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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은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어린이를 늘 생각하고 걱정한 분입니다. 어린이를 살리는 길을 여러모로 찾고 살피면서, 어린이마다 자기 마음에 응어리처럼 맺힌 이야기를 '글쓰기'로 털어내고 풀어내도록 이끌었습니다. 어린이가 쓰는 글은 어린이 스스로는 맺힌 응어리를 풀어서 좋습니다. 그리고 어른에게는 어린이가 무얼 생각하고 느끼는지 알도록 이끄는 한편, 어른 눈으로는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를 살피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아요.

마흔 해가 넘는 교육자 외길을 걸으면서 글쓰기 교육을 꾸준하게 이어오고 다듬으면서 많은 제자를 기른 이오덕 선생님입니다. 그런 글쓰기 얼을 바탕으로 1980년대 끝 무렵부터 우리 말 바로쓰기 운동을 하셨어요.

1970년대에 쓰신 글에도 "우리말을 알맞고 바르게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모든 힘과 마음을 바치기로는 1980년대부터입니다. 그런데 이오덕 선생님 스스로도 오랫동안 잘못된 말을 써 오셨고, 오랫동안 일본 제국주의 찌꺼기말에 물든 채 아이들을 가르쳐 오셨기에 미처 떼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선생님 스스로도 다듬지 못한 대목도 있고요.

<우리글 바로쓰기 (1),한길사(1989.10)>을 처음 펴낼 즈음 쓰신 "참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의 본질과 방향"이란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이오덕 선생님이 그때 미처 고치지 못한 낱말과 말투와 잘 바로잡아서 쓰신 낱말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1> 잘 살려서 쓰고 바로잡은 낱말

먼저 잘 살려서 쓰고 바로잡은 낱말을 들어 보겠습니다. 낱말이 들어간 문장은 굳이 따오지 않고 낱말만 뽑아서 늘어놓아도 좋을 듯합니다. 괄호() 안에 적은 말이 사람들이 흔히 쓰는 '바로잡거나 고쳐서 써야 좋은 말'입니다.

- 외우다(← 암기), 알맹이(← 핵심), 말하다(← 증명하다), 나타내다(← 표현하다), 거의 모든(← 대부분의, 대다수의), 삶(← 생활), 길이 들여지다(←습관화하다), 뻗어나다(← 성장), 얼거리(← 구조), 거치다(← 통하다), 살펴보다(← 고찰), 들다(← 제시하다), 흰종이(← 백지), 좁은 생각(← 짧은 소견), 나누다(← 구분하다), 가려 뽑다(← 선별하다), 달마다(← 매달), 자리(← 공간), 마음(← 심금), 풀어 주다(← 해소해 주다), 맛보다(← 감상), 까닭(← 이유), 투(← 식), 흉내내다(← 모방하다), 깊다(← 심오하다), 남다르다(← 유별나다), 살아 있다(← 생동감 있다)

'말하다'라는 말은 "우리 교육이 너무나 잘 말해준다"에서 나옵니다. '말하다'는 여러 가지 뜻과 쓰임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증명'한다나 '반증'한다와 같습니다. '들다'는 "몇 가지 보기를 들다"에서 나와요. '깊다'는 "깊은 생각을 낳다" 같은 문장에서 보이는데, 글 흐름을 보니 '심오(深奧)'를 뜻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설 때까지 '나타내다'와 '표현하다'를 섞어서 쓰시다가 나중에는 '나타내다'라는 말만 쓰십니다. 보기를 뽑은 이번 글에서도 '나타내다'와 '표현하다'를 함께 쓰셨는데, 모든 자리에서 '나타내다'로만 써도 뜻이 알맞고 더 부드럽습니다. '투'는 "늘 쓰는 투"라는 말에서 나오는데요, '식(式)'이라고 안 쓰고 이렇게 '투'로 쓰면 더욱 좋습니다.

<2> 미처 걸러내지 못한 낱말

다음으로는 미처 걸러내지 못한 낱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낱말만 먼저 늘어놓겠습니다. 괄호() 안에 들어간 말은, 이렇게 고쳐서 써야 알맞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너 가지는 제가 고쳐 본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오덕 선생님이 나중에 고치신 낱말입니다.

- 희망하다(→ 바라다), 만원(→ 꽉 차다, 가득하다), 경로(→ 흐름), 여지없이(→ 남김없이), 주사해 넣다(→ 집어넣다), 연장해서(→ 이어서), 강요하다(→ 억지로 시키다), 견해(→ 생각), 확실하다(→ 뚜렷하다), 자세히(→ 꼼꼼히), 저학년(→ 낮은학년), 고학년(→ 높은학년), 인쇄하다(→ 찍다), 논의하다(→ 살펴보다), 근본(→ 뿌리, 바탕), 이해하다(→ 알다), 중(→ 가운데), 효과적인(→ 효과가 있는), 추상적인(→ 추상만 있는), 빠져 가는 중이다(→ 빠져 가고 있다), 삶 대신에(→ 삶 말고, 삶이 아니라)


'논의(論議)'라는 말을 '살펴보다'로 고칠 수 없다고 말씀하실 분도 있겠죠? 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글을 보면, "지은이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그것부터 논의하고, 그 다음에 문장을 살펴보도록 하는 차례로 지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 문장에 '논의'와 '살펴보다'가 함께 나와요. 두 말을 다르게 썼을까요?

'낮은학년-높은학년'이란 말은 요즘 들어서 퍽 많은 분들이 고쳐서 잘 쓰는 말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말을 안 쓰셨지만,이제는 누구나 널리 쓴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자리잡았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교과서 판권에 '지은이-엮은이-박은곳'이라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저자-편자-인쇄소'라 나옵니다. 책은 '찍다'나 '박다'라고 하면 됩니다. "둘 중 하나"처럼 쓸 때 '중(中)'이란 말을 쓰는데 이오덕 선생님 글을 살피면 '가운데'라고 쓰다가 '중'이라고도 쓰다가 '-에서'라고도 쓰셔요. '가운데'나 '-에서'로만 맞춰도 되겠다 싶어요.

'이해하다'와 '알다'를 놓고 이오덕 선생님도 무척 많이 생각하셨는데, 우리가 '이해하다'라는 말을 쓰는 자리를 살피면 보통은 그냥 '알다'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알다'가 더 어울리는 자리도 있고요. 다른 분들도 두 말은 쓸 때마다 조금 더 살펴보면 좋겠어요.

<3> 말투와 말법을 살펴보면

이오덕 선생님도 한동안 토씨 '-의'를 그다지 깊이 헤아리지 않고 쓰셨습니다. 이런 토씨 '-의'는 나중에 거의 모두 바로잡으셨어요. 나중에 선생님이 고치신 것을 바탕으로 선생님도 지난날 잘못 쓴 대목을 뽑으니, 글 하나에도 이렇게 많이 나옵니다.

┌인간교육과 민주, 민족교육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인간교육과 민주, 민족교육'에서' 가장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이며
├=>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목적이며

├ 어른들의 흉내를 내기 때문이다 => '어른 흉내'를 내기 때문이다

├ 정신의 병자가 되고 => '정신병자'가 되고
├ 개념의 말 => 개념어, 개념말
├ 삶의 시 => 살아 있는 시, 삶을 담은 시, 삶이 있는 시

├ 어떤 형태의 글을 쓰게 하는가 => 어떤 모습'으로' 글을 쓰게 하는가

├ 얼거리 짜기의 방법 => 얼거리'를' 짜는 방법

├ 글 고치기의 요점 => 글을 고치는 요점
├ 글 고치기의 방법 => 글을 고치는 방법
├ 글 고치기 지도의 방법 => 글 고치기를 가르치는 방법

├ 학생들의 글을 발표하는 자리 => 학생들'이 쓴' 글을 내놓는 자리
├ 자기의 글을 스스로 고치도록 => 자기'가 쓴' 글을 스스로 고치도록

├ 삶의 태도가 어떤가 하는 관점 => '살아가는' 몸가짐이 어떤가 하는 관점

└ 연의 구분이 없는 시 => 연'을' 나누지 않은 시


'정신의 병자'나 '개념의 말'은 참 엉뚱해 보입니다. 하지만 요새도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지식인이 아주 많아요. '삶의 시' 같은 말은 '삶의 문제'나 '삶의 철학'처럼 말마다 다 갖다 붙이며 뜻을 두루뭉술하게 합니다. '글쓰기의 방법' 같은 말도 지식인들이 아주 즐겨쓰는 말이에요. '학생들의 글'이나 '자신의 글'에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물건을 가리키는 토씨 '-의'가 아닙니다. 이때는 마땅히 '-이(가) 쓴'이라고 넣어야 합니다.

┌ 논술고사 준비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 논술고사를 준비하려고 하는(있는) 것이 아니다

├ 정확한 말을 고르고 벌여 놓는 노력을 통해
├=> 올바른 말을 고르고 벌여 놓도록 애쓰면서

├ 우리 말에 대한 자각을 한다
├=> 우리 말을 깨우친다

├ 그런 정도의 글쓰기라면 ... 공부만으로도 충분하다
└=> 그런 글쓰기라면 ... 공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오덕 선생님은 '-를 위하다'와 '-에 대하다'를 쓰는 일에 퍽 너그럽습니다. 때로는 써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려고'를 쓰면 '-를 위하다'를 걸러낼 수 있고, 토씨 '-을(를)'을 잘 살려서 쓰면 '-에 대하다'를 어렵지 않게 담아낼 수 있어요.

"그런 정도의 글쓰기"라는 말에서는 '정도의'라는 말이 군말입니다. 비슷하게 "그런 종류의 글쓰기'라고도 쓰는 사람이 요새 많은데, 이때에는 '종류의'라는 말이 군말입니다. 굳이 '정도의-종류의'라는 말을 안 써도 뜻과 느낌이 다 들어가 있어요.

<4> 이오덕 선생님은 '처음'이지 '끝'이 아니다

지식인 가운데 이오덕 선생님처럼 자신이 쓰는 말과 글을 꼼꼼하게 돌아보고 되새기면서 쉽고 살갑게 고친 분이 드뭅니다. 자신이 쓴 글을 열 번도 다시 읽고, 스무 번도 다시 손으로 원고지에 정성껏 옮겨 쓰다 보면 '안 좋은 말'과 '일제 식민지 찌꺼기가 밴 말'과 '구태여 안 써도 될 서양말'을 모두 걸러낼 수 있어요. 이런 모습은 바로 이오덕 선생님이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알아둘 일이 있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지식인이 쓰는 글을 지식인이 아닌 농사꾼까지도 모두 알아듣고 나눌 수 있도록 쉽고 알맞고 바르게 써야 한다는 깨달음을 '처음'으로 알려주고 몸소 옮긴 분이라는 거예요. 영웅처럼 우러를 분이 아닙니다. 하늘처럼 떠받들 분도 아닙니다. 박제처럼 가두어 둘 분도 아닙니다. 남이 쓴 글을 뜯어고치기 좋아하신 분은 더더구나 아니고요.

'마지막'으로 이런 일을 하신 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찬찬히 살피고 배울 것은 배우며, 아쉽고 모자라다고 느끼는 것은 차근차근 더 갈고 닦아서 높여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데레사 수녀님은, '말을 가장 가난하게 써야, 글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성경에서 나누려는 좋은 뜻을 널리 헤아리고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이든 스님이든 신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눈높이로 가장 쉽고 알맞고 바르게 말을 해야 좋아요. 지식인은 어떻겠습니까? 자기만 아는 지식을 자랑하려고 글을 쓰나요? 아니겠지요?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책을 펴낸 뒤로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말씀을 펼치셨습니다.

.. 농사꾼들을 부리는 정치꾼이나 먹물꾼들은 손발 대신에 머리만 써서 남의 나라에 기대고 남의 나라 글자를 익혀 그것으로 정치를 하고 학문을 하고 교육을 하고 온갖 제도를 만들고 해서 돈과 권세를 잡아 백성들을 끊임없이 괴롭혀 왔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나라를 팔아 먹기까지 했지요. 지금도 이들의 뒤를 잇는 친일, 반민족, 반통일의 무리들은 각계각층에서 이미 잡아 놓고 있는 돈과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여 끊임없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 <이오덕 지음-농사꾼 아이들의 노래,한길사(2001)> 머리말


말을 어렵게 쓰고, 자기만 알 뿐 아니라, 두루뭉술하게 쓰는 사람은 검은 속셈이 있는 사람이기 일쑤라고 이야기합니다. 검은 속셈으로 우리를 짓누르는 제도권 교육에 물든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검은 속셈에 빠져도 안 되지만 물들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우리말과 글을 바르게 가꾸고 아름답게 살려 쓰려고 한 까닭은 바로, 이 땅에서 자라는 어린이, 자연, 모든 목숨붙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입니다. 이런 대목을 잘 헤아린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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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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