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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열린우리당의 대표적인 논객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 대변인'이라는 평을 듣는 유시민 의원이 오랜만에 자신의 전공 분야인 경제 문제를 놓고 조·중·동과 민주노동당에 '훈수'를 뒀다.

노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해석하는 서로 간의 엇갈린 시각에다 유 의원의 훈수 방식이 마치 선생님이 학생을 나무라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유 의원은 지난 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중동과 민주노동당, 공부 좀 하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의 이례적인 칭찬과 민주노동당의 비난이 엇갈렸던 노 대통령의 '시장친화적인 (경제)정책 수단'이라는 발언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설명했다.

유 의원은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은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가져왔던 경제 문제에 대한 기본인식이라는 점에서 마치 대통령이 경제 철학을 바꾼 것처럼 호들갑 떠는 조중동의 태도에 먼저 의문을 제기했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은 '리버럴' 또는 '진보적 리버럴'이다"

그의 논리적 반박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복지·정의·평등·평화·환경보호 등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목표와 경제적 기본질서인 시장시스템이 마찰을 빚을 경우 그에 따른 왜곡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개입한다. 이럴 경우 가장 효율적인 정책수단을 찾는데, 이론과 경험에 비춰볼 때 시장친화성이 강한 정책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치·목표와 수단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는 구체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집세 인상을 억제하려고 정부가 계약기간을 늘리고 인상률을 제한해도, 집주인들이 '합법적인 핑계'를 대며 계약 만료 후에 집세를 높여 새 사람과 계약을 한다면 애초 법의 취지와는 달리 서민들만 더 괴롭다는 것이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목적이 같다면, 이처럼 시장친화성이 없는 정책보다는 집세는 시장의 논리에 맡겨두고 소득이 낮은 서민들에게 주거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효과적이고 부작용도 덜하다는 논리다.

유 의원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나 의료 혜택 확대, 보육·탁아 문제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되며 경제와 맞닿은 문제들에 대해 국가가 개입할 때는 정부가 선택한 정책수단이 어느 정도 '시장친화적'인지를 꼭 따져봐야 한다"며 "우리들 모두는 독립적인 시장참가자로서, 좋은 목적으로 실시한 제도가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도록 만드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경제주체들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성향'에 대해 유 의원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기본질서인 시장경제와 다원적 대의민주주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존중하는 정치인으로서 노 대통령은 리버럴"이라고 전제한 뒤 "반면 자유·복지 등 보수 리버럴이 중시하는 가치와 더불어 정의·평등 등 진보적 가치들을 마찬가지로 중시하고, 시장에 맡겨두어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이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 개입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진보적"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는 "다만 정의와 평등 같은, 진보파들이 중시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에도, 대통령은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리버럴"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유 의원은 "노 대통령이 '시장주의자'임을 발견하고 호들갑을 떠는 보수언론과, 한나라당과 똑같이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 타령을 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께 권한다"며 "대통령이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 따질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경제정책론 공부를 하시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다음은 유시민 의원의 글 전문이다.

네티즌 여러분 안녕하세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유시민입니다.

늘어난 발목 인대 때문에 보조기를 차고 있어 벌써 3주째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걱정해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날이 더워지고, 장마가 곧 올 모양입니다. 여러분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편지는 좀 따분할 겁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하는 경제학 공부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조중동의 뜬금없는 대통령 칭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취임하신 후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 보도를 보면서, 틀림없이 조중동의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리 되었습니다.

이 난데없는 칭찬은 노무현 대통령이 사용하신 어휘 하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름 아닌 '시장친화적 정책수단'이라는 말입니다.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은 경제전문가와 기업인들의 입을 빌어 대통령이 확실한 '시장주의자'라고, 무슨 엄청나게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칭찬합니다. 대통령의 경제문제 인식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해소되었다느니 어쩌니, 호들갑을 떨기도 합니다. 반면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서민경제를 살릴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고 경제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비난을 해댑니다.

늘 듣던 바로 그 노래입니다. 한나라당이건 민주노동당이건, 우리나라 야당 국회의원들은 언제나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을 공격합니다. 참 오만한 사람들이죠. 어떤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 좋습니다. 시각에 따라서 이해관계에 따라서, 우리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 각자 다른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비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비난입니다. 제가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향해 "그 사람들은 나와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고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감정만 상할 뿐, 실질적인 대화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공부를 안해서" 그렇다느니 어쩌니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심히 무례한 짓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노회찬 의원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훨씬 공부를 더 많이 한 정치인입니다. 물론 경기고등학교나 고려대학교 같은 명문학교를 나와야 '공부한 사람'으로 쳐주는, 그런 분들에게는 노 대통령이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말입니다.

정책 수단은 시장친화적일수록 좋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보수언론의 대통령 칭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어딘가 자기의 경제철학을 바꾼 것으로 보아야 할까요? 정리가 잘 안되는 분들을 위해, 오늘 저는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짤막한 해설을 제공해 드리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문제에 대한 기본인식은 후보시절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다양한 정책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훨씬 구체화되고 심화되었을 뿐,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은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market conformity)'이라는 개념은 경제정책론 분야에서 핵심적 지위를 가지는 중요 개념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사회가 실현해야할 기본가치 또는 최고 목표를 담고 있습니다. 자유, 복지, 정의, 평등, 평화, 환경보호 등등입니다. 우리는 시장시스템을 경제적 기본질서로, 다원적 대의민주주의를 정치적 기본질서로 삼아 이 가치들을 고루 실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본질서인 시장시스템에 맡겨둘 경우 어떤 가치는 저절로 실현되지만 다른 가치는 훼손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국가가 개입하죠.

예컨대 모든 국민은 똑같이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경제는 이런 가치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장시스템은 경제적 기본질서이기 때문에 철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국가는 시장경제가 스스로 실현하지 않거나 그 실현을 가로막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개입하게 됩니다. 때로는 시장기능 부전을 보완하고, 때로는 왜곡된 질서를 바로잡으며, 때로는 시장을 국가가 대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 개입해야 개입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지, 가장 효율적인 정책수단을 찾는 일입니다. 이론과 경험 양쪽 모두에 비추어볼 때 '시장친화성'이 강한 정책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대차보호법과 최저가격제

너무 추상적이라 어렵죠? 예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집세가 너무 올라 서민들이 고달픕니다. 정부는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주택임대차법을 고쳐 최소 계약기간을 예컨대 3년으로 늘리고 계약만료시 임대료를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집세를 올리고 싶은 주인들은 새 법에 따른 신규계약을 하면서 집세를 왕창 올립니다. 계약이 만료되면 이런 저런 합법적인 핑계를 대서 임대차계약을 해지한 후, 다시 집세를 왕창 올려 새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합니다. 정부는 무주택 서민을 도우려고 했지만 서민들은 더 괴롭습니다. 이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면 주택 임대사업의 매력이 사라져 주택공급이 줄어듭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주택공급이 줄어 임대료는 더 올라갑니다.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 거래조건, 공급량이나 수요량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수단은 '시장친화성이 없는' 정책입니다. 시장친화성이 없는 정책은 관련 경제주체들의 회피행동 때문에 의도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거나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우리나라의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상가임대차보호법도 이런 종류의 역효과를 낸 바 있습니다. 서유럽 선진국에서는 이런 경험을 한 끝에 다른 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집세는 시장에 맡겨두고, 소득의 예컨대 절반을 임대료로 내는 서민들에게 주거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입니다. 이 정책은 시장 메커니즘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시장친화적 경제정책입니다. 효과도 좋고 부작용은 적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쌀 재배 농가의 살림이 어렵습니다. 농민을 돕기 위해 정부는 최저 가격제를 시행합니다. 최저가격은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이 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격에는 수요량이 공급량보다 적어서 시장에서 쌀을 다 팔 수가 없습니다. 남는 쌀을 정부가 대신 구입해야 합니다. 소위 수매제도가 이것이죠. 제일 가난한 소농들은 생산량이 적기 때문에 큰 혜택을 보지 못합니다. 제일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경작규모가 크기 때문에 생산비가 낮은 대농들입니다. 가난한 농민을 돕는 효과가 크지 않죠?

그런데 정부는 수매한 쌀을 보관해야 합니다. 보관비용이 많이 듭니다. 국내에서 다 소비할 수가 없기 때문에 갖다 버리던가 수출을 해야 합니다. 오래 보관해서 품질이 떨어진 쌀은 헐값에 식품업체나 과자 제조업체에 넘깁니다. 손해를 엄청 봅니다. 다른 나라에 팔아버리려고 해도 국제가격보다 높기 때문에 수출을 할 수 없습니다. 헐값에 수출하면 그만큼 또 손해를 봅니다.

이 제도는 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시장친화성이 없는 정책수단입니다. 정말로 국가가 가난한 농민을 돕고자 한다면 수매제도를 폐지하고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농가에 생계보조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낫습니다. 경쟁력이 있는 농가는 가격을 시장에 맡겨도 알아서 살아나갑니다. 가난한 농민을 돕는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시장친화성이 있는 정책이 없는 정책보다 효과가 좋고 부작용도 적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리버럴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에는 경제문제가 아닌 것이 많지 않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줄이고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일, 큰 병에 걸린 사람들이 가산을 모두 쏟아붓지 않고도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만드는 일, 맞벌이 서민들에게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고 돈도 많이 내지 않아도 되는 보육탁아 기회를 제공하는 것, 능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에 맞게 세금을 내게하여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격차가 덜 나게 만드는 일, 청소년들에게 적성과 잠재력에 맞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일, 이 모두가 시장과 관련이 있는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들에 국가가 개입할 때, 정부는 자기가 선택한 정책수단이 어느 정도 '시장친화적'인지를 꼭 따져보아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독립적인 시장참가자로서, 좋은 목적으로 실시한 제도가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도록 만드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경제주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을 리버럴, 또는 진보적 리버럴로 규정해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기본질서인 시장경제와 다원적 대의민주주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존중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리버럴입니다.

대통령은 또한 자유, 복지 등 보수 리버럴이 중시하는 가치와 더불어 정의와 평등 등 우리 헌법이 규정한 다른 진보적 가치들을 마찬가지로 중시하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어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이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 개입에 적극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진보적입니다. 다만 정의와 평등 같은, 진보파들이 중시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에도, 대통령은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리버럴입니다.

대통령 욕하는 시간에 공부 좀 합시다

조중동과 보수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시장친화적 정책수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 나오는 것을 처음 본 모양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떠드는 것이죠.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집권 후 1년4개월 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친화성이 없거나 시장 메커니즘에 적대적으로 개입하는 정책을 도입한 사례를 본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하필 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말을 했을까요?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진보적 가치 실현을 위한 국가 개입 그 자체를 좌파정책이니 포퓰리즘이니 비난하기 때문에, 그들과 논쟁할 때는 정책수단의 시장친화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있는 맥락을 찾지 못한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가치 실현을 위한 국가 개입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머리 속에는 정책수단이 시장친화적일 때 효과가 좋다는 인식 그 자체가 없습니다. 대통령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말씀의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 지향도 좋구요. 그런데 여러분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 메커니즘을 무시하고 법으로 무언가를 강제하는 그런 정책수단을 가지고는 당신들이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가 없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단병호 의원의 의견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노 대통령이 '시장주의자'임을 발견하고 호들갑을 떠는 보수언론과, 한나라당과 똑같이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 타령을 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께 권합니다. 대통령이 공부를 했는지 안했는지 따질 시간이 있으시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경제정책론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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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기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보다 더 흥미진진한 탐구 대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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