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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누구 땅인가?

정초부터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우리 정부에서 독도 기념우표를 만든다니까 발끈하더니 자신들도 독도 우표를 만들겠단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는 1월 1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더니 급기야 총리 자신이 나서서까지 '다케시마'(독도)는 자신의 영토라며 잇단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에 대한 명백한 도발이고 묵과하기에는 너무나 의도적인 망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국제적 쟁점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중한단다. 그러니 시민단체가 나서고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일본은 총리까지 나서서 독도 영토에 대한 수복(?)을 얘기하는 마당에 우리의 모습은 자국 영토에 대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기에는 어처구니없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처럼 독도도 유행가를 부르며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 왔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는 웃기는 노래다. 역사적으로나 실체적 점유에 있어서도 우리 영토인 것이 분명한 땅에 왜 노래까지 만들어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해야만 했는가.

먼 역사는 유행가 가사에 비교적 잘 나와 있기에 생략하고, 우리의 현대사를 한번 살펴보자. 일본의 한국 강점 이후 소원하던 한일 관계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65년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수교에 이른다. 박정희는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한 뒤 64년부터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목을 매었다.

20년 간 일본과 단절한 관계는 언젠가는 복원해야 하지만 정확한 과거청산과 일본의 한국 불법강점에 대한 반성과 배상이 기본 내용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3억불 현물과 2억불 차관이라는 도합 5억불에 민족의 과거와 자존을 팔아 먹었다. 한일협정이 굴욕적이어서 한일회담부터 국민의 엄청난 저항을 받아 6·3 투쟁까지 이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당시 한일회담의 한국 측 대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였고 일본 측은 오히라 외상이었다. 96년 일본 교도 통신은 한일회담 당시 김 부장이 오히라 외상에게 한일협정에 걸림돌이 된다면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주장했다고 미 외교 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통신은 당시 "김종필 부장이 러스크 장관이 '독도는 무엇에 사용되고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해 "갈매기가 똥을 싸고 있을 뿐'이라면서 '실은 내가 독도 파괴를 일본측에 제의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를 접해 보면 일본이 독도에 그토록 집착하는 원인을 우리가 제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국 영토에 대한 수호의지나 역사인식보다도 돈 몇 푼에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폭파라도 해서 비위를 맞춰줄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건재해 있는 한 일본 총리든 내각의 각료든 망언을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렇듯 독도문제는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그리고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없는 한 풀리지 않을 미래다. 우리 자신이 철저한 역사인식으로 깨어있을 때 풀릴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JP는 아직도 특정 지역을 볼모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굴욕외교도 부끄러운 판에 우리 땅마저도 없애겠다는 사람이 43년째 정치일선에서 건재하다. 대단한 노익장이자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중앙정보부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국무총리를 했다. 국회의원 9선이라는 최다선 보유자요 우리 사회의 확실한 주류가 아닌가.

한술 더 떠 제17대 총선에서 10선 국회의원에 도전한다고 한다. 바둑도 9단이 종착역이다. 9단이면 '입신'(入神)으로 신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을 말한다. 26년생 JP의 나이 내일 모레면 80이다. 이미 양김도 물러났다.

최근 이당 저당에서 자의든 타의든 불출마라는 용퇴 모습이 조금은 우리 마음을 위안케 한다. 어제는 오늘이, 오늘은 내일이 평가하지만 떠나는 뒷모습이라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 JP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가.

아니면 6·3 굴욕외교 반대시위 때 학생들이 박정희 노선의 상징인 '민족적 민주주의'를 장례식 치르며 '시체여, 너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다'고 한 조사가 JP의 현 모습을 추상하는 것이라 느끼는 것은 나만의 불경한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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