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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05. 2017

나의 운명은 꿈을 이룬 삶일까, 잃은 삶일까.

모든 해답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찾아온다.

운명은 정말 있을까? 운명이 있다면, 나의 운명은 꿈을 이룬 삶일까? 꿈을 잃은 삶일까?

지금에 나는 감성적이면서 이성적인 사람이다. 현실에 직면한 위기를 호기롭게 맞설 용기는 사실 없기에, 그 위기를 대처할 보험을 준비하고 방호벽을 세워 만든 길 위에서 최선의 감성을 누리며 사는 중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한 삶은 아니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삶 속에 살았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고 원하는 삶이 있지만, 현실을 직면하면 덜컥 겁부터 먹는 스스로가 참으로 한심한 삶이었다. '꿈'이란, 잠에 들었을 때나 찾아오는 '허상'같은 것으로 간주하며 살았다.

꿈을 꾸나 아침이면 깨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잠든 후에만 비로소 진정한 꿈을 꾸는 나. 현실을 닮은 아침이 밝아오면 그 꿈에서 깰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법칙 안에 갇혀 살던 나.


그렇기에 현실에 맞서며 꿈을 꾸는 그 녀석이 부러웠고, 현실을 넘어 진정한 사랑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그녀가 대단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나 또한 운명을 믿고 꿈을 갈망했지만, 그런 건 '행운'같이 극히 드물게 찾아오는 희박한 확률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있었기에, 나와 다른 것 같은 그들이 부러웠다.


결국, 회의감이 몰려왔다. 꿈을 쫒아 끝내 이루어 내는 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순간에나 있었기에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찌해야 할까.

모든 해답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찾아온다.

올해 초까지 방영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알까? 사실 나는 아직도 이 드라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신神의 뜻도 넘어서는 진정한 운명의 존재를 말하는 이 드라마는, 나의 이성을 잠시나마 무너 뜨렸던 작품이었다.

세상에서 멀어지려 할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밀어준다면, 그건 신神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수많은 명대사가 나왔지만 지금까지 유일하게 짙게 남아있는 대사. 이것으로 뭔가 설명 못 할 용기가 마치 신앙처럼 마음에 깊게 자리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그러한 순간이 정말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꿈을 이루자며 우러러보는 것이 아닌 이미 꿈은 시작되었다 여기고, 이어가기 위한 책략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든 걸 놓아 버리고 꿈 만을 쫒는 다면 내가 세상에서 멀어지려 할 때 등을 밀어주는 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꿈에 크기를 키워 언젠가 그 꿈이 현실을 지탱할 힘이 될 때까지, 유지할 대비책을 키우며 꿈과 함께 이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미 나는 자신 있게 나의 직업을 시인詩人이라 말할 수 있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업은 꿈이 커질 때까지 나의 신神으로 두면 된다.


이제 조금은 무모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내 꿈으로 그려나가 보고 싶어 졌다. 그것을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 이 순간 글을 써내리는 손 끝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다.


나는 앞으로 무모한 사랑도 꿈꿔 보려 한다. 아직은 허울뿐이고 무능력한 나지만, 그녀를 끝까지 사랑해 볼까 한다. 그렇게 나는 이성과 감성을 오가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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