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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김은성/강이종행
사진 : 김진석 기자


▲ 6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백여 백색' 의 제5회 월경 페스티벌
ⓒ 김진석
'100명의 여성에게는 100가지 색이 있다'는 '백여 백색'의 제5회 월경 페스티벌이 여성 문화 기획 불턱과 연세대 총학생회 주최 아래 6일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지난 24일부터 명동, 대학로, 신촌 거리에서 월경에 관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월경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펼쳤던 본 월경 페스티벌이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주제 아래 유쾌한 놀이판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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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프리 페스티벌

"이젠 자신 있게 생리한다 말해요!"

여성주의 문화 행사 전문 MC최광기씨의 감칠맛 나는 언변에 호응하는 관객들의 물결 응원으로 막을 연, 본 공연은 월경을 자유롭게 말하는 당당한 여성들의 함성으로 이어졌다.

여성주의 퍼포먼스 전문집단 페미먼스의 < Dancing Blood >, 극단 목토의 <월인천강지곡>, 모놀로그 <의자> 등 다양한 난장으로 채워진 무대는 월경의 당당함과 여성의 성적 욕망을 양지로 끌어냈다.

또 3호선 버터플라이, 페미니스트 가수 안혜경, 이상은이 앙코르를 접수받으며 열창을 선보였던 축하 무대는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노천 극장을 여러 번 뒤흔들어 놓았다.

▲ 극단 목토의 <월인천강지곡>의 공연 모습
ⓒ 김진석
특히 극단 목토의 <월인천강지곡> 은 '남자가 생리를 한다면' 이라는 발상 아래 관능적인 춤과 신명나는 연기로 짜임새 있는 공연을 펼쳐 관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하는 남성들에게 '적군의 피' 대신 '생리혈' 을 선물하려는 여성들이 '생리 신'의 힘을 빌어 남성들도 생리를 하게 만든다. 도벽, 빈혈, 생리 히스테리, 생리통 등 생리 전 증후군을 겪는 한 남성이 '초경'을 하며 여성들의 신비스런 경험을 공유한다.

이에 통쾌함과 유쾌함을 느꼈던 관객들에게 극단 목토는 "이젠 자신 있게 생리한다 말해요!"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며 무대를 떠난다.

이어 모놀로그 <의자> 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구인 '식욕'과 '성욕' 을 감추고 눌러야만 했던 우울한 두 여성이 등장해 씁쓸함을 자아낸다. 항상 일방적인 섹스에 통증을 느꼈던 여인1은 우연히 식탁 의자에 앉아 콩나물을 다듬는 중 난생 처음 오르가즘을 느낀다.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가도 '돼지'라는 이름표를 뗄 수 없었던 여인2는 한 달 동안 물과 강냉이만을 먹으며 자신의 몸을 학대한다. 결국 그들은 자신의 욕구를 당당히 외치며 그들 몸의 주인 됨을 선언한다.

앞서 소개한 공연 못지 않은 여성주의 문화 행사 전문 사회자 최광기씨의 '광기' 어린 사회 또한 놀이판에 흥겨움을 더했다. 공연자들이 뒤에서 준비를 하는 동안 최씨는 무대 앞에서 관객들의 요청에 의해 즉석 인터뷰를 하고 싸이의 챔피언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는 등 만능MC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달의 기운이 무대를 거의 점령할 즈음 관객들의 자유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무대에 오른 문연경(21)양은 "처음엔 생리대를 남 앞에서 사는 것이 부끄러웠다"며 "월경 페스티벌 관람 후 이젠 당당히 남자들이 있는 학교 매점에서도 생리대를 살 수 있게 됐다"고 밝혀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 유통 기한이 지난 부풀려진 콘돔이 노천 극장을 떠다녔다. 관객들은 "여성들이여 성의 고정관념을 날려 버리고 자유롭게 살자"는 최광기씨의 마지막 외침에 맞춰 콘돔을 터뜨리며 열정의 레이브 파티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남성들의 '월경'은 어떤 모습일까?

▲ 딸과 함께 공연을 보고 있다
ⓒ김진석

남성들에게 '월경'은 너무나 낯설다. 하지만 적어도 6일 제5회 월경 페스티벌을 찾은 남성들은 낯섦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월경은 그리 멀지만은 않았다.

이날 페스티벌을 찾은 남성 중 대부분은 '여성들의 월경'에 대해 초, 중학교에서의 해프닝으로 알게 된 경우가 많았다.

행사 도중 만난 김아무개(24, 대학생)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성장이 빠른 여학생이 월경을 했던 것 같은데 우리 반에 짓궂은 친구가 가방을 뒤져 생리대를 보고는 '얘는 이런 것도 가지고 다닌다'며 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애는 굉장히 부끄러워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안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설명을 한 뒤에야 수습이 됐다고 김씨는 말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여성의 월경과 성에 대해 냉정히 생각해보고 싶어 혼자 행사를 찾았다는 홍원기(19, 대학생)씨는 "월경하면 처음 떠오르는 것은 '아픔'"이라며 "중학교 가정시간에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월경'에 대해 배웠지만 이상한 선생님이 여자화장실 청소를 시키곤 했는데 그때 피 묻은 생리대를 보고 처음으로 '월경'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고 수줍게 말했다. 당시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흘려야 한다니 이상하기도 했고 불쌍하기도 했다"고 홍씨는 덧붙였다.

이렇게 '월경'에 대해 알게 됐지만 적어도 '여성만의 월경'가 아닌 '함께 하는 월경'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남성들도 있었고 직접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성들도 있었다.

이아무개(29, 직장인)씨는 "여자친구와 만난 지 2년 정도 됐는데 기본적으로 월경을 할 때 불안정하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배려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월경 주기를 직접 챙겨주기도 하고 월경통이 심한 여자친구를 위해 편안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전에 "월경은 불결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출산, 탄생의 메커니즘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안 뒤로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공연장 가장 꼭대기에 앉아 있던 나아무개(22)씨는 "여자친구가 월경을 할 때 생리대를 직접 사러 가지 못해 직접 사주곤 했다"며 "사회적인 시선이 큰 문제지만 여성들이 월경, 성에 대해 당당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연이 열린 연세대에서 경비 업무를 맡고 있는 강아무개(57)씨는 "집사람이 아직 폐경은 아니지만 지난번에 한번 월경을 하지 않아 무척 걱정했다. 이에 대해 신경을 써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폐경이 되면 '이젠 늙었구나'고 생각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관심이 가게 된다"고 수줍어했다. 강씨는 "이런 행사를 통해 알 건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강이종행


"남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축제 되길"

ⓒ 김진석
한편, 본 공연 전 노천 극장 밖에서는 여러 부대 행사들이 눈길을 끌었다. '생리대에 말걸기', '성감대에 스티커 붙이기', '생리 주기 팔지 만들기', '피임 방법 알기' 등 '성' 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공개적으로 담론화 됐다.

'생리대에 말걸기' 행사는 생리대에 글을 써 빨랫줄에 걸어 놓는 것이다. 빨랫줄이 모자라 땅 바닥까지 진열된 수많은 생리대에는 '출산 장려금으로 생리대 가격 내려요', '첨 봤어요!', '생리 중엔 섹스 하지 말자, 참아 여보', '남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축제되길' 등의 문구가 빼곡이 적혀 있었다.

이날 행사엔 젊은 연인들이 대거 참여해 다정한 모습을 연출, 주체적으로 행사에 관여하며 솔로들의 허전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여자 친구와 같이 생리 주기 팔지를 만들고 생리대에 '첨봤어요'라는 글귀를 남긴 김세원(21)군은 "처음엔 굉장히 부끄러웠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대화하기가 수월해질 것 같다"며 수줍어했다.

평소에 여자 친구가 생리통을 앓을 때면 해줄 게 없어 그저 안타까웠다는 그는 "이런 행사가 코엑스몰 같은 곳에서 더 크게 공개돼 자주 열렸으면 한다"며 "더 많은 남성들이 참여해 여성과 남성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여자 친구가 바빠 같이 오지 못함에 섭섭해하던 성지훈(23)군은 "평소에 여성 운동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를 통해 적잖은 문화 충격을 받았다"며 "여자 친구와 월경 얘기를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색함이 있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여자 친구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성군은 "월경은 중요한 과정이다, 월경이 없으면 결국 우리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며 월경을 폄하하는 몇몇 남성들의 고정 관념을 아쉬워했다.

'여성의 성기는 보지, 남성의 성기는 자지', '얼굴만큼 다양한 성기 모양', '처녀막 콤플렉스' 등 평소엔 음성적으로 나돌던 단어들도 양지로 떠올랐다. 자세한 그림까지 삽입된 대자보를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관객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오경희(22)양은 "성에 관한 정보가 음성적으로 돌아 잘못 된 정보로 인해 성폭력 등이 발생하는 것 같다"며 "평소에 공개적으로 내뱉지 않았던 성에 관한 궁금증을 정확히 알게 돼 유익하다"고 말했다.

▲ 페스티벌 마지막 상징 행사인 '콘돔 터뜨리기'에서 한 여성이 콘돔을 떠뜨리고 있다
ⓒ 김진석
또 오양은 "성에 관한 문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양지로 들어내 떳떳히 말할 수 있는 문화가 하루 빨리 성립됐으면 한다"며 "이런 행사가 단순히 대학생들만의 행사가 아닌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거듭 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모든 행사를 12살 난 딸과 관람한 이성태(40)씨는 "자연스럽게 딸에게 성문화를 가르쳐주고 싶었다"며 "아직 딸이 초경을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경험할 자기 몸의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이젠 더 이상 월경이 죄악시되는 시대가 아니다"며 "딸 가진 아버지로서 딸이 자신의 월경을 당당한 권리로 생각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 이씨는 "행사를 기획하는 이들의 열정에 비해 저변 확대가 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며 "출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런 행사는 보건복지부 및 문광부에서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소수의 몇 계층만이 참여하고 공감하는 행사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들이 다 같이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게 바램이자 아쉬움이다"며 행사의 저변 확대를 간곡히 당부했다.

이상은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 되길"
영원한 보헤미안 이상은의 여성주의.

▲ 마지막을 장식한 가수 이상은씨의 열정적인 무대
ⓒ김진석

어느 덧 데뷔한 지 15년을 넘어선 보헤미안 이상은(32). 세월이 비껴가는 '영원한 언니' 이상은이 월경 페스티벌을 축하하기 위해 노천 극장을 찾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리허설을 준비하는 막간을 틈타 그가 생각하는 '여성주의' 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눴다.

- 행사에 참여하는 감회는?
"처음에 비해 행사의 규모나 내용 면에서 많이 발전 된 것 같아 보기 좋다. 난 직접적으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진 않지만 여성주의에 관한 문화 행사 및 발언에 꾸준히 참여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동참하고 싶다. 그러한 일환으로 이번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별 탈 없이 행사가 잘 마무리 됐으면 한다."

- 오늘 참여한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가?
"메시지보다는 음악을 들려 줄 것이다. 음악을 통해 한국에서 이 나이까지 굳건히 활동하고 있는 여성 아티스트가 있다는 걸 당당히 보여주고 싶다. 또 모두들 '최선을 다해 어른이 되기' 를 당부하고 싶다.

본 행사가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실제로 사회에 나가 현실과 맞부딪쳐 보면 현재 지니고 있는 소신이나 철학 등을 지키고 실천하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행사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지금 가졌던 소신을 잃지 않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어른이 되기'를 바랜다. 이번 행사를 통해 단순히 이상을 보여주고 그저 서로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본다."

- 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주의란?
"개인적으론 한국에서 조한혜정(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씨가 페미니스트의 이상 모델이라 생각한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이 제대로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여자라는 성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먼저 자신의 권리들을 쉬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두 발 딛고 당당히 건강하게 잘 사는 여성들의 모습이 진정한 페미니스트의 모습이라 본다.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다.

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행사를 통해 순수하게 솔직히 터놓고 말하는 여성들이 진짜 '사람 좋은 여성'임을 알았으면 한다. 시끄럽게 판을 벌인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뭇 남성들이 만화책에서나 등장 할 법한 여성들에 관한 환상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실제론 남성들이 꺼려하는 여성들이 오히려 그들의 미래를 더 밝게 해 줄 수도 있음을 전하고 싶다."

- 앞으로의 일정은?
"일본에서 11집 음반이 다음 달 정도에 나올 것이다. 일본 인디 음악을 경험하고 싶어 다음엔 인디 레이블과 작업을 해볼 생각이다. 그간 해 왔던 서울 중심의 공연을 벗어나 연말 엔 대구를 비롯한 지방 공연을 할 예정이다." /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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