선생의 건국훈장 독립장
"어떻게 지금까지 이 같은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지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외고조부의 항일투쟁으로 일제 때 가문 전체의 재산을 몰수당했다. 대다수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그렇듯이 이제껏 생계문제 때문에 외고조부의 역사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며 힘들었던 가족사를 밝혔다.

허씨는 지난해 11월 외조부인 독립운동가 이종호(이용익 선생의 손자, 1885-1932) 선생의 건국훈장 독립장을 42년만에 국가보훈처로부터 전달받았다. 그는 "군사정부 시절 문화훈장을 추서받은 외고조부인 이용익 선생도 항일운동이 제대로 평가되어 문화훈장이 아닌 건국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용익 선생은 일제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프랑스·러시아 등과 제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구국운동을 펼치셨다. 페테르부르크에서 친일파의 사주를 받은 김현토의 총을 맞고 병사하신 후, 친일파들의 갖은 모함을 받고 '친러파'로 낙인찍히셨다. 이후 군사정권 하에서도 반공주의의 그늘 아래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말을 이었다.

▲ 이종호 선생의 건국공로훈장증
ⓒ 최재원
"고대 100년 역사가 진정으로 기념해야 할 것"

"고려대학교에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허씨는 "김성수 선생을 고대 역사의 중심으로 내세운다면 고대는 1932년을 기점으로 해서 73년의 역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친일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김성수 선생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않는 한, 민족대학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용익 설립 인정...후손에 감사패 증정 등 검토"
고려대 개교100주년기념사업추진팀 전화 인터뷰

- 이용익 선생 후손이 고대가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지금까지 지나치게 김성수 선생에만 집중하고 이용익 선생에 대해서는 비중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학교측의 입장은 어떤가.
"학교측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 학교에 종사하는 그 누구도 이용익 선생이 고대의 설립자라는 데 대해서 이의를 갖지 않고 있다. 3권으로 편찬될 <고대100년사> 책자에서도 이용익선생과 이종호 선생 등에 대해서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자세히 기술할 예정이며, 그 후손들을 100주년 기념식에 특별초청해 감사패를 증정할 것도 내부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 고대의 이용익 선생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이미 고대 70년사 책자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나타나 있다. 지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제껏 인촌로나 인촌동상, 인촌기념관 등 실질적인 부분에서는 인촌 선생 위주로만 고대역사를 강조해 온 데 있다.
"그 점은 아시다시피 현재 고려대 이사장이 김성수 선생의 후손이다. 재단측의 입장이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 최재원 기자
또, "민족고대 100년의 역사는 이용익 선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고대가 진정으로 기념해야 할 것은, 이용익 선생의 교육구국이념과 항일독립운동정신이라고 본다. 그래야 자랑스런 민족 고대로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을 이어나갔다.

허씨는 "내가 바라는 것은 이용익 선생에 대한 역사적인 위상을 제대로 정립해 달라는 것"이라며 "고대의 현 교직원과 학생들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문제는 이용익 선생을 고려대학교 역사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기피하는 재단측에 있다"고 강조했다.

허씨의 문제제기와 관련해 고려대 100주념 기업사업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3권으로 편찬될 <고대100년사> 책자에서 이용익 선생과 이종호 선생 등에 대해서 상당부분을 할애해서 자세히 기술할 예정이며, 그 후손들을 100주년 기념식에 특별초청해 감사패를 증정할 것도 내부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도·한승조 파문, 친일문제 해결 못한 것이 원인"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허씨는 "이용익 선생과 친일문제 관련 학술서적 저술을 통해서 바른 역사를 알리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허씨는 이어서 "친일파가 만악의 근원이다. 친일반역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면서 '정의가 지고 불의가 이긴다' '기회주의자가 승리하고 원칙주의자는 패배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국민들에게 깃들게 됐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최근 일본의 독도파문이나 한승조 고대 명예교수의 친일발언 등에 대해서도, "이러한 일들은 결국에는 우리가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일본은 친일잔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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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이용익은 과연 항일 독립투사인가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이용익 선생
'친일과 반공'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평가 못 받아

▲ 군부대신 시절 이용익 선생 사진
이용익 선생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형 이원계의 후손으로 1854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출생했다. 고종 황제의 충신으로 탁지부 전환국장, 원수부 전환국장, 중앙은행 부총재, 군부대신 등 조선왕조의 주요 요직을 섭렵했다.

1902년에는 탁지부 대신이 되어 항일독립운동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이준·민영환·이상재 등과 개혁당을 조직하였다.

1904년 굴욕적인 한일의정서 체결에 반대하다가 일본에 납치된 이용익 선생은, 선생의 납치를 위해 일제천황까지 직접 서명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일제에게는 '요주의 인물'에 올라 있는 항일 독립운동가였다.

납치에서 풀려난 이용익 선생은 귀국 후, 독립정신과 구국이념 민족교육을 위해 1905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와 보통학교(현 보성중·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이후 고종황제의 '일제 세력의 축출을 위하여 프랑스·러시아 세력과의 제휴를 꾀하라'는 밀령을 받고 프랑스로 가던 중,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에서 구국운동을 벌였다.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친일파의 사주를 받은 김현토의 총을 맞고 병을 얻어 190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용익 선생 사후, 선생의 정적이자 선생을 모함했던 친일파 상당수가 일본의 조선 강제 합병에 공헌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작위와 재물을 받았다.

반면 이용익 선생 가문은 일제에 의해 재산과 직위를 몰수당했다. 그럼에도 이용익 선생의 손자인 이종호 선생은 조부를 이어 보성전문의 교장을 역임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을 계속하여 해방 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친일파들로부터 '친러파'로 낙인찍힌 이용익 선생은 '친일과 반공'으로 이어진 우리 근현대 역사 속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용익 선생의 공적이 제대로 평가될 경우 그를 탄압했던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만행이 부각되는 것을 우려, 선생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지난 2002년 고려대학교 조익순 명예교수가 <고종황제의 충신 이용익의 재평가>를 출간하면서 우리 역사학계에서도 선생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최재원 기자

덧붙이는 글 | <뉴스타운>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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