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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쯤, 전업으로 대학원 생활을 했던 저로서는 언감생심 자가용을 꿈꿀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차들 좀 비싸야 말이죠. 아파트 주차장을 보면, 죽 늘어서 있는 차들은 한 줄만 해도 아마 억대는 호가하지 싶습니다. 차 한 대가 적어도 몇 백만 원부터 몇 천만 원까지 하니까 말이죠.

▲ 아파트 주차장에 늘어선 차들. 가격을 합하면 족히 억대는 넘지 싶다.
ⓒ 이상호

하지만 작업실을 너무 외진 곳에 구한 탓에, 아무래도 자가용이 있기는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욕구를 키워 가던 중 눈에 번쩍 띄는 광고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프라이드: 91년식/ 3Door/ 상태양호/ 50만원.'

다른 어느 것보다 눈에 번쩍 띈 것은 '50만원'이라는 가격이었습니다. 게다가 상태가 양호하다니 무엇을 더 말할 게 있을까 싶었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서 전화를 하고 차를 살펴보았습니다. 딴에는 유리창도 자동으로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 백미러도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횡재가!' 나를 위해서 준비된 차 같았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돈을 지불하고 명의를 이전 받았습니다. 바퀴에서 소리가 조금 윙윙거리는 듯했지만, 50만원에 이만한 차라니 싶어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이틀 뒤, 처음으로 대구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고향에 가기로 했습니다. 애마의 성능 시험을 해 봐야겠다 싶어서 시속 100Km의 속도로 기분 좋게 4차선 도로를 빠져 나왔습니다. 조금 덜덜거리는 것도 같았고, 어디에선가 타는 냄새도 조금 나는 것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50만원이면 시골을 몇 번만 다녀와도 본전을 뽑을 것 같았죠.

근데, 문제는 4차선 도로가 끝나고 2차선 도로로 접어든지 불과 10분만에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차에서 타는 냄새가 나면서 차가 급정거하는 듯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차를 도로 가로 세우고 내려보니까, 바퀴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럴 수가! 처음으로 당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조금 더 안전한 곳으로 차를 주차하기 위해서 차를 밀어봤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바퀴가 전혀 구를 생각을 않는 것이었죠. 50만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능이 좋았던 라디오 소리만 도로 위로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견인차를 불렀습니다. 정비소에서 사장님이 내 차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따, 내 차쟁이 20년만에 베아링이 붙어서 들어오는 차 또 처음 보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퀴가 잘 돌 수 있게 하는 베어링이 부서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운행한 탓에 그게 녹아 붙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베어링을 수리하고, 차 하부도 손질했습니다. 꿀떡 같은 돈 20만원이 고스란히 날아가 버렸습니다. 톡톡한 액땜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50만원짜리 차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습니다. 그 이후로 이차는 200만원짜리 차가 부럽지 않았습니다. 잔고장 하나 없이 버텨 주고, 강가나 비포장 도로를 달려도 끄떡 없이 잘만 달립니다. 버스가 잘 들어오지 않는 작업실을 싸게 구한 탓에 이 친구가 없었으면 꼼짝도 할 수 없었죠.

다만 불만이 있다면 라디오 안테나를 손으로 뽑아내야 한다는 것과, 간혹 잘 열리지 않는 차문 정도였습니다. 아! 그리고 팔뚝에 근육이 붙을 정도로 무거운 핸들도 조금은 불만이었지만, 운동하는 셈 치기로 했죠.

1년 정도 탔을까? 이 차의 생명은 의외로 짧았습니다. 차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심한 접촉 사고로 인해 차량 엔진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리비가 차 값을 상회하는 관계로, 보험회사로부터 시세에 해당하는 차 값만 받았습니다. 다시 탈 수 있게 수리를 해 달래도, 방침이 그렇다면서 50만원을 입금시켜 주더군요.

근데, 다시 50만원 주고 프라이드를 못 사겠더라구요. 교통사고 탓에 목뼈를 약간 삐끗하면서, 아무래도 작은 차가 겁이 나는 겁니다. 그래도 차 없이는 곤란할 것 같고 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눈에 띈 광고가 '코란도 패밀리/ 91년식/ 50만원'이었습니다.

좋더군요. 프라이드에 비해서 '안전'만큼은 최상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두 말하지 않고 차를 구입했습니다. 엔진 소리가 좋다는 친구의 말은 이 차에 대한 신뢰도를 더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차 역시 며칠 뒤에 바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며칠은 주로 낮에만 차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몰랐는데, 밤에 차를 타고 후배들을 데려다 주려고 하는데, 전조등이 켜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50만원짜리 차를 일찍이 경험했던 필자로서는 그러려니 했죠. 하지만 다음날 정비소에 갔을 때 그 황당함이란! 전기 배선이 엉망이어서 도저히 전조등을 켤 수 없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밧데리에 직접 전선을 연결해서 내부에 전조등 스위치를 만들어 넣고서야 전조등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엔진의 우렁찬 소리와 그 큰 덩치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록 전조등도 어둡고 시동도 억지로 걸렸으며, 라디오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고쳐가면서 타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차를 타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 차는 자체 결함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무리 해도 배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날씨가 조금만 추워지면 시동을 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아내가 "버리자!"고 했습니다. 하루 하루 차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제가 안쓰럽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도 했는데, 웬만하면 차를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제의가 들어 왔습니다. 결국 6개월만에 차의 사망 신고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연애와 결혼의 충실한 도구였던 차인지라 정도 많았지만, 더 이상의 노환을 내가 감당하기는 힘들겠더라구요.

아내가 차 값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보고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예의 '50만원론'을 제기했습니다. 차 값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 가격에 걸맞는 차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죠. 이리 저리 알아보는 과정에 친구의 소개로 차주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새차를 구입하고서 5년 동안 탔던 차를 팔려고 내 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가격은 역시 50만원!

▲ 50만원짜리 나의 애마. 세차까지 하니까 번쩍번쩍합니다.
ⓒ 이상호

에스페로 95년식. 준중형이었습니다. 그 이름처럼 모양도 미끈합니다. 엔진 소리도 좋죠. 이번에는 혹시 싶어서 밤에 만나서 전조등도 켜 보았습니다. 차 바퀴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딴에는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다음날 친구가 운영하는 정비소에 가서 차량 수리를 마쳤습니다. 라디오 안테나가 부러져 있고, 라디오에 액정이 죽은 것 빼고는 전체가 양호했습니다. 안테나만 갈고 액정은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코란도 패밀리를 타던 저에게 이차는 너무나 호화스럽습니다. 최고의 승차감과 정숙성, 그리고 시속 100Km 이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행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번씩 5단 기어가 잘 안들어가는 것 빼고는 말이죠.

사실 5단 기어야 안 들어가면 한 번 더 넣으면 되고, 라디오 액정은 라디오 내용을 들어 보면서 채널을 찾으면 됩니다. 이것만 감수하니까 500만원짜리 정도의 정숙성과 승차감, 그리고 주행성을 자랑하는 차를 50만원만 주고도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세 번의 경험을 통해서 이제 50만원만 있으면 최고의 차를 고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50만원에 나오는 차들이라도 대부분은 아직 무덤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차들입니다. 조금만 애정을 가지고 돌보면 가끔 속을 썩이는 한이 있어도 대부분은 만족할 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죠.

다만 차를 처음 바꾸면 차도 새주인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 때는 반드시 속을 썩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계만 지나면 50만원짜리 차들은 평생을 다른 주인에게 봉사했듯이 저에게 봉사를 하더라구요. 감가상각비 걱정이 없으니까, 일상적인 수리비가 아까운 줄도 모르게 되죠.

이러한 차에 만족하게 되면 간혹 1000만원 이상 하는 차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차를 수천만원씩 주고 사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죠. 비싼 것은 제가 지금 타고 있는 차의 100배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차의 승차감이나 안전도·주행성, 그리고 기타 모든 면에서 제 차에 비해 100배를 앞서지 않는다면 가격 대비 제 차가 최고가 아닐까요? 고장 없이 잘 나가면서도 충분히 편한 차를 저는 50만원에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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