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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기의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이거나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관계 단절에서 입는 피해가 더 컸다. 노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했다. 확진자들은 높은 치명률과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린 요양시설 코호트 격리로 많은 수가 숨졌고, 비확진자들 또한 사회적 활동의 단절로 어느 연령 인구보다 깊은 신체·정신적 피해를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노인 1인 가구 및 돌봄 현장 종사자들을 만나 코로나 2년여간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었다.[편집자말]
이수남(가명)씨가 지난 5월 16일 오후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혼자 화투를 치고 있었다.
 이수남(가명)씨가 지난 5월 16일 오후 경기 하남시 자택에서 혼자 화투를 치고 있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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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하남시에서 수십 년 간 홀로 살고 있는 이수남(가명·72)씨는 지난 2년 3개월의 코로나 기간을 "무기징역 독방살이"라고 표현했다.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을 만나거나 대화를 해보지도 못한 채 셋방에 틀어박혀 코로나 시기를 견뎠다는 것이다.

세 평짜리 단칸방은 장롱, TV선반 자리를 빼고 나면 한 사람 몸 뉘일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5월 16일 오후 4시 인터뷰 차 방문한 집에서 이씨는 TV 앞에 펴놓은 이부자리 위에서 혼자 화투를 치고 있었다.

"시간이 안 가. 가만히 있으면 잡념이 계속 들어와서 머리가 돌아버려. '너라도 지껄여라' 하고 TV를 틀고 우두커니 앉아 있어. 몇 날 몇 주, 말을 안 하니까 진짜 혀가 꼬여. 말하는 법을 까먹어. 그럼 머리라도 굴려야 할 거 아니냐. 혀 안 꼬이려고, 숫자 안 잊어버리려고 매일 혼자 화투를 쳐."

코로나 장기화로 노인 우울증이 더 위험해졌다는 분석은 지난 2년 간 다양한 연구 논문 등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가족과 이웃 간 교류부터 지역사회 활동 참여까지 각종 사회적 활동과 관계의 단절이 정서적 위기로 귀결됐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서울·경기 지역의 1인 가구 노인 3명을 만나 지난 2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혀 꼬이고 말 하는 법 잊어"
 
파월 장병 출신인 이수남(가명)씨가 살고 있는 방 현관문 앞에 '국가유공자의 집' 팻말이 붙어 있다.
 파월 장병 출신인 이수남(가명)씨가 살고 있는 방 현관문 앞에 "국가유공자의 집" 팻말이 붙어 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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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외출을 더 두려워했던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 고위험군이기 때문이다. 그는 60세 이상 고령층에다, 4년 전 폐쇄성 폐질환으로 호흡기 장애 중증 등급을 받았다. 조금만 활동적으로 움직여도 숨을 제대로 못 쉬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몸이 심하게 이완되면 대소변을 가리기 힘들 지경까지 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코로나 전엔 부식거리를 사러 인근 시장에도 종종 나갔고 동네를 한 바퀴씩 돌면서 가벼운 운동도 했다. 동네 사람과 마주치면 인사도 나눴다. 코로나 이후 "말소리를 들려주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두 번 복지관에서 오는 생활지원사"밖에 없었다. 단칸방과 부엌을 왔다갔다하는 게 운동의 전부였다. 반찬 때문에 시장에 나갈 수밖에 없을 땐 집 밖으로 나갔다가도 서둘러 들어왔다.

혼자 견디기 어려우면 어떻게 하냐는 물음에 이씨는 "'두꺼비'한테 물어봐야지"라 했다. "속에서 울분 같은 게 확하고 올라올 땐 잠을 못잘 때가 많아서 두꺼비(소주)를 취하도록 먹고 나야 잠에 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말동무라도 있고, 자식들, 손주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갑자기 일이 나 쥐새끼가 나를 파먹어도 아무도 몰라. 우리는 용도 폐기할 때가 지났는가, 누가 걷어주겠냐는 생각이 들어.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 코로나 때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외로움이 '따따불'이야. 농도가 짙어."

감옥과 같은 답답함에, 코로나로 빚진 딸 걱정에
 
김영주씨가 자택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김영주씨가 자택에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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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한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 김영주(83)씨도 지난 2년 간 침대에 파묻혀 자주 울었다. "열 몇 시간을 말없이 지내는 생활을 하루하루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 온다"라며 "전처럼 가족도 잘 만나지 못하고 외출도, 외식도 한 번 못했다"는 것이다.

평소 요양보호사와 함께 걷는 오전 산책은 김씨에게 숨통이었다. 김씨는 28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후 왼쪽 손과 왼쪽 시력을 잃었다. 최근엔 오른쪽 눈에도 황반변성(시력 저하를 유발하는 퇴행성 질환 중 하나)이 와 1m 앞에 앉은 사람도 형체만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도 오전마다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종종 아파트 앞 공원으로 나가 30~40분씩 바람을 쐬곤 했다.

"밖에 나가면 가슴이 툭 터져요. 바람이 불면 편안해. 근데 코로나 2년 동안 못해 봤어. 집에서 뉴스 틀고 있으면 얼마 죽었네, 난리가 났네 겁만 주니 나가기가 정말 무서웠어. 공원 벤치에서 누가 걸려서 퍼졌다는 말도 들리고 의자마다 금줄(금지선)도 쳐져 있고. 가끔 요양보호사랑 외식도 했는데 그걸 2년 동안 못하니까, 입에 지퍼 채우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그 심정이 너무 힘들었어."

가족을 만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김씨가 고위험군인 탓에 손주도 방문을 자제했다. 무엇보다 저마다 먹고 사는 사정이 급했다. 김씨 아들은 투병 중이었고, 딸은 코로나 직전 은행 대출로 자영업을 시작했다가 거듭된 영업 중단에 직격타를 맞고 빚을 갚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씨는 "마음이 멍든 것 같았고 그럴 땐 찬송가를 부르고 마음을 돌리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그걸로도 안 될 때가 있다"며 "그 다음엔 한 번 운다. 침대 엎어져서 한없이 울고 나면 한결 낫다. 그동안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눈이 더 빨리 망가졌다"고 말했다.

우울감이 깊어지니 입맛이 뚝 떨어져 건강도 잃었다. 김씨는 "지난해 언제부터 밥알이 입에 들어가면 쓰디써서 목구멍으로 삼키기가 싫었다. 식욕을 아예 잃어서 밥을 잘 못 먹었다"며 "결국 지난 4월 폐렴에 걸려서 병원 입원도 했다"고 말했다.

"전화가 유일한 말동무였어요. 근데 나는 걸을 수야 있지, 나보다 심한 노인들, 그냥 누워만 있는 노인들은 얼마나 애로점이 많을까. 그게 더 안타깝더라고."

"복지관 못 가고 집에만 있는 심정? 젊은이들은 몰라요"
 
지난 5월 16일부터 재개된 시립마포노인종합복지관 경로식당 풍경.
 지난 5월 16일부터 재개된 시립마포노인종합복지관 경로식당 풍경.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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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초 6개월 정도는 정말 속이 부대꼈어. 생활이 180도 달라지니까. 우리는 한 해 한 해가 달라. 애들이 하루 하루 크는 게 다르듯이 우리도 조금만 지나도 '아유 더 노하셨네(늙으셨네)' 해. 근데 코로나로 아무 것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니 더 빨리 망가져."

지난 5월 23일 서울마포노인종합복지관 경로식당 앞에서 만난 방윤영(75)씨는 식사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며 건강상태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곳 경로식당은 코로나 사태로 2020년 2월 8일부터 내내 문을 닫았다가 2년 3개월 만인 5월 16일 문을 열었다. 복지관에서 무료 급식 지원을 받는 회원은 170여명, 방씨는 이 중 한 명이다.

13년째 복지관을 다니는 그에겐 복지관 경로식당은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혼자 사는 집에선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니 영양사가 짜주는 식단에 따뜻한 밥과 국이 나오는 복지관에 많이 의지했다.

특히 "몸 운동, 입 운동"도 됐다. 25분가량 걸리는 거리를 매일 왕복으로 걸으면 상당한 운동이 됐다.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아도 바둑을 두거나 옆에서 지켜보고,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서 나무 그늘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게 하루의 소일거리였다.

그러나 2년 3개월 간 식당은 물론 복지관도 거의 문을 닫았다. 유행이 줄어들면 잠시 열렸다가 감염이 확산돼 금세 문을 닫는 상황이 반복됐다. 식사 중단을 우려한 복지관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레토르트 음식, 김 등 가공식품으로 대체식을 마련했으나 영양사의 조리 음식과는 차이가 컸다.

코로나 이전 복지관의 하루 이용자 수는 1600명쯤 됐다. 경로식당도 하루 500~600명 정도 이용했다. 지금 경로식당 이용객은 300명 정도다. 발길을 끊은 회원들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방씨는 "다 집에 있겠지. 몸 안 좋아진 사람도 있고. 근데 집에 있는 게 참 쉬는 것 같지 않다"며 "TV 틀어놔도 귀 아프고 눈도 나쁘고 정신도 사나워 오래 보지도 못한다. 그럼 매일 누워 있어야 하는데 음식도 신통치 않고, 낮부터 자서 밤에 깨면 다시 자기 어려워 뜬눈으로 새벽을 보낸다. 사는 게 참 유기적이지 않게 되더라"고 답했다.

"'줌'이라고 가르쳐준대서 한번 받아봤는데 아유, 금방 돌아서면 까먹고 손가락도 말을 안 듣고 시에서 준 컴퓨터가 옛날 거라서 더 안 되고, 못하겠더라고. 젊은 사람들은 이런 거 모르겠지요. 우리는 여기 못가고, 저거 못하고 하는 게 참 어려움이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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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코로나, #노인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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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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