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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17. 2017

이기주 작가

당신이라면 클릭해주세요.

나는 지금 당신의 이름 석자를 인터넷에 한 번 검색하지 않은 채, 소리를 최대로 줄여놓은 이어폰 속 경음악에 기대어 당신에게 전할 글을 쓸까 합니다. 나의 이야기로 대부분을 채울 이 글에, 당신의 이력은 필요치 않으니 말입니다. 또한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른 체, 그저 "언어를 사랑하는 작가"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조금 멋대로 일지 모르는 판단과 갈림길에서 헤매는 글이 되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이 글에 답하지 못할 당신은 편히 읽고 느껴만 주시길 바랍니다. 그저 앞으로도 좋은 글을 계속해서 써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보다 당신의 책으로 당신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로 나에게 있어 당신은 '언어의 온도'의 작가 이자, '말의 품격'이라는 '글의 완성자'에 가까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성별과 나이, 전직업과 현업, 생김새 등 어느 하나 알지 못한 체 말입니다.


저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독서량이 연간 9.1권(2015년 기준)이라는 저조한 수치를 기록하는데 과하게 일조한 사랑 중 하나일 정도로. 그럼에도 누구 하나 묻지 않는 책임이었기에 저는 간과하고 지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알 것입니다. 책임을 방관 당한채 방치된 사람은 도를 지나친 다는 걸.


책을 멀리하는 제가 수개월 전, 저의 이름으로 독립출판을 했었습니다. 어깨에 힘만 들어간 건방진 글쟁이가 되어버린 순간이었죠. 그 순간을 의심 없이 만족해하던 저는 어느 순간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디자인 프로그램에 페이지를 생성하여 글을 채우고 디자인을 걸어 두던 때부터였습니다.

호기롭게 시작한 책 쓰는 일. 빈 책에 담아낼 글들을 추스르다 보니 자연스레 지난 시간의 상당수를 채웠던 먼지 쌓인 글을 읽게 되었고, 차마 담지 못할 어리숙한 글들이 천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초록색 일기장을 펼쳐 읽는 어른의 낯 간지럼 같은 부끄러움이 몰려왔습니다. 


가슴에 큰 짐이 생긴 듯했습니다. 물론 글이란 건, 어떠한 명장이 평생을 걸쳐 티끌 하나 없는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일처럼 궁극적인 완성의 형태를 띨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긴 시간을 들여 글을 연마한 들, 완전한 글은 완성될 수 없다는 걸. "하지만 완성에는 가까워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압박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과 함께 살고 글로 살아가 길 바라는 저의 꿈이, 미개한 꿈으로 전락할 것만 같았습니다. 


걱정은 머지않아 가슴에 응어리 같은 큰 짐을 자리하게 했고, 해결을 위해 몸을 서점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한참을 뒤적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온도'. 깔끔한 명조체와 표지를 덮은 된 보랏빛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무작위로 펴낸 페이지에서 발견한 구절이 가슴을 내려 앉혔습니다.

화향천리花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꽃향은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은 그리움과 같아서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에세이 언어의 온도 - 인향人香 中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새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깨끗한 책을 발견하여 손에 꼭 쥐었습니다. 책의 처음을 여는 프롤로그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숨 죽여 읽고 싶어 지더군요. 그리고 이러한 문장을 쓴 당신의 또 다른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멀지 않은 곳에 '말의 품격'을 발견하여 또 다른 손에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책 두 권을 손에 들었습니다. 작은 희망과 함께.


그리고 오늘, 조금 긴 시간이 지났지만 말의 품격을 마지막으로 당신의 책 두 권을 모두 다 읽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정중한 독서였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서 새로운 글감과 내 글에 영향을 줄 문장들을 되새김질하듯 읽었던 깊은 독서였습니다.


어느 내용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던 무게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의 얕은 경험을 펼쳐 최대한 비슷한 기억을 끌어내 공감하고 이해하려 힘썼고, 그 수련 같던 시간들은 제 글을 조금씩 붙는 근육처럼 맵시를 키우는데 큰 일조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의 글을 내 고민의 해결책으로 바라는 마음에 읽었던 시도는 죄송하나, 진정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언어를 사랑하는 이기주 작가


당신의 글로 인해, 말을 뱉을 때나 글을 쓸 때 두어 번 정도 정체停滯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간과했던 나의 '글''말'이라는 무딘 날에 무방비로 베일 누군가의 안위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글이나 언행에서 발현하는 언품言品이 그의 품격이 될 수도 있다는 당신의 말. 물론 100% 지당한 말은 아닐 것입니다. 맹점 또한 존재하겠죠. 세상에 완벽한 글은 없으니.


다소 거친 언어의 소유자라도 그의 내면에는 어떠한 풍파도 이겨낼 견고한 석탑이 자리해 있을지 모르니, 적당한 시간을 두어 그의 말뿐만이 아닌 그의 품행을 보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당신의 책 '언어의 언도' 내용 중에서 제 주장과 비슷한 맥락을 가진 글이 있으니,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얘기일 테죠.


'에세이'란 한 사람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문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는 A5정도는 되는 작은 창으로 작가의 삶, 생각, 그의 뜻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죠. 그런 면에서 에세이는 사람이 중심인 이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가장 필요한 장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그 사람의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과 길은 없으니 말입니다. 완벽한 글이 없듯, 완벽한 사람도 없는 세상에서 당신의 글은 분명 맹점盲點은 있으나 허점虛點은 없습니다.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완전하다 생각되는 신神마저도 완벽한 죄악에 완전한 심판을 해내지 못하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글을 쓰는 저의 방황을 길잡이 해준 당신의 글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의 말은 연어가 산란철이 되면 물길을 거슬러 고향으로 가듯, 입을 떠났던 말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말하던 당신의 글이 떠오릅니다. 머릿속에 인향人香만큼 깊게 박힌 문장인 탓에 나는 어떠한 글과 말을 꺼내려할 때, 돌다리도 두드려 건너 듯 때론 느리게 걷는 신중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심성이 짙어진 게 흠이라면 흠이겠군요.)


마지막으로 올해 초에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짓도록 하겠습니다.


"신神은 어떤 모습이었어?"

"나비였어."


"하.. 그럼 그렇지, 늘 그런 식 이시지, 지나가는 나비하나 함부로 할 수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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