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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연중 특별기획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그 네 번째 대상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집단들의 평화로운 합의'를 이루어낸 '사회협약의 나라' 네덜란드다. 미국식 소득의 양극화 없이 고용성장을 이룬 인간적인 모습의 사회협약모델을 심층취재해 소개한다. [편집자말]
글 : 조명신 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네덜란드편' 특별취재팀

1982년 11월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greement)' 체결 당시 네덜란드의 총리였던 루드 루버스(왼쪽)와 노총위원장이었던 빔 콕(오른쪽)
 1982년 11월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greement)' 체결 당시 네덜란드의 총리였던 루드 루버스(왼쪽)와 노총위원장이었던 빔 콕(오른쪽)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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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네덜란드는 병을 앓고 있었다. 최악의 경기침체로 고용시장이 얼어붙었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경제활동인구의 14%에 해당하는 80만 명이 실업자였다. 뿐만 아니라 조기 퇴직 등으로 시장에서 퇴출된 노동자 수도 거의 같은 규모였다. 이들을 모두 포함할 경우 실업률은 27%에 육박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유럽 복지국가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하는 '노동 없는 복지'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였다. 학자들은 인구 1백만 명 이상을 복지체제로 부양하는 이 나라를 두고 "비관적이고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비웃었다. 경제학 교과서는 '과도한 비용이 소모되고 지속적인 유지가 불가능한 복지정책'을 일컬어 '네덜란드 병'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여 년 뒤 네덜란드는 병을 치료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1997년에는 실업률을 EU 평균 실업률 11%보다도 낮은 6%까지 끌어내렸다. 당시 EU 회원국 가운데 실업률이 반감한 국가는 네덜란드뿐이었고 이는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드라마틱한 반전의 중심에는 노사정 대타협이 있다. 1982년 11월 체결된 '바세나르협약'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노조는 임금 동결을,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받아들였고, 정부는 재정 및 세제로 지원했다.

이를 두고 150년 전통의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파를 모두 절충한 정책 결합에 성공했고 이것은 경제성장 둔화와 실업증가, 재정위기 등으로 신음하는 유럽대륙의 복지국가 모델로부터 탈피하는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네덜란드 기적'의 초석 일군 바세나르협약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집단 간의 평화로운 합의'라는 기적을 이끌어낸 주역은 루드 루버스와 빔 콕이었다. 루드 루버스 네덜란드 총리가 이 드라마의 감독이었다면 노총위원장이었던 빔 콕은 주연배우였던 셈이다. 정치적 격동기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파탄 직전이던 1982년의 일이다.

서른세 살의 나이로 재무부 장관에 발탁된 루버스는 1982년 총선에서 승리한 반 아그트 총리가 갑자기 사임하자 총리직을 이어받았다. 그의 나이 마흔세 살, 젊고 의욕적이었던 루버스 신임 총리는 자신이 표방한 긴축정책에 맞춰 국가의 틀을 새로 짜려 했다.

재정 적자 축소, 기업의 수익성 회복, 임금인상 억제, 일자리 나누기 등을 골자로 하는 '새 정부 계획'을 내놓은 그는 노사가 타협하지 않으면 정부가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총리가 네덜란드 병을 치료하겠다고 나서자 노사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크리스 반 빈 당시 경영자연합회(VNO-NCW) 회장이 자신의 집으로 빔 콕 노총(FNV)위원장을 불러 마라톤협상을 한 결과 진통 끝에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삭감을 담은 대타협을 이뤄냈다. 당시 회동이 이뤄진 반 빈 회장의 집이 있었던 지명을 따 '바세나르협약'으로 이름 지어졌다.

이를 두고 국제노동기구(ILO)는 "이후 수많은 유럽 국가들에서 맺어진 사회협약의 기조를 결정한 획기적인 협약"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 협약을 통해 네덜란드에서는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노사가 상호 양보 협약을 체결하고 이를 성실히 실천해 나감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는 전통이 세워졌다.

네덜란드 노사정 협의체가 만들어낸 공존 해법

최연소 총리로 정권을 장악한 루버스는 1994년까지 세 번 연임에 성공하며 네덜란드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자리매김했다. 노조 지도자로 바세나르협약에 참여했던 빔 콕 역시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협약이 체결될 당시 임금동결안을 수용한 탓에 '배신자'라는 오명까지 얻었지만 루버스의 뒤를 이은 총리로서 위기 극복의 견인차 역할을 이어갔다.

이후 바세나르협약의 약효가 줄어들면서 불어닥친 불황의 그림자를 거둬낸 것도 빔 콕이었다. 정부지출 삭감, 감세, 시장경제 활성화, 규제 완화 등 루버스 정부보다 더욱 과감한 조치를 시행한 결과 국가 경제를 선순환 구조로 바꿔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네덜란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경제위기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모두 공존하는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 수준의 경제성장을 하면서도 소득분배구조는 유지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와는 다른 길을 걸어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네덜란드편' 특별취재팀 : 구영식 기자(팀장), 조명신 기자, 인수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자문)

덧붙이는 글 | [참고자료] <네덜란드의 기적> 엘레 피서르·안톤 헤이머레이크 지음, 최남호·최연우 옮김, 도서출판 따님, 2003



태그:#루드 루버스, #빔 콕,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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