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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크메르공화국의 국기에서 미국 성조기의 느낌이 든다. 국기에서 조차 당시 론놀이 이끈 공화국이 친미정권이었던 역사적 정황을 잘 설명해주시는 듯 하다. 캄보디아 축구팀이 박대통령컵에 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설명이 될 싶다.
▲ 축구전성기를 구가하던 지난 1970년대 캄보디아 공화국시절 국기(좌측)과 오늘날의 캄보디아 1970년대 크메르공화국의 국기에서 미국 성조기의 느낌이 든다. 국기에서 조차 당시 론놀이 이끈 공화국이 친미정권이었던 역사적 정황을 잘 설명해주시는 듯 하다. 캄보디아 축구팀이 박대통령컵에 출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설명이 될 싶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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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표현은 꼭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축구의 변방,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 축구계에서도 최약체다. 역대 월드컵 1차 예선조차 통과한 적도 없으며, 11월 현재 FIFA 랭킹 191위이다. 154위가 역대 최고 순위.

하지만 캄보디아축구팀이 1970년대 초중반 한국, 미얀마, 중동의 맹주로 불리는 이란과 더불어 아시아 축구무대를 주름잡았던 국가였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긴 축구역사를 따지면 불꽃같은 짧은 순간이지만, 캄보디아 축구가 이들 나라들과 함께 아시아 축구계에서 포효하던 축구강국으로 한때 군림했다. 연세가 지긋한 한국의 올드축구팬들 중에도 의외로 이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화려했던 70년대 캄보디아 축구 전성시대

캄보디아 축구가 아시아 축구계에 첫 돌풍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1972년 AFC 축구대회부터다. 첫 출전한 이 대회에서 4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많은 축구팬들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대회에서 국가대표간 공식 A매치 경기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팀과 캄보디아팀이 예선전에서 맞붙었다. 경기 결과는 당시 차범근, 이회택(전 국가대표 감독), 박이천(前 인천 FC 감독) 등 당대 최강의 공격수들을 보유한 한국대표팀의 4-1 압승.

비록 예선전에서 당대 아시아 최강 한국국가대표팀에 완패했지만, 선전을 거듭한 끝에 4강에 들며 그 대회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참고로, 오직 축구열성팬만 기억하는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축구영웅이기도 한 차범근 감독이 당시 최연소인 19살의 어린나이로 출전, 캄보디아 국가팀과의 예선경기에서 공식 A매치 경기 생애 첫 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돌풍은 시작에 불과했다. 여세를 몰아 이듬해인 1973년 서울운동장(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명칭이 바뀜)에서 개최된 제3회 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에서 캄보디아 축구팀은 대파란을 일으켰다. 나중에 박스컵(Park's Cup)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이 국제축구대회에서 캄보디아 국가대표팀은 당시 한국국가대표팀을 3위로 밀어내고, 당시 아시아 축구의 또 다른 강국 '미얀마'와 공동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홈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주최한 국제축구대회에서 전년대회에 이어 연거푸 외국팀에 우승컵을 빼앗기자, 축구관계자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후문도 있다. 아무튼, 국제대회에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베일에 가려 있던 캄보디아 축구팀이 혜성처럼 나타나 거두어들인 기념비적인 성과는 70년대 초 아시아축구계에 큰 화제거리였다.

또한 많은 한국 올드팬들의 기억속에 오랫동안 강팀으로서의 이미지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다시 부활을 꿈꾸는 캄보디아 축구

하지만 그것으로 그들의 영광은 종지부를 찍었다. 친미정권인 론놀이 이끄는 크메르공화국이 공산게릴라들에 의해 무너지자, 그들 조상이 만든 화려했던 앙코르제국의 몰락처럼, 캄보디아 축구 역시 한순간에 몰락하고 말았다. 박대통령컵 우승이 공식기록상 국제무대 첫 번째 우승이자, 마지막 우승 기록으로 남게 된다.

1975년 '크메르루즈'로 상징되는 폴폿정권의 프놈펜 함락 이후 내전을 거쳐, 90년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캄보디아 축구는 최근까지 거의 40여년간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지만 캄보디아 축구의 이러한 위상과는 전혀 별개로 최근 들어 캄보디아 내에서 불기 시작한 축구 열기는 유럽 프리미어리그 부럽지 않다.

앙코르제국만큼이나 화려했던 축구강국으로서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부활의 몸부림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된다. 최근 이러한 열기에 힘입어 프로축구 스타일을 표방하는 클럽 축구팀들이 하나 둘씩 출범하기 시작했다. 일부 클럽팀 감독은 놀랍게도 유럽리그 출신들이다. 스카우트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도 말이다.

축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은 지 반세기가 다되어가는 낡은 올림픽스타디움은 프로축구가 열리는 주말이면 명절을 앞둔 시골 장날을 방불케 한다. 한낮 열사에 뜨겁게 달구어진, 앉는 것조차 고역인 콘크리트 스탠드도 축구광팬들에겐 그다지 중요치 않다. 치어리더도 없다. 하지만 경기시작 전부터 축구장은 응원의 열기로 가득하다. 7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캄보디아 축구가 부활을 꿈꾸듯 축구 열기가 확실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또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캄보디아 실업축구팀 선수들 중엔 외국 용병선수들도 뛰고 있다는 것이다. 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출신의 용병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도 제법 눈에 띈다. 언뜻 팀구성원만 보면 프리미어리그 못지 않다.

그들의 개런티 수준이 궁금하지만, 공식적으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통상 알려진 것처럼, 실업축구팀 선수들의 급여가 최저 150불에서 최고 600불 정도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이거나 조금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10여개에 달하는 클럽축구팀들이 주말마다 경기를 치르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활황을 맞고 있는 이동통신회사들과 현지의 돈많은 은행들이 주요 스폰서다. 그중 가장 인기가 높은 팀은 프놈펜 크라운 클럽팀이다.

작년 캄보디아 내셔널컵 우승팀이자, 2011년도 AFC 프레지던트컵 준우승이란 대업을 이룬 바 있다. 이번 시즌 역시 강력한 우승후보다. 기량이 다소 떨어지는 B급국제대회이기는 하지만, 캄보디아축구팀이 최근 아세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무더운 날씨만큼이나 현지인들의 축구사랑은 더욱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주말 저녁 노천까페에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대형스크린TV앞에 몰려, 프리미어리그를 즐기는 캄보디아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프놈펜시내에선 이젠 매우 흔한 풍경이다. 덩달아 프리미리어거 박지성 선수의 인기 역시 높다. 그러한 가운데 한캄 재수교 15주년을 기념하여, 한국프로축구팀(감독 박정호)과 캄보디아 프놈펜 크라운팀 선수들이 주축이 된 캄보디아 국가대표팀간 친선경기가 프놈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12월 9일 열릴 예정이다.

한국프로축구를 대표하는 정성민(강원FC), 이호(대전 시티즌), 임현우(대구 FC), 문주원(강원 FC) 같은 전 국가대표 출신의 기라성같은 프로축구스타들이 올스타팀으로 대거 출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친선경기이고, 국가대표간 A매치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캄보디아 축구팬들 사이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경기를 알리는 포스터를 시내에 붙이자마자, 축구팬들의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실력차가 워낙 커 경기 결과가 뻔할 것이란 예상 때문에 다소 심드렁한 분위기의 교민사회와는 매우 대조적인 분위기다.

돌이켜 보면, 근 40여년이란 오랜 시간을 사이에 두고 양국 국가대표간 실력은 경제수준만큼이나 현격히 벌어졌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캄보디아국민들에겐 아시아의 축구맹주 대한민국 프로팀과의 경기는 월드컵 결승만큼이나 놓칠 수 없는 '빅이벤트'인 셈이다. 아무튼 이번 프로축구 올스타팀과의 경기는 그들의 가난하고 찌든 삶에 또 다른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화려했던 캄보디아축구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는 지난 날 박대통령컵때의 화려한 영광이 낡고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오버랩되어 옛 향수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로 한캄 재수교 15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한해, 한국과 캄보디아 프로팀간의 친선경기가 양국친선증진에 기여함은 물론, 연중 30도가 넘는 무더운 이 나라를 식혀줄 시원한 단비같은 청량제가 되어주길 고대해본다. 다시 한 번, 캄보디아 축구가 세계무대에서 화려한 부활의 발리슛을 날릴 날을 꿈꾸며….

덧붙이는 글 | 박정연 기자는 재 캄보디아 한인회 사무국장입니다.



태그:#캄보디아, #박정연, #프놈펜 크라운 FC, #캄보디아 축구경기, #한캄 친선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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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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