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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대공원 안내문에는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놀때마다 고 박정희대통령 내외분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며 그 뜻에 보답하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아직도 유신치하인 셈이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우리 어린이들은 이 곳에서 놀 때마다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높은 뜻을 다시 한번 마음 속에 새기며 그 뜻에 보답하는 생각을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서울 광진구 능동 소재 어린이대공원의 정문 안으로 들어가면 곧 나타나는 안내문에 새겨진 글귀의 일부다. 이밖에도 어린이대공원 정문 현판과 공원 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와 친일문인 소설가 김동인의 문학비와 흉상이 버젓이 서 있다.

친일 독재자와 친일 문인이 차지한 어린이대공원

▲ 어린이대공원 분수대 옆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석이 당당히 서 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어린이대공원 정문 앞 분수대 왼쪽에는 '어린이는 내일의 주인공 착하고 씩씩하며 슬기롭게 자라자'라고 새겨진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석이 서 있다. 그리고 휘호석을 받치고 있는 돌다리의 동판에는 유신독재의 잔재가 물씬 풍겨지는, 다음과 같은 문귀가 새겨져 있다.

"어린이는 겨레의 희망이요, 나라의 보배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1970년 12월 4일 이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들이 슬기롭고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이곳 서울칸트리 구락부골프장에 어린이를 위한 자연공원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대공원 건설은 이 높으신 뜻에 따라 시작되었으며 1972년 11월 3일 대통령영부인 육영수 여사님께서 손수 사랑 어린 기공의 첫 삽을 드신 이래 밤낮없이 진행되어 1973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이곳 복된 땅 능동벌 푸른 들에 뜻깊은 첫날이 열리었다. 앞으로 이 어린이대공원은 그 뜻을 받들어 이 나라 어린이들의 꿈이 피어나는 낙원이 되고 산 교육의 터전이 될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는 메말랐던 동심을 다시 꽃피게 하리라"


동판에 새겨진 문귀 가운데 '대통령 각하께서' '높으신 뜻에 따라' '낙원이 되고' 등은 독재권력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어 개혁과 부끄러운 역사의 청산이 논의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 관련 지식이 충분치 못한 어린이들이 즐겨찾는 시설에 이같은 내용이 담긴 시설물을 공개적으로 비치해 역사적 평가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해 일방적으로 긍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방기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야외음악당 옆에는 친일문인 소설가 김동인의 흉상과 문학비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상보다 앞서서 자리를 잡고 있다. 김동인의 흉상은 1988년 10월 2일 '조선일보사 동인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세운 것으로, 조소(彫塑)는 김영중, 글씨는 제자인 김동리가 쓴 것으로 돼 있다.

'경성골프구락부'가 '어린이대공원'이 된 사연

어린이대공원은 순종황제비 순명황후 민씨의 능역(陵域)이었다. 1926년 순종이 세상을 뜨자 민씨를 그해 6월 경기도 양주군(현 남양주시)으로 이장했다. 1929년 이곳에 국내 최초의 골프장인 '경성골프 구락부'가 들어섰으며 ,해방 뒤에는 '서울컨트리구락부 골프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0년대 서울컨트리골프장은 정계·금융·경제·언론계 등의 거물들의 사교장이었다. 최고 권력층과 경제계 거물 등 회원제로 운영하는 골프장으로 당시 경호실장 박종규가 부회장이었다. 이처럼 막강한 세력들의 유흥시설이었던 골프장을 어린이대공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독재자의 막강한 힘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함께 골프를 치던 이 아무개 장관이 "여기 동네사람들이 칼을 던지곤 한다"고 말하자 박 전 대통령은 "민간인이 반감을 사는 골프장이면 안되지.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했다는 비화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12월 어린이대공원 건설을 지시했고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의 주도하에 추진됐다. 서울시는 서울컨트리클럽으로부터 12만평의 부지를 확보한 뒤 시비 11억여 원과 경제계를 비롯한 국내외 인사들이 모아준 기부금 5억5천만원을 들여 총면적 21만8천평 규모의 어린이대공원을 1973년 5월 5일 준공했다.

어린이대공원이 개원 된 뒤인 1975년에는 3만1천평 규모의 어린이회관이 분리됐고, 1977년에는 7천평 규모의 선화학원이 분리되면서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서울시는 1986년 서울특별시 시설관리공단에 수탁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조호진 기자

"어린이대공원에 친일문인 동상 존재에 놀라움 금치못한다"

친일파 청산에 앞장서 온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조차 어린이대공원에 친일문인의 흉상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어린이대공원은 그간 단순히 어린이들의 놀이터 정도로 인식돼 왔을 뿐 설마 그곳까지 친일의 흔적이 뻗쳤겠냐고 생각한 것이다.

▲ 친일문인 김동인의 흉상과 문학비.
ⓒ 오마이뉴스 조호진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중앙대 국문과 겸임교수)은 3일 "어린이대공원에 유신 독재자와 친일 문인의 휘호와 동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이러한 게 사실이라면 민족문제연구소 차원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임 소장은 또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친일 문인 김동인의 동상과 문학비가 어린이대공원에 서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친일의 잔재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 알 수 있다. 친일파 청산문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하며 17대 국회에서 친일청산법을 개정해 두 번 다시는 민족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5총선 과정에서 박정희·육영수 향수의 위력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이들이 근대화의 기수이자 서민의 벗이었다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영남권과 60∼70대에게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했다. '박근혜 바람'의 진원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친일과 독재의 행각이 드러나면서 청산 대상이 된 독재자가 뿌리 깊은 지지를 어떻게 얻을 수 있었던 걸까?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어린이까지 이용한 고도의 정치적 술수에 의해 대중들이 현혹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홍 교수는 <당대비평>(2004.봄호)에 기고한 '한국사회에서의 어린이 담론의 변화'라는 제목의 글에서 "식민지 시대의 어린이운동은 어린이를 깨우치고 권리를 부여해 민족의 암울한 현실을 깨치는 민족주의 운동이었다"며 "역대 독재정권들은 순수한 어린이의 이미지를 이용, 불순한 권력을 미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독재정권의 불순한 권력을 미화하기 위해 어린이를 국가적으로 동원했다"

홍 교수는 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어린이는 천진무구한 존재이며 어린이를 사랑하는 어른은 천진난만하다. 따라서 독재자는 어린이의 이미지를 조작하면서 좋은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며 "박정희는 어린이대공원과 육영재단을 통해 미래의 지지자인 어린이들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세뇌시키는 치밀한 계산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어린이대공원 현판에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가 버젓이 내걸려 있다.
ⓒ 오마이뉴스 조호진
홍 교수는 이에 대한 반증으로 "박정희에 세뇌된 어린이들이 박정희는 곧 대한민국이며 그가 없어질 경우 나라가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며 "독재자들은 육영재단(육영수), 새세대육영재단(이순자)을 통해 이익을 누리며 치부를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대공원을 수탁·관리하고 있는 '서울특별시시설관리공단'은 안내문에 독재자를 찬양하는 글귀가 새겨진 것조차 몰랐다. 공단 관계자는 3일 "그러한 글이 있는 게 사실이냐"고 반문하면서도 "관리자들이 역사적인 시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거나, 이의 존치(存置) 여부를 거론할 사항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공단을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 관계자는 같은 날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본다"며 "어린이대공원은 공단에서 위탁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공단사업소장의 의견을 거친 뒤에 의견을 물으라"며 권위적인 해명만을 내놓았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3일 "국가존망과 민족존립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 친일문제를 관점의 문제로 치부한 관료라면 민족관, 국가관, 역사의식이 의심스런 공직자"라며 "관료들이 친일·유신독재에 혜택을 받으며 살아왔고 여전히 관료사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반 역사적 발상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색동회 배동익(68) 회장은 "어린이대공원은 그야말로 어린이들의 꿈과 놀이의 동산이며 그곳에 동상이 필요하다면 어린이를 위해 헌신한 사람의 동상이 서 있어야 한다"며 "어린이와 관계없는 정치가와 문인의 동상이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다"고 꾸짖었다.

과천 서울대공원엔 '친일경력' 인촌 김성수 동상 버젓이

과천 서울대공원 한마당 광장에는 일제하 친일행적으로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동아일보> 창업주 인촌 김성수의 동상이 서 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은 지난 2002년 3.1절을 맞아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 속에 인촌 김성수를 포함시킨 바 있다. 인촌의 친일행적은 당시 신문 등을 통해 자료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지난 91년 11월 '인촌 김성수 탄신1백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채문식)'가 주관한 인촌 동상 제막식에는 정·관·언론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최규하, 전두환 전 대통령, 박준규 국회의장, 강영훈 전 국무총리, 김대중, 이기택 민주당 공동대표, 강원용 크리스챤아카데미원장, 현승종 한국교총회장 등과 인촌의 손자인 김병관 동아일보 사장 등 유족들이 참석했다.

채문식 위원장은 이날 동상 제막식 개식사에서 다음과 같이 인촌을 과도하게 미화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대공원을 찾는 많은 후학들이 인촌 선생의 후덕한 풍모를 직접 접하고 그 어른이 민족사에 남긴 찬연한 업적을 기리며 선생의 애국단성과 유훈을 되새길 수 있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인촌선생은 우리 민족의 사표로서 인재를 결집하고 국민의 의기를 고취, 독립역량을 키워나간 대선각자였다"

일제말기 동아일보의 친일보도와 인촌 자신이 각종 친일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한 사실을 감안할 때 과연 인촌에 대한 이같은 찬사가 적절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인촌은 독립유공 공적으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다.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인촌의 건국훈장을 치탈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조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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