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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중국은 고구려사 강탈을 목적으로 한 '동북공정' 이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공정(프로젝트)'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역사빼앗기를 넘어서 최근 중국의 패권주의적 경향과도 무관치 않다.

<오마이뉴스>는 중국이 왜 이같은 작업을 벌이고 있는지, 또 그들이 노리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기획기사를 10회에 걸쳐 내보낸다. <오마이뉴스>는 이를 위해 지난 9월 3일부터 18일까지 2주일간 중국현지를 답사했다. 이 기사는 그 첫번째다.


▲ 황제의 궁전터가 있다는 허난성 신미시 황제궁에서도 수천만위안을 들여 대대적인 발굴 보수 공사가 진행중이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지난달 30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55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중국은 앞으로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중화민족주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패권주의적 움직임을 보인다는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말 몇마디로 우려가 없어질 수 없다. 중국의 거대한 땅과 인구, 급속하게 성장하는 국력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 때문만이 아니다. 중국 스스로 외부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작업(이른바 '○○ 공정')을 계속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가 지난 2003년 11월부터 중국 정부가 공식 추진하고 있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다. 이는 전설로만 알려졌던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를 모두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작업이다.

중국 문명의 역사를 5000년에서 최고 1만년 전까지 끌어올려 중국이 문화적으로 세계 최고·최대의 나라임을 선포하려는 목적이다. 이에 비한다면 동북공정은 오히려 하찮게 보일 정도다.

올해부터 쏟아지는 중국언론들의 보도

"산시성(山西省) 린펀시(臨汾市) 샹펀현(襄汾縣) 타오스향(陶寺鄕) 동포거우(東坡溝)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4100년전의 천문대 터가 발견됐다." (지난 5월 중국 언론들의 보도)

"허난성(河南省) 신미시(新密市) 리우짜이진(劉寨鎭) 신짜이촌(新砦村)에서 옛 성벽과 궁전터가 발견됐다." (지난 3월 중국 언론들의 보도)

"허난성 신미시 황제궁(황제 헌원의 궁전 유적지)에서 황제가 팔진병법을 만들었음을 기록한 당나라 때의 비석(높이 4m33㎝)이 발견됐다." (지난 7월 중국 언론들의 보도)


올해 들어 중국 언론에는 이같은 보도가 집중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정부의 공식 기구인 중국사회과학원과 각 성의 문물고고연구소들이 행한 작업의 결과물이었다.

중국인들은 스스로를 '황제의 자손'이라고 부른다. '전설의 인물'이었던 황제를 비롯한 삼황오제는 이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로 재창조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이 같은 중국 언론들의 보도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발굴 현장을 답사했다.

중국은 공정(工程)의 나라?

▲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공정들.

중국이 추진중인 공정은 여러개다. 공정은 프로젝트를 중국어로 번역한 말이다.

동북 공정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하상주단대공정과 중국문명탐원공정은 중국의 영토를 최대 1만년 이상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이에비해 동북 공정은 만주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확실히 하기 위한 작업이다.

여기에 이미 서북공정과 서남공정도 진행중이다. 서북공정은 오늘날 신쟝위구르 자치구 지역의 역사 및 지리에 대한 종합적 연구다. 이 지역이 중국의 영토로 확실히 들어온 것은 1755년 청나라 건륭제 때 준가리아 부족의 반란을 진압하면서부터다.

따라서 중국의 영토가 된 지 불과 250년밖에 안됐다. 또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위구르족들의 분리 독립 움직임이 강하기 때문에 서북 공정을 하는 것이다. 서남 공정은 물론 티벳 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중원지역 4곳 집중 발굴

지난 9월4일 산시성 린펀시에서 1시간30분 가량 자동차로 이동해 타오스향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최근에 유적 발굴 작업을 하고있는 곳을 물었다. 그러나 모두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한 현지인은 "이 곳의 한 해 수입은 한 가정에 2000~3000위안(29만~43만5000원)에 불과하다"며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한데 옆에서 무슨 일이나는지 전혀 관심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시 1시간30분정도 먼지가 풀풀나는 비포장 도로를 타고 헤맸다. 이 곳은 전형적인 황토지역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토굴집을 볼 수 있었다. 마오쩌둥이 옌안에서 소비에트를 만들고 장제스와 대결할 때도 역시 이런 토굴집에 살았다. 신 중국 성립 55년이 지났지만, 동부연안의 발달된 지역을 제외한다면 서부지역, 특히 농촌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간신히 타오스촌에 도착해 40대 농부에게 유적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몇달 전부터 마을 뒤쪽에서 발굴 작업이 있었다"며 "대형 무덤들을 발굴한 뒤 유물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길 안내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는 정색을 하고 "당신들 어디에서 온 사람들이냐?"며 "그곳은 보안지역이다, 외지인들이 유적발굴 현장 안내를 부탁하면 절대로 해주지 말라고 현 정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거절했다. 도굴꾼들을 경계해 이런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였다.

한 20분 정도 마을 뒤쪽으로 계속 올라가자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나타나더니 대뜸 "당신들 어디에서 왔느냐"고 추궁하듯 물어봤다. 그는 "외지인들이 오면 절대로 유적 발굴지를 알려주지 말라고 정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유적지를 보고 싶으면 발굴대에 연락해 허가를 받고 오라"며 그들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더 이상 마을 뒤쪽으로 가는 것은 상황상 힘들었다.

타오스촌을 빠져나와 다시 1시간 가량 중국언론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터가 발견됐다는 동포거우 지역을 찾아나섰다. 타오스향 시내 중심지에서 10㎞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동포거우 마을 안쪽에서 옥수수와 면화 등을 심어놓은 밭을 따라 30분 정도 더 가니 저 멀리 유적 발굴지가 보였다.

4100년 전의 천문대...?

▲ 중국 언론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4100년 전의 천문대 터라고 보도한 산시성 린펀시 타오스향의 발굴 현장.
ⓒ 오마이뉴스 김태경
유적은 반원형으로 너비 약 20m 정도에 평평한 지형이었다. 군데군데 지름 10㎝ 정도의 구멍이 10여개 뚫려있었다. 옆 벽면으로는 판축한 흔적이 보였다. 앞으로 더 넓은 지역을 발굴한 예정인 듯 이 유적지의 앞 쪽으로도 출입금지 줄이 쳐져 있었다.

중국 고고전문가들과 천문학자들은 이 유적의 역사를 기원전 2100년 께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영국 스톤헨지의 기원전 1680년에 비해 400여년 앞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라는 것이다.

총 면적이 1400㎡인 이 곳을 중국 학자들이 천문대 터라고 보는 이유는 13개의 기둥이 서있던 자리. 이들은 "이것으로 미뤄볼 때 정 동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관측하고, 1년 12절기를 정확히 측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상서(尙書)>의 '요전'(堯典)에 나오는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줬다"는 기록이 역사적 사실임이 증명됐다는 것이다.

천문대터는 타오스향의 문화 유적 가운데 일부분이다. 전체 타오스 문화 유적은 동서길이 길이 약 2000m, 남북 너비 1500m, 면적 약 300만㎡ 초대형 유적이라는 것. 북·동·남 3개의 성벽과 궁전터, 중기의 왕 및 귀족들의 대형 묘들이 발견됐는데 연대는 이미 기원전 2100~2000년으로 이미 확정됐다.

올 3월 중국사회과학원은 허난성 신미시 동남쪽 18.6㎞ 지점에 있는 리우짜이진 신짜이촌에서 3중의 방어시설과 동·북·서 3면의 성벽 및 2개의 성문터, 대형 건물터가 있는 100만㎡의 유적지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9월 5일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신저촌에 갔을 때 군데군데 유적 발굴 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옥수수밭을 파헤치고 곳곳에 땅을 절개시켜 놓았다. 한 곳의 발굴지는 길이 50m, 너비 15m 정도에 깊이가 7~8m 가량 정도됐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곳의 성터는 4000년 전 것이다, 바로 황제가 활동했던 중심지역으로 황제의 옛 도읍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의 차오춘칭(趙春靑) 박사는 "신저 유적은 원시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주거 지역"이라며 "신석기 후기 문화인 용산문화와 하나라 문화 사이를 연결시켜 준다"고 말했다.

황제궁에 100억원 투입, 발굴 조사중

허난성의 성도인 정저우(鄭州)에서 서남쪽 37㎞ 지점에 있는 신미시 리우짜이진 리우짜이촌에는 황제의 궁전터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황제궁'이 있다. 지금도 유적지 및 황제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경내는 완전 공사판이었다. 두달 전 발굴 공사중 발견했다는 원나라 시기 때 이곳 지방관의 황제 찬양 기념비가 서있었고, 멀리 성벽을 보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40대의 한 관리인은 "지난해부터 대대적인 보수 발굴에 들어갔다"며 "공사비가 수천만위안에 이른다"고 말했다. 한국돈으로 근 1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다. 그는 "이는 관광지 겸 황제 및 황제 문화를 숭배하고 찬양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곳에는 지난 1999년 말레이시아 화교 수백명이 와서 제사를 지내는 등 화교들의 관심이 아주 높다"고 자랑했다. 한국에서는 학교에 세운 단군 상의 목이 잘려나가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지만 '과학적 사회주의'를 아직 표방하는 중국은 전혀 달랐다.

"중화문명 5000년, 숫자를 맞추자"

▲ 중화문명탐원공정의 하나로 발굴작업이 진행중인 허난성 신미시 신짜이촌. 이곳은 전설상의 인물인 황제의 도읍과 궁전터가 있다는 곳이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이 모든 일들은 중국 정부가 이미 10년전부터 계획해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96년 5월 '하상주(夏商周) 단대공정(斷代工程)'을 시작했다. 200여명의 전문가가 동원됐고 싼시성(陝西省) 저우위안(周原) 유적, 허난성 정저우의 상청(商城)유적 등 모두 17곳을 새로 발굴했다.

중국 역사에서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가장 이른 시기는 기원전 841년 서주(西周)말 공화(共和) 원년(元年)이다. 그 이전의 사건은 사실인지 전설인지 불명확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00년 11월 9일 하상주 단대공정을 끝내고 '하상주 단대연표'를 정식 발표했다. 하나라의 시작을 기원전 2070년으로 확정지었고, 따라서 중국의 역사시대는 총 4070년이 됐다. 현재 기원전 841년보다 1229년을 끌어올렸다.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에 건국했고, 반경이 은(殷)으로 천도 한 때는 기원전 1300년 무렵, 주나라는 기원전 1046년으로 각각 설정됐다. 전설이었던 하나라와 요임금, 순임금은 역사적 사실이 됐다.

이 공정의 총 책임자인 칭화대(淸華大)의 리쉐친(李學勤) 교수는 지난 6월 17일 중국 CC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정확한 역사시대는 기원전 814년이다, 이전의 역사는 아주 모호하다"며 "세계 4대 문명가운데 유일하게 5000년 중국 문명만 이런 역사적 공백이 있다, 이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즉 중화문명 5000년을 얘기하지만 이제까지의 자료로는 역사시대가 3000년에도 못미치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하상주단대공정을 벌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중화문명의 역사시대는 4000년 정도다. 5000년에서 약 1000년이 모자란다. 다시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 시작됐다.

이 공정은 지난 2002년 11월 중국언론이 시작을 예고했고 2003년 6월부터 정식으로 개시됐다. 그러나 중국문화부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지난 2001년 11월 14개 과제와 24개 전문연구과제를 설정했다"며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결합해 역사학, 천문학, 고고학, 연대측정학, 환경 및 야금 등 90여명의 전문가가 이미 결합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중화 문명의 시원'을 찾는 프로젝트다.

1만년... 1만2000년... 중국의 역사적 시간 계속 늘려

중화문명탐원공정이 하는 구체적인 작업을 보면 ▲고문헌의 요·순·우(禹) 관련 자료의 수집과 연구 성과 정리 ▲중국 천문학의 기원 연구 ▲예제(禮制)의 기원과 연구 성과 정리 ▲허난성 서부 및 산시성 남부 지역의 용산문화부터 이리두 문화까지 고고학 문화 계보 ▲용산문화시대부터 하나라 초기 때까지의 취락형태가 보여주는 사회구조 ▲용산시대부터 이리두 시기까지의 야금기술 및 유적,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초기 각종 부호 및 문자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 ▲생태환경 평가 ▲문명기원에 대한 이론과 방법, 연구 성과의 종합 ▲탄소측정 방법 연구 등 총 11개 과제다.

'예비연구' 과정에서 허난성 신미시의 구청진(古城鎭)과 신짜이촌의 유적, 역시 허난성 덩펑시(登封市)의 왕청강(王城崗) 유적, 산시성 타오스향의 유적 등 4곳이 집중 발굴지역으로 선정됐다.

이 곳은 현재 한족의 원류인 화하(華夏)족들이 활동했던 중원지역들이다. 시기적으로는 지금으로부터 4000~5000년전, 고고학적으로는 신석기 후기문화인 용산문화부터 하나라 초기까지, 전설상으로는 삼황오제시기에 해당한다. 이미 예비연구는 끝난 상태다.

그러나 '5000년'에 만족할 중국이 아니다.

지난 2001년 8월 14일 중국 후난성 사회과학원 '염제순제 과제조'는 "중국 문명은 결코 5000년 안팎이 아니다"라며 "1만년, 더 나아가 1만2000년이나 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들의 주장 근거는 순임금의 주요 활동지역인 후난성 잉저우(永州) 다오(道) 현에서 출토된 볍씨 등의 농작물 종자가 1만2000년 전 것이고 각종 고문헌이 방증한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이 중국의 역사적 영토를 공간적으로 넓히는 작업이라면,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시간적인 영토를 확보하려는 작업이다.

연세대 강사인 김선자 박사는 "중국 정부는 신화를 역사로 만들고 있으며, 그 밑바탕에는 '위대한 중국'이라는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공정들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중국의 영역을 엄청나게 확장시키려는 프로젝트"라며 "중국은 경제·외교적으로 자신감을 얻으면서 강렬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이제 문화적으로 '슈퍼 파워'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누구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 허난성 신미시 황제궁에 있는 황제헌원의 사당.
중국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체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정확히 누구인가이다. 삼황오제 하면 보통 황제·염제·요임금·순임금·우 등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중국의 고대 문헌에는 삼황오제가 누군인지 모두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사기>에는 황제·전욱·제곡·요·순으로, <풍속통의>에는 복희·여와·신농으로 <백호통>에는 복희·신농·축융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제왕세기>에는 복희·신농·황제, <여씨 춘추> <회남자>에는 태호·염제·황제·소호·전욱으로 다 다르다.

시기도 문제다. 대체로 중국문명탐원공정의 시기는 문화적으로 용산문화에서 하나라 초기까지, 전설상으로 삼황오제 시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삼황오제가 서로 계승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 시기적으로 차이가 나는지, 만약 차이가 난다면 어느 정도 시간차가 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당연하다. 모두 전설이기 때문이다.

또 일부 중국 학자는 치우가 빠진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치우는 동이족의 선조신으로 인정된다. 화하족의 선조인 황제와 탁록에서 크게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런데 중국의 고 문헌 가운데 삼황오제에 치우를 넣는 경우는 별로 없다.

중화민족은 한(漢)족과 함께 55개 소수민족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중국학자들 입장에서는 동이족의 최고 신인 치우를 홀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삼황오제에 치우는 들어가지 않아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 고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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