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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남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많은 국민들과 만나 사연과 고통과 의견을 들었다. 우리는 그 과정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기자회견장의 뒷 배경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문구가 있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야 할 대통령' 시리즈는 바로 그 문구의 의미에 맞게,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통령인 시대에 우리 사회 각계의 사람들의 삶과 고통과 희망을 듣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며, 줌마네 아줌마 자유기고가들이 참여했다. 이번 글이 여덟 번째다. <필자 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출발한 새 정부는 과거와는 달라진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바탕으로 성립된 정부임에는 틀림없다. 새 정부의 명칭을 '참여 정부'라 명명한 것도 지난 대선을 통해 보여주었던 국민의 응집된 힘과 참여의 목소리를 국정 운영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국민이 국가 정책의 참 주인이요, 그러한 주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진정한 국민 주권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새 정부의 다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나 대선기간을 통해 평범한 주부에서 한 정당의 당원으로 탈바꿈한 안정희(36)씨의 이야기는 익숙하진 않지만, 낯설지도 않은 정치개혁의 한 조각이 될 수 있을 듯싶다.

지난 대선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이면 충분히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음을 경험했던 주부 안정희씨. 노사모 회원이자, 개혁국민정당 당원이기도 한 그녀는 대선 기간 내내 대통령 후보들 못지않게 누구보다도 바쁘고 숨가쁘게 뛰어다녔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자는 아이 들쳐 업고, 당 사무실로, 유세장으로…. 아유,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어요. 처음엔 인사하고 부탁하는 것도 너무 쑥스러웠구요."

▲ 안정희씨
ⓒ 조은주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정희씨를 가장 어렵고 힘들게 했던 것은 아직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녀야 했던 것.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그가 겪었을 어렵고 힘들었을 시간이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아이를 마땅히 맡길 데가 없었어요. 놀이방도 그렇고, 이웃들에게 부탁하기도 하루 이틀이고…. 날도 추운데 밤 늦도록 이리 저리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참 못할 짓이란 생각도 들었죠. 그러다 혹시 애가 아프기라도 할까 봐 걱정도 되고."

덕분에 4살 된 아이는 지금도 자장가 대신 대선기간 내내 불렀던 로고송을 불러줘야 잠이 든단다.

"한 번은 파주 지역으로 선거지원 나갔을 때였어요. 역 주변에서 풀빵 파는 할머니를 만났거든요. 그냥 배고픈 김에 무심코 풀빵 몇 개 사러 들어간 거였는데…."
홍보용 띠를 두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선거 지지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풀빵 장수 할머니는 정희씨에게 넋두리처럼 하소연을 했다.

늙어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그래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손으로 밥이라도 먹고 살자고 시작한 게 풀빵 파는 일이었다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는 '거리환경미화'란 이유로 아들보다 어린 구청직원에게 날마다 시달림을 받는단다. 사는 게 힘들고 서럽다며 쭈굴쭈굴 늙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녀는 아무 힘도 없는 자신이 괜히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그 전에는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의외로 우리 주변엔 그 할머니처럼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만큼 힘들고 답답한 게 많다는 거지요. 정치인들이 그런 소리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여 주면 좋을 텐데…."
그런 만남들이 그를 더 진지하게, 열심히 움직이고 참여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되어 주었다.

지난해 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국민경선이 있기 전까지 그에게 정치는 비판과 냉소의 대상이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TV나 신문을 통해 보고 듣는 정치권의 비리와 부패가 판치는 얘기들은 짜증스럽고, 환멸스러운 내용뿐이었다. 차라리 안 보고 안 듣고 무관심한 것이 속 편한 시간들이었다.

"국민경선으로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 되는 것을 보니까 이젠 좀 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국민 경선을 통해 뽑힌 노무현 후보에 대한 기존 정치권 세력들의 험담과 공격, 끌어내리기 위한 흠집내기를 보면서 그대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노사모에 가입했는데, 그보다 좀 더 큰소리를 낼 수 있는 모임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개혁국민정당 발기인 명부에 등록하고 개혁당원이 된 거죠."

정당한 것, 옳은 것이, 부조리하게 부당하게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그는 그 시작을 '내 안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진리, 정의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요즘 생활이요? 뭐 다른 주부들과 같지요. 아침에 남편 출근 준비하고, 아이 놀이방 보내고, 집 정리하고. 결혼 전부터 번역 일을 조금씩 해왔거든요. 그런데 대선 운동하느라 그 동안 통 손도 못 댔어요. 그걸 이제야 한꺼번에 몰아서 하려다 보니 밤 잠 설칠 때가 많아요. 빨리 끝내고 우리 당원들 일도 도와줘야 할 텐데..”

개혁당 내에서는 '주영엄마 '(아이디)로 통하는 그의 즐거움은 매일 아침 개혁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는 것. 취재하던 날 아침에도 게시판에 '활기찬 하루, 저도 출석합니다'라는 인사를 남겼단다.

"정당 게시판이라고 해서 정책이나 정치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예요. 개인적인 소식들, 안부인사, 경조사 모임 안내, 책 얘기, 영화 얘기 등과 같은 생활 얘기들도 많아요. 시나 음악을 올려주시는 분도 있고요."

같은 관심과,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모이다 보니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모임을 갖고 만나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만나고 모여서 토론하고 얘기하는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어야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고 결속력도 커질 거란 생각이다. 참여하는 목소리로서 우리의 힘이 커지기 위해선 그러한 끈끈한 결속력이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 덕양구 갑 창단식 준비
ⓒ 조은주
"모임을 자주 갖지요. 그렇다고 그 모임들이 다 정치적 성격을 가지는 건 아니예요. 노래 모임도 있고, 생일 축하 모임도 있고, 등산 모임도 있어요. 얼마 전엔 헌혈 모임을 갖자는 얘기도 나왔어요. 저처럼 주부도 있고, 회사원, 의사, 장사하시는 분, 학생 등 모두 하는 일이나 나이도 다르지만 함께 모이면 편하고 즐거워요."

처음 어색하게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이 누구보다 열성적이고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모양이라는 그는 '1년 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이라며 웃었다.

그녀가 속해 있는 고양, 파주 지역에서는 오는 4월 있을 재보궐 선거 준비로 개혁당원 모두가 바쁘다. 덕양구 갑 지역에서 출마하기로 되어있는 유시민씨때문이다.

"해당 지역구 당원들 간의 투표로 유시민 씨의 출마가 결정된 거지만 개혁당원 모두가 함께 뛰고 있어요. 메일도 보내고, 다른 지역구 모임에도 참가하고, 선거 후원금 모집에도 동참하고, 이웃에게 개혁당 소개도 하죠. 기존 정당처럼 지구당 자금이 충분한 것도 아니고, 사무실 직원이 많은 것도 아니라 직접 몸으로 뛰고 부딪쳐야 해요."

생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처럼 자원봉사 일을 마다 하지 않고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제 걸음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 멀지 않았음을 느낀단다.

"저를 포함해 대다수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치 개혁은 아마도 부패 없는 깨끗한 정치, 정말로 국민들을 생각하고 국민들을 위하는 정치, 그런 것들이 아닐까요?"

이제는 신문이나 TV에서 정책이나 정치에 관한 내용은 한번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된다는 정희씨. 육아 정책, 복지 정책, 교육 정책, 물가 정책 등 어느 것 하나 나와 상관없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내 생활과 내 이웃의 문제를 풀어가고 해결하는 것이 곧 정치임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이제 국민들의 힘과 열망에 의해 바뀐 새 정부가 그 역할을 잘해 나가는지 지켜보고, 잘못된 점은 바꿀 수 있도록 따지는 일도 정치인들이 아닌 바로 우리 국민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할 땐데…. 다른 분들에게 미안해요. 번역 일이 끝나는 대로 당 사무실에 가서 전화 받는 일이라도 거들어야죠."

또 다시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정희씨를 보면서,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참여 정치란 그렇게 어렵고 거창한 일만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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