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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의 공문을 근거로 식중독과 무관한 후식용 과일까지 납품 발주를 취소하면서 멜론·포도 등 과일농가는 물론이고 농협을 비롯한 학교급식 납품업체도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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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오이 먹는다고 식중독 걸리나? 도대체 수박이나 포도를 익혀먹으라는 말인가? 누가 보더라도 식중독 사태의 원인은 열악한 급식환경과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발생된 것이 자명한데 엉뚱하게 농민들이 그 책임과 피해를 뒤집어썼다. 교육부에 항의했더니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현장에서 그런 문제가 생길 줄 몰랐다고 한다. 기가 막히다. 교육부 관료들은 생산자인 농민은 안중에도 없더라. 한 마디로 탁상행정의 극치 아닌가?"

한석우 경기도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처장의 분노 섞인 하소연이다.

교육부는 지난 9월 2일 학교급식 식중독 예방 관련 공문에서 식중독 발생 방지를 위해 “가열조리된 음식 제공을 원칙으로 하고, 비가열 식품은 당분간 조리방법 및 식단을 변경하여 제공”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 교육부가 보낸 공문 내용 교육부는 지난 9월 2일 학교급식 식중독 예방 관련 공문에서 식중독 발생 방지를 위해 “가열조리된 음식 제공을 원칙으로 하고, 비가열 식품은 당분간 조리방법 및 식단을 변경하여 제공”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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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잘못된 공문으로 날벼락을 맞은 농민들

지난 9월 2일, 교육부는 식중독 사고를 막겠다며 채소 등 비가열식품을 가열조리 식단으로 변경하고, 따르지 않을 경우 특별 불시점검을 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격적으로 각 학교로 내려 보냈다. 이른바 <학교급식 식중독 발생 방지를 위한 조치사항>이라는 공문을 받은 일선학교들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비가열식품의 식재료인 백오이, 적상추, 청상추, 치커리, 배, 포도 등을 예고 없이 주문 취소 및 발주 변경하였고, 이에 학교급식 계약재배 농민들과 친환경 과수농가들은 가만히 앉아서 날벼락을 맞았다.

한석우 사무처장은 "올해 여름 유래 없는 폭염으로 채소가 녹아버리고, 벌레가 창궐하고, 과일은 타들어가는 등 가뜩이나 피해가 엄청난데, 엎친데 겹친 격으로 교육부의 어이없는 공문으로 채소농가와 과수농가는 또 다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토로한 뒤 "우리 농민들은 잠재적 식중독 유발자로 낙인찍혔다. 너무도 안타깝고 억울하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어 "그런 공문을 보낼 때는 소통은 고사하고 최소한 협의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왜 우리 농민들은 통보만 받아야 하는가? 왜 번번이 농민들만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라며 한숨을 길게 쉬었다.

교육부의 공문을 근거로 식중독과 무관한 후식용 과일까지 납품 발주를 취소하면서 멜론·포도 등 과일농가는 물론이고 농협을 비롯한 학교급식 납품업체도 큰 타격을 입었다. 충북의 한 농가는 발주 취소로, 농산물을 시장에 헐값으로 넘겨야 했다고 허탈해 했고, 전북 남원원예농협은 9월 납품계약액 1억5000만 원 중 납품을 하지 못한 1억 원어치 농산물의 판로가 불투명해져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책임, 배상 등을 강조하고 있는 교육부 공문. 그러나 정작 아무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교육부
▲ 교육부가 보낸 공문 내용 책임, 배상 등을 강조하고 있는 교육부 공문. 그러나 정작 아무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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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원협농산물유통센터 학교급식사업단 이강철 단장은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문을 연 뒤 "과일로 인한 식중독 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눈에는 농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개돼지로 보이나 보다. 농민들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단 1%만 염두에 두었더라도 이러지 못한다. 일주일 아니 사흘은 고사하고 하루 전에만 통보했어도 이렇게까지 화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미 스티커를 붙이고 포장을 끝내고 각 학교로 갈 물건을 싣고 출발하려는데 연락이 왔다. 발주를 취소한다고...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는가? 우리 농민들은 영원한 을이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친환경학교급식경기도운동본부 구희현 대표는 "상추, 오이, 배, 포도 등 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식중독이 걸리나?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이지 식재료가 문제가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교육부의 엉터리 공문으로 인해 출하 농가들이 피해를 보았다. 학교급식에 계약재배를 통해 연중 공급하는 농가들의 채소와 과일이 출하되지 못하는 고통이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교육부에 엉터리 식중독 방지 공문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요지부동이더라. 이러니 교육부를 교육통제부라고 부른다"고 혀를 끌끌 찼다. 

"교육부에 엉터리 식중독 방지 공문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요지부동이더라. 이러니 교육부를 교육통제부라고 부른다"
▲ 9월 20일 열린 시민단체 기자회견 "교육부에 엉터리 식중독 방지 공문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요지부동이더라. 이러니 교육부를 교육통제부라고 부른다"
ⓒ ⓒ친환경학교급식경기도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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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교육청들은 농민들의 항의를 받고 일부 완화조치를 취했지만, 식단은 한 달 단위로 이루어지기에 9월 한 달은 고스란히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10월이 되면서 학교들이 채소와 과일을 주문하고 있으나 일부 학교들은 교육부의 9월 2일 공문이 여전히 유효하기에 채소와 과일 주문을 꺼리고 있다.

결자해지차원에서 공문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화가 난 농민단체 대표들은 농민비례대표인 김현권 의원실(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김현곤 보좌관은 "교육부 관계자에게 해제 또는 종료 공문 등 시정조치를 요구했으나 담당자는 '식중독 사고가 날 때마다 통상적으로 공문을 보낸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제공문을 보낸 적은 없다. 해제공문 보냈다가 덜컥 식중독 사고 나면 우리가 책임져야 하기에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관료사회의 경직성에 놀랐다"며 "해제공문을 내려 보내지 않으면 영양(교)사들은 방어적으로 식단을 짤 수밖에 없고, 농민들의 피해도 계속되고 결과적으로 학생들 건강에도 좋지 않은데, 그걸 모를 리 없는 교육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답답했다"고 덧붙였다.

조우상 경기도 영양교사회 부회장은 "식중독이 농산물 때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면 최소한 오보였다고 수정을 해야 함에도 교육부는 하지 않는다"며 "여전히 감사와 점검 위주의 행정이다. 호통 치듯 지도점검을 강조할 줄만 알지 학교 현장의 불만이나 애환을 개선하려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또한 "교육청에 이의를 제기하면 자기들은 우체국이다. 교육부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밖에 할 수 없다고 하는 소리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화재경보 발령 후, 해제 조치를 취하듯 9월 2일 공문에 대한 후속조치 차원에서 해제 공문을 보내야 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교육부 관계자는 26일 "해제 공문이 필요할까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식중독 원인 규명이 잘못됐고 이로 인해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으니 사과 표명 및 재발방지 차원에서라도 후속 공문을 보내줘야 영양(교)사들이 평상시처럼 균형있는 식단을 짜지 않겠느냐고 하자 "그것은 윗분들이 판단할 일이다. 참,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협조요청이 와서 지난 9월 26일 시도교육청에 필요한 조치를 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고 했다.

'그것도 농민들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하소연했고 의원실에서 강하게 요구해서 이뤄진 일 아니냐? 교육청에 미루지 말고 9월 2일에 전격적으로 모든 학교에 보냈던 것처럼 교육부 차원에서 왜 후속공문을 보내지 못하느냐'고 되묻자 교육부 관계자는 "답변할 처지가 못된다"며 말을 아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제 공문이 필요할까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교육부 전경 교육부 관계자는 “해제 공문이 필요할까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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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우 사무처장은 "작년에는 메르스 때문에 올해는 폭염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 말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번 교육부의 공문은 다르다. 오죽하면 일부 농민들이 교육부를 상대로 배상요구를 하자는 말을 하겠나? 앞으로는 농민들도 사람으로 생각해 주고 생산 농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근본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015년 이후로 중단되었던 광역급식센터 설립 등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학교 급식 , #교육부가 보낸 공문 내용, #교육부, #농림축산식품부, #식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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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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