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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성배 Sep 27. 2017

당신의 장르는 무엇인가.

불안한 글쓰기 중인 당신에게.

글도 음악과 같은 장르를 지녔다. 즉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음악의 장르를 갈라 듣듯, 글의 장르에도 호불호가 갈린다. 여기서 글의 장르는 수필, 시, 소설, 비평 같은 글의 '분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깊은 곳의 '색'을 말한다.


글의 분류나 음악이 '글자'와 '노래'라는 공통된 하나의 매개체를 갖듯, 글이 분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적힌다 한 들, 그 글에 담기는 필자의 '색'은 종류를 넘어 향처럼 베어 든다. 그것이 곧 글에 장르라 생각한다.


직설적인 단어와 거르지 않은 솔직한 문법이 담긴 그의 글은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락'이라는 장르를 품고 있다. 적당히 순탄한 길을 걷다가 의도적으로 좀 더 굽어진 길로 빠지는 그의 글은 때때로 익숙지 않은 기교가 섞인 R&B라는 장르에 속한다.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다 텍스트화 하여 흰 화면에 빼곡히 담아내는 그분의 글이 클래식한 글이라면, 글에도 동양화를 녹여내는 듯, 공란을 길게 남겨 독자가 스스로의 생각을 채우끔 하는 그녀의 글은 뉴에이지를 연주했다. 어떤 이는 가장 산들거리는 단어들만 나열하여 산내음을 풍기는 어쿠스틱 장르를 부른다.


음악의 장르마다 각 각 지닌 느낌이 이렇게 다르 듯, 리스너 혹은 독자는 자신의 색깔과 감성에 유사성을 띄는 장르만을 추려,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채운다. 그 말은 곧 그가 들어주지 않는다 하여 좋지 않은 음악도, 그녀가 싫다고 하여 실패한 음악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쯤에서 나는, 나를 포함해 어딘가에 걸 터진 듯한 불안한 글쓰기 중인 당신에게 '응원'을 보내려 한다.

과거 싸이월드(2000년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자물쇠를 걸어두고 가장 비밀스러운 일상이나 굴뚝같은 고백들을 빼곡히 채웠던 시절에는 자신의 글을 다른 이와 비교하여 스스로를 몰아넣는 불필요한 괴로움을 주지 않았다. 파도를 타고 넘어가 도착한 친구 홈피의 다이어리를 봐도, 랜덤을 눌러 높은 투데이를 기록하는 홈피의 다이어리를 봐도 글과 글을 비교하여 '수준'이라는 불필요한 분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년 사이에 뉴 플랫폼이 수 없이 등장하면서 글을 쓰고 유통하는 과정이 클릭 한 번으로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엄청난 양의 수준 높은 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브런치'만 봐도 감탄이 끊이지 않는 수준 높은 글이 즐비한다. 자괴감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찾아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자신의 글을 누군가의 글과 비교하며 "나는 왜 이렇게 쓸 수 없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넘은 심려와 자책을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무심해진 만큼, 열등감이 뿌리 깊게 내려앉고 말았다. 나 또한 그렇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꾸준히 내 글이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읽힌다. 매일매일 특정 인물들이 나의 글에 공감을 해준다. 메시지가 날아온다. 꿈만 같은 '작가님' '시인님'과 같은 분에 넘치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준다. 나의 장르도 누군가의 플레이 리스트 상단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당신의 글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열등감과 시기는 자신의 안녕을 위해 필요하다. 자신의 발전에 필수적인 자극제가 된다. 다만, 과유불급이다. 지나친 자기학대는 자신을 무너지게 할 뿐이다. 제 손에 쥐어진 금을 보고 돌이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의 손에 들린 금덩이는 금빛을 찬연하게 빛내고 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자신의 글의 장르를 찾아 보자. 이것은 자신의 글을 사랑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우선 지금까지 써온 글을 읽어보자. 수십 개 수백 개가 된다 한들 공통적으로 말하는 색이 있고 풍기는 향이 있을 것이다. 

나의 글은 시를 부른다. 어떠한 주제를 갖고 글을 쓴다 한들 시적 표현을 빼낸 체 쓸 수가 없다. 마치 글자를 완성하기 위해 자음과 모음을 끼워 맞추듯, 글을 완성하기 위해 시(자음)와 글자(모음)를 끼워 맞춰 '나'라는 사람의 글을 완성한다.


살에 닿는 바람이 애틋한 이 가을도 죽어 내리는 절경의 죽음도 빠짐없이 모든 게 감동이 된다. 그 감동을 시로 담아내지 않으면 벅차서 죽을 것만 같다. 사랑에 빠졌다. 영원히 갈라질 수 없는 융합 같은 사랑이다. 나의 글은 그렇다. 가장 소박한 사랑을 부르는 '발라드'를 지녔다.


이게 누군가의 플레이 리스트에 있을 나의 글의 장르다. 당신도 당신의 글의 색을 찾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글을 쓰지 않는 이가 있다면 꼭 써보길 바란다. 영상과 사진의 기법은 수학과 같다. 간혹 난제에 부딪히기도 하나, 대체로 정답이 있고 경우의 수 또한 예상 범위 내에 있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영상과 사진을 찍는 이도 글을 쓸 수 있으나, 영상과 사진은 장비와 장소에 구애를 받기에 누구나 시작하기에 앞서 준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글은 그러한 장벽 없이 누구나 당장 쓸 수가 있다. 장비 빨도 보정 빨도 필요가 없다. 그게 더 어렵게 다가올 수 있으나,


글이 꼭 대단한 것을 담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눈을 감고 잠으로 향하기 전 붕 뜨는 의식적인 암흑 속에서도 생각을 한다. 그것을 시각화된 우리의 글자로 옮기면 그것이 '글'이라는 작품이 된다. 대단하지 않은 작품을 수록 가장 근사한 품위를 드러낸다.


정말이다.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는 글은 누구나 써낼 수 있기에 60억의 개성이 중복되지 않는다. 수치화된 영상과 사진은 대상을 정해 똑같이 따라 만들 수 있으나, 글이란 건 잘 써진 글을 따라 쓰려해도 자신의 색이 섞여 또 다른 색을 띠게 된다. 


그러니 글을 쓰지 않는 당신이라면,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작품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길 바란다.


※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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