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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남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많은 국민들과 만나 사연과 고통과 의견을 들었다. 우리는 그 과정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기자회견장의 뒷 배경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문구가 있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야 할 대통령’ 시리즈는 바로 그 문구의 의미에 맞게,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통령인 시대에 우리 사회 각계의 사람들의 삶과 고통과 희망을 듣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며, 줌마네 아줌마 자유기고가들이 참여했다. 이번 글이 일곱 번째다. <필자 주>

“나는 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 적어도 한국의 학교라는 데서 하는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의 교육이란, 대학입시 그것도 이른바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한 훈련장 내지는 조련장 밖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중략)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늘 나는 다른 집 아이들과 똑같이 큰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불행해 하고,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지만 당장에 즐거운 생활을 하는 작은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해 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 학교에 착실히 다니는 큰아이 바라보며 안심하고 있고, 학교에 안 가는 작은아이 바라보며 불안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모순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소설가 공선옥씨가 대안교육 잡지인 ‘민들레’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공선옥씨는 현재 큰아이가 고등학생이며, 둘째 아이는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거부한 채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이제 여섯 살 된 큰아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한글 선생님과 블록 놀이 선생님이 주 1회 집으로 와서 교육을 한다. 이제 큰 아이는 2년 후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제 나도 예비 학부모가 된다.

공교육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알아보던 중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들을 소개받았다. 그들은 강북지역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어린이집의 부형들이었다. 이들은 어린이집에서조차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지식을 가르치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싫어 공동육아를 택했다고 했다. 이들 부형들은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자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아이를 잘 먹이고, 잘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습능력 위주로 아이를 비교평가하고, 폭력과 고발문화가 난무하며, 통제 중심인 교육현장에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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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학부모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오늘 그곳에 갔을까? 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모르는 게 약인데…’

요즘 내 걱정은 오로지 돈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아이들 교육비다. 큰 아이는 영어 학원에 보내달라고 나를 조른다. 방과 후 영어수업은 주3회 1시간 수업에 20만원이다. 같은 반 친구들은 다 한다며 자기도 시켜달라고 조르는데 할 말이 없다.

여섯 살짜리한테 엄마가 돈이 없다고 하기에는 설명이 미흡하지 않은가. 아니 엄마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이다. 미안하기도 하다. 내 엄마는 돈이 없으면 머리라도 깎아서 공부시켜 준다며 내가 원하지도 않는 학원들을 ‘순례’시켰었는데, 나는 아이가 원하는 학원조차도 보내주지 못하다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 엄마는 아이가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 아파트가 있는 곳에 배정 받는 초등학교가 우리 구에서 가장 뒤쳐진다는 것이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선행학습 지도가 미흡하단다. 그 엄마는 나에게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 생각하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난 그날부터 큰 아이가 입학할 2년 후의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디로 이사를 갈까?’

그런 내가 왜 그들을 만났을까. 내가 가진 생각들을 모두 흔들어 놓는 이야기를 들으려 왜 그 먼 곳까지 갔을까? 이제 나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마치 쓰레기장 같다는 그 교육의 현장에 보내야 하는가. 아니면 소설가 공선옥씨처럼 아이를 집에서 가르쳐야 하는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대안이 없기에 일단 보내보기로 했지요. 아이는 생각 외로 잘 적응해 나가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 적응이었습니다.”

대화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남의 잘못을 덮어줄 줄 아는 사람으로 커준 줄만 알았는데 아이는 반대로 가고 있었다. 그러니 손현숙씨가 당황할 만도 했다.

“동생이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맞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엄마는 너를 때린 적이 없는데 누가 그러더냐니까 원래 그러는 거라고, 학교에서는 다 그런다며 폭력을 당연시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이는 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공부 잘하는 친구가 착한 친구이고, 잘못하면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고자질은 자랑이 되었다.

▲ "공동육아 터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아이들"
ⓒ 유수정
"지금 학교교육은 로또복권과 같아요. 많은 사람이 생각없이 맹목적으로 미쳐있는 것도 그렇고, 내 아이가 서울대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몇백만분의 일을 확률을 걸고 아이를 주입식 학습교육에 밀어붙이는 것도 그래요. 20년 동안이 나요."

정작 본인이 교사이기도 한 이현주씨 역시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린다고 했다.

“학교 급식은 너무나 미흡하지만 먹느냐 마는냐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아요. 하다못해 우유까지도 학교에서 정한 우유를 모두 신청해서 마셔야 해요. 1인당 보조금이 나오는데 누군가가 신청하지 않으면 학교에 배정되는 보조금이 줄기 때문에 학교 행정상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기 때문이죠.”

교육보다는 시장 경제 원리가 먼저 적용되는 곳이 지금의 학교란다.

주입식 교육으로 학생들은 자생력을 잃고, 생활 교육이나 인성교육은 뒷전인 채, 모든 학생의 유일한 평가기준은 학습능력이다. 교사의 능력평가조차 학습능력의 향상이기에 교사는 다수의 학생을 통제하며 학습위주의 교육을 이끌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취학통지서를 받고 설레는 마음을 갖는 것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다.

“어느날 아이가 엄마에게 귀마개를 사달라고 하더랍니다. 옆에 아이가 수업시간에 무언가를 물어오면 그 대답을 해 주다가 선생님에게 체벌을 당한다고 옆의 친구의 말이 들리지 않게 귀마개가 필요하다더군요. 이것이 참교육이란 말입니까?”

공교육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교육은 죽었다’며 앞이 보이지 않는 교육 현장에 대해 각성의 목소리는 높다. 그러나 모두를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한다. 현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제시하라고 하면 이들도 다른 부모들과 같이 밤이라도 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은 우리 아이의 교육을 위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내가 만난 학부모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대안 학교’이다. 아이들이 현재 행복하느냐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안 교육의 첫걸음이란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 참아야 한다는 것은 아이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인 셈이다.

현재 초등교육은‘의무’교육이다.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지 않는 부모는 국민의 의무불이행으로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 받는다.‘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는 것’, 그것이 의무교육인가? 그것은‘권리 교육’이라고 불려야 한다고 7세와 6세의 연년생을 키우는 예비 학부모 민영진씨는 말한다.

“국민 복지가 잘 이루어진 나라일수록 의무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초등6년 과정의 의무교육을 중등교육으로까지 확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의무교육이라는 말엔 모순이 있습니다. 교육은 국민 개개인이 누려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런 교육을 의무화하여 이를 어길시에는 죄를 부과하는 것은 국가주의적 발상입니다. 오히려 현행 교육체제가 마음에 맞지 않아 다른 교육과정을 택할 경우, 그 한 사람에게 책정된 교육비를 개인에게 지불하여, 개인이 자발적으로 원하는 교육에 쓰게 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금과 다른 교육체제를 원하는 학부모에게는 그 대안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을 인정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며, 나아가 교육비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교육선진국에도 대안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그들 국가에서는 대안학교를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대안학교나 홈스클링에 대해 열린 사고를 갖고 재정적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대안학교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나, 사회의 남다른 시선들을 모두 극복하고라도 부모들이 대안학교를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대안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인식하는 개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러니 교육부에서 정식 교육 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해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교사가 부족하며, 전혀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학부모 개개인이 투자하는 교육비가 너무 많다.

현 공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할 방안이 대안학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교육이 문제라면 내 아이만 대안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교육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 학부모들은 ‘작은 학교’를 들고 있다. 지금의 학교는 학급당 학생 수가 너무 많으며, 학년당 학급 수 또한 과부하 상태다. 결국 교사는 교육은 뒷전으로 둔 채 행정사무만 보는 것도 벅차단다.

교사가 학생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을 파악하고,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시켜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욕심이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나라의 작은 학교들은 ‘학교통폐합’이라는 이름으로 작년 한 해 동안만도 1000여 개의 학교가 문을 닫았다.

나는 내 큰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영어 비디오는 싫어하면서 영어학원에 꼭 다니고 싶어?”
“네”
“왜?”
“친구들은 다 다닌다고 했어요. 영어는 싫지만 걔들이 나만 빼고 영어로 얘기하면 어떻게 해요. 나도 친구들과 같이 시켜주세요.”

예비학부모로서 나의 고민은 이제 비로소 시작됐다. 소설가 공선옥씨는 아이들의 공교육을 언급하면서 ‘양심적 교육거부’라고 말했다. 2년 후 내 양심은 무엇을 택할지 궁금하다. 2년 후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낼지, 대안학교를 보낼지, 그도 저도 아니면 집에 두고 내가 직접 가르칠 지… 어느덧 2년을 훌쩍 앞질러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 고민을 과연 신임 교육부총리가 덜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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