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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세월 껍질로 두르고 제 껍데기 말라 단단한 각질 무른 속 차례차례 지키는 양파는 꽃대궁이 잘린 채 우리 집에 팔려왔습니다. 하나의 상품이 되기 위하여 고향 한 줌 흙마저 털어버리고 대궁마저 잘라버린 잇속에도 아랑곳 않고 양파는 제 수분으로 속대를 다시금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다 빨린 엄니 젖통처럼 제 살 쭈그렁 바가지가 되어도 대궁을 위해서라면 허물처럼 지워질 수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어요, 언 땅이어도 뿌리내리고 싶어요. 자갈도 견디기 힘든 박토 도시의 정원 한켠 끝내 양파는 서릿발 털고 대궁을 세웠습니다. 눈물나게 독한 단맛 깊은 살은 썩어 흔적도 없었습니다.

― 시, '그 겨울 양파 -속대를 위하여'전문 (첫 시집 <겨울삽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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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소곱창 다듬듯 시를 엮다


ⓒ 김수열
지방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생의 모진 통과의례처럼 지관(紙管) 일을 계속 하면서도 김광선 시인은 자신의 삶을 문학(시)과 동일시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1990년도에 충청지회 <젊은 시> 동인을 만들어 체험을 육화시킨 시들을 열심히 써 갔다.

얼마 안 되어 바로 현재 대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임수 시인(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이 합류했다고 한다. 윤 시인은 <젊은 시> 동인이 지금까지 건재하는 데 많은 힘과 열정을 쏟았고 호형호제하는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윤 시인은 어디서든 거나하게 취하면 으레 "형님!"을 찾으며 전화한단다.

▲ 김광선 시인의 첫 시집 <겨울삽화>(2000년, 도서출판 <갈무리> 刊)
ⓒ 김수열
1993년에는 <젊은시>의 산파 역할을 담당했던 권태현 시인이 그의 시적 경향이 <창작과비평>에 맞는다는 말을 했단다. 문단이라면 어디에도 줄을 서기 싫어하던 시인은 그 때까지 써 온 시들을 시집 한 권 분량으로 처음으로 정리해서 창작과비평사에 원고를 몰래 보낸다. 그러나 원고는 채택되지 않고 잡지에서 이름을 거론하는 바람에 주변사람들이 원고를 보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당시에는 첫 여자에게 마음 줬다가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그 이후 그는 문단을 외면하고 살아갈 궁리만을 하면서 장사를 시작했고 어떤 문예지도 사서 읽지 않았다. 장사하면서 <젊은 시> 동인 활동만을 하면서 동인지를 통해 일년마다 작품을 발표한다.

그러다 2000년 나이 사십이 되자 쓰고 버리고 쓰고 버려도 남아 있는 시들을 엮을 생각을 하게 된다. 발문 써 줄 사람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첫 시집, '겨울삽화'를 <갈무리>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처녀 시집은 시인 자신에게는 영원히 굳지 않는 붉은 피와 같은 것이었지만 그의 주변은 의외로 냉정했다.

마지막 지키고픈 아프도록 맺힌 자리
그 열매 맷돌에서 갈리네

말강물로 헹구고 또 헹구고 남은
한 방울 진국까지 울궈진다네

오늘, 뿌옇고 탁하더라도 가만 두소
더는 헹구지도 말고 가만 두소

아픔은 눈물로도 시간이 가야 치유되는 법
살아온 껍데기 훌훌 버리고
이제 앙금 같은 것 다 풀어낼라네

뜨겁게 뜨겁게 데워 찰지게도 다가갈라네
메마른 세상
낭창낭창 더는 떯지 않게 달지도 않게


― 시, '도토리묵'(첫 시집 <겨울삽화>에서)

"다시 시작하자. 내가 시를 사랑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나는 아기처럼 다시 시작하자." 김광선 시인은 아픔과 좌절을 딛고 변함 없는 순애보처럼 시를 써 간다.

그러다 문단 사정에 어두운 그는 올 여름에 자신의 삶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리사 일기> 연작시 37편을 다시 창작과 비평사에 보내 첫사랑의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창작과 비평사에서는 몇 해 전부터 따로 신인상 응모를 받아온 터라 "신인상에 응모한 것이냐, 아니면 시집 출판을 위해 투고한 것이냐?"는 질문을 며칠 후 받는다.

"작품만 좋으면 실어준다."

올곧은 믿음만을 갖고 보낸 작품 중에 좋은 시가 있다면 연락이 오겠지, 라고 기다리고 있던 그는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다가 연작시 중에서 다섯 편을 골라 신인상에 응모한다. 얼마 후 그에게 좋은 소식이 날아온다.

▲ 신인상이 발표된 2003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를 아내와 함께 보고 있다.
ⓒ 김수열
'모질도록 아파야 했던/ 그 지키고 싶었던 믿음들 이제/ 여문 포기로 다가가야 함'(시, <김치의 말> 부분)을 삶에서 배웠다는 시인에게 창작과비평社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길고 긴 고통을 순정하게 견디어 가는 것이 어떻게 내적 믿음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곡진한 삶의 도정 속에서 간파하고 있던 시인에게 세상이 처음으로 그 믿음을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딱 한 번 그 외로운 믿음이 삶이 주는 선물이었음을 알려준 순간이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이
겨울달처럼 말갛다
염통처럼 벌름거리며 끓어오르던
깊은 관절과 힘줄과 뼈마디
녹아 흐물거릴 때까지 우려낸 국물
산동네 가슴 시리던 겨울달 같다

끓이고 또 끓이고 토막난 사골과 반골
동동거리고, 엎어지고 넘어지고 부딪치고
먼저 떠오르는 두터운 기름층
대국자로 걷어내고 또 걷어내고
어느덧 비릿한 냄새도 가시고
구수한 냄새가 난다

구수한 냄새가 난다 애꿎게도
골분이 다 빠져버린 뼈다귀는
스펀지처럼 천공(千孔)이 뚫리고
손으로 만지면 가루가 되어버리는
주방 뚝배기 같은 사내 가슴속
묵묵히 겨울달 하나 또 진다


― 시, '조리사 일기5 -겨울달'전문 (제3회 창비시인신인상 당선작 중)

"나는 야생마였고 아내는 애마부인이었다."

김광선 시인은 오랫동안 지병을 앓아 왔다. 어려서 심하게 다친 다리가 재발해서 최근까지 세 번의 수술을 했단다. 그 때마다 그의 아내는 대퇴부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을 받아내고 함께 옆에서 앓았단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삶에 지치고 희망에 지치고 병마에 지친 그의 성격은 남달리 자학적이고 날카롭고 거친 면도 없지 않아 금방 마음의 뿔을 세우고 어디로든 뛰쳐나갈 야생마 같았단다. 김광선 시인은 이 대목에서 잠시 옆에 앉아 있는 아내를 바라본다.

한동안
믹서기 소리에 잠에서 깼다
변변한
약 한 첩 해주지 못한 남편을 위해
명절 선물로 들어온 인삼을
아침마다 곱게도 갈았다 아내는

내 오늘 믹서기를 돌린다
장사한답시고
불규칙한 식사에 위가 헐은
그녀를 위해 양배추를 간다

우리는 가끔 믹서기를 돌린다
너는 나를 위해
나는 너를 위해

서로를 추스르기 위하여
우리는 가끔 믹서를 한다.


― 시, '믹서기'(첫 시집 <겨울삽화>에서)


"가난해도 좋다. 당신, 좋은 글 써라."

김광선 시인에게 첫 독자요, 가장 예리한 독자요, 든든한 후원자는 역시 늘 옆을 지켜주던 아내다. 지관 일 할 때는 파출부로 돈을 벌며 가계의 한 기둥을 담당하면서도 진통제를 먹어대듯 시를 쓰는 남편을 마음 속 깊이 이해해 줬단다.

김광선 시인은 돈 안 되는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을 이해해 주면서 좋은 글 쓰라고 응원해 주는 아내가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되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 대전광역시 법동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 앞에서 김광선 시인이 아내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김수열
"앞으로도 조리사일기를 계속 쓰겠다."

조리사일기 연작시를 쓰게 된 이유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시인은 "남의 삶을 엿보면서 마치 자신의 삶인 양 섣불리 형상화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삶을 치열하게 살면서 그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삶의 방식과 요구들을 형상화해야 한다."고 답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조리사 일기」 연작시를 계속 써 가겠다고 한다. 가장 뜨거운 영역은 역시 자신의 구체적인 삶임을 까마득히 잊혀진 기억처럼 나는 떠올렸다. 나름으로 시를 써 오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나로서는 갑자기 숙연해지고 어둑해졌다.

오래 쓰지 않으면 금세 녹이 슬고
함부로 대하거나 업신여기면
금세 상처로 일깨우는, 감추지 않으리
깎아내고 잘라내고 고르고 골라야
하나의 진실
욕되지 않은 빛깔 앞에서
선명해지리


― 시, '조리사 일기12 -푸른 도구' 부분 (제3회 창비시인신인상 당선작 중)

"시는 곧 삶이다."

마음을 다잡아 나는 시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시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짧고 단호하게 통렬하게 시는 곧 삶이라고 말한다. "시가 감동을 주려면 거기에 치열한 삶이 녹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시가 삶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물리칠 수 없는 강하고 맹렬한 기운에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다음 질문을 잠시 놓쳤다.

"내 시에는 자연이 빠져 있다.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노동과 절망과 치열하게 싸우느라 자신을 내던져온 시인은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삶 속에서 자연과 접할 시간과 공간이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자신의 시에 자연이 슬그머니 빠져 있었음을 아쉬워했다. 행운이 온다면 시골에 땅을 사서 주말엔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음식 장사도 하고 농사도 짓고 싶다고 했다.

잊고 살아 며칠씩 물 먹지 못해도
뿌리에 채워둔 넉넉한 슬픔으로
말라 비틀어질 수 없는 되새김질
이 질긴 뿌리 하나 믿고 살아야 할까 보아.


―시, '분갈이' 부분 (첫 시집 <겨울삽화>에서)

"좋은 시집을 내고 싶다. 좋은 시인으로 남고 싶다."

역시 시인답게 끝으로 좋은 시집을 내고 좋은 시인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소망이 현실로 나타날 것인가, 아닌가는 시인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역시 삶에 대한 도저한 믿음에 달렸다고 생각하면서 인터뷰 내내 흔들리지 않던 그의 눈빛을 신뢰하듯 한참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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