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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생선회는 늦가을이 되어야 제맛이 난다
▲ 생선회 생선회는 늦가을이 되어야 제맛이 난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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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에 온다 해놓고
안개바람 속에 휘말려
별빛 이름 부르며
사라져간 그대여

그래도 오겠지, 돌아오겠지
손가락 꼽으며
꿈꾸듯 지난 세월

가장 낮은 세상에
가장 낮은 사람 되어
함께 가자던
그 숨결은
바다빛 그리움으로 멈춰서
등대 서글픈
황량한 겨울바다

이젠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할
저 너머 세상에서
이미 바다가 된 그대는
내 가슴에 언제까지
남아 있을까

- 이적, '바다가 된 그대에게' 모두

눈 저리도록 울긋불긋 곱게 물들던 단풍이 어느새 갈빛 낙엽이 되어 바람 한 점 없이도 툭툭 떨어져 뒹구는 11월 초순입니다. 저만치 바바리깃을 한껏 세운 채, 떨어지는 낙엽을 머리와 어깨에 맞으며 걸어가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가 된 그대가 생각 나 눈가가 촉촉해지곤 합니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서울 도심에 있는 작은 공원 어디선가 "가을날 / 비올롱의 / 서글픈 소리 / 하염없이 / 타는 마음 / 울려 주누나 // 종소리 / 가슴 막혀 / 창백한 얼굴 / 지나간 날 / 그리며 / 눈물 짓는다. // 쇠잔한 / 나의 신세 / 바람에 불려 / 이곳 저곳 / 휘날리는 / 낙엽이런가"라는 프랑스 시인 베를레느(1844~1896) '가을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이적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며, 사량도 앞바다가 된 그대가 이적 시인에게 날마다 보내주는 싱싱하고도 고소한 생선회를 맛나게 먹으며, 무작정 그대에게 생선회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가 바다가 된 그대에게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릅니다. 

행여 이 편지가 그대에게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대를 생각하는 이 마음만이라도 받아주소서. 행여 이 편지가 그대에게 닿는다면 끝까지 읽어주소서. 그대가 늦가을에 보내준 감칠맛 나는 생선회를 먹은 뒤부터 자꾸만 그 생선회가 그대처럼 여겨져 그 집을 자꾸만 그리워하는 제 마음이라 여기며.  

사량도 남해안에서도 진해만, 통영(사량도)만 생선이 가장 맛이 좋다
▲ 사량도 남해안에서도 진해만, 통영(사량도)만 생선이 가장 맛이 좋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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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 이 짙푸른 바다에서 전어, 놀래미, 꼬시락 등을 건져올린다
▲ 사량도 이 짙푸른 바다에서 전어, 놀래미, 꼬시락 등을 건져올린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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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서럽지도 않소? 생선회라도 한 점 먹으러 오시오

"이 쓸쓸한 늦가을에 혼자 있으니 서럽지도 않소? 생선회라도 한 점 먹으러 오시오. 요즈음 생선회가 가장 고소하고 맛이 좋을 때요."
"어디로 가야 돼요?"
"아, 지난 어머니 초상 끝내고 한번 왔지 않소?
"그때는 상여버스를 타고 간 탓에……."
"6호선 증산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증산교를 건너 왼쪽으로 틀어 불광천변을 따라 100m쯤 올라오면 간판이 보일 거요."

지난 10월 21일(화) 해질 무렵. 바다가 된 그대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는 이적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이 시인은 민통선 교회와 민족교회 목사를 하면서도 지난 7월 중순쯤 은평구 증산동 불광천변에 횟집까지 냈답니다. 그 수익금으로 교회에 나오는 가난한 아이들과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서라나 어쨌다나.

참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 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막막한 바다가 너무나 싫었던 이 시인이 아마 바다가 된 그대가 너무나 그리워 횟집을 연 것 같기도 하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탈출할 수 없는 바다, 바다뿐이었고 그 바다는 내겐 감옥의 담"이라고 말했던 이 시인도 이젠 지천명을 훌쩍 넘기다 보니 그 바다가 그리워진 게지요.        

이 시인은 그날 '고향바다에 대한 추억'이란 글을 은근슬쩍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깨알처럼 촘촘촘 박힌 그 글을 돋보기 안경을 쓰고 읽었습니다. 행여 바다가 된 그대가 누구인지, 바다가 된 그대와 시인 사이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왜 바다가 된 그대와 헤어지게 되었는지 등에 따른 이야기라도 있을까 해서요.

"나는 이 섬(사량도)으로부터의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것은 편지쓰기였다. 학생잡지에 등장하는 육지 아이들과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 편지를 통하여 친구에 대한 갈증을 풀어 나갔다… 나는 차츰 내부적으로 소나기에 등장하는 백초시 댁 손녀딸과 같은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으로 변해 갔다.

저 선창가 끝에서 혹은 자갈이 파도에 휩쓸리고 다니는 해변가에 앉아 육지를 향하여 망연자실 앉아 육지로 떠난 여객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혹시 그 여객선으로 백초시댁 손녀딸이 돌아올까 파도의 포말이 하얗게 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내 그리움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그리고 가슴 한 켠에 알 수 없는 섬 소년의 눈물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생선회 이적 시인이 꾸리는 생선횟집
▲ 생선회 이적 시인이 꾸리는 생선횟집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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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이 생선회는 내 고향 사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내 친척들이 낚시나 그물로 직접 건져 올려 서울로 보내는 것이오
▲ 생선회 이 생선회는 내 고향 사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내 친척들이 낚시나 그물로 직접 건져 올려 서울로 보내는 것이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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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 하면 늦가을 남해안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이 으뜸

"이 생선회는 내 고향 사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내 친척들이 낚시나 그물로 직접 건져 올려 서울로 보내는 것이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먹는 그런 생선회보다 훨씬 쫄깃쫄깃하고 고소할 거요……. 다른 집에 가서 생선회를 시키면 이것저것 잔뜩 갖다 주는데, 그런 걸 먹다 보면 생선회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지요."

이 시인이 꾸리고 있는 그 생선횟집의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른 생선횟집과는 달리 밑반찬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상추와 집에서 담근 된장, 집간장에 푼 연초록빛 고추냉이, 풋고추, 초고추장, 송송 썬 마늘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생선회 아래 미나리와 대파, 무채, 당근을 깔아놓았더군요.

그날, 바다가 된 그대가 보낸 전어, 놀래미, 꼬시락, 숭어회는 정말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감칠맛이 그만이었습니다. 특히 생선회가 흐물흐물 물컹거리지 않고 탱탱하게 쫄깃쫄깃 씹히는 그 느낌과 그 향과 맛이 참 좋았습니다. 마치 생선회 속에 짙푸른 사량도 앞바다가 된 그대가 '어서 와, 어서 와' 손짓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주 한 잔 홀짝거리며 가끔 찍어먹는 붉으죽죽한 삶은 문어도 쫀득쫀득 씹히는 구수한 깊은 맛이 정말 기막혔습니다. 갓 삶아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싱싱한 문어를 손님이 직접 부엌칼로 도마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맛! 그 살가운 맛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사량도 생선회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른 생선횟집과는 달리 밑반찬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 사량도 생선회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른 생선횟집과는 달리 밑반찬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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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 생선회 사량도에서 날아온 전어, 놀래미, 꼬시락, 숭어회는 정말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감칠맛이 그만이다.
▲ 사량도 생선회 사량도에서 날아온 전어, 놀래미, 꼬시락, 숭어회는 정말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감칠맛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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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밤, 살살 녹아내리는 생선회 먹으며 듣는 시 한 편

이 시인은 말하더군요. "생선회 하면 늦가을 남해안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이 최고"라고. 그날, 이 시인은 주방에서 생선회를 직접 썰고 배달까지 했습니다. 주방에 종업원이 한 명 있긴 있는데, 그날따라 몸이 아파 나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바다가 된 그대가 이 시인 곁에 있었다면 참 좋을 뻔 했습니다.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보내온 생선회와 이 시인이 가만가만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에 포옥 빠져 자정이 지나도록 소주를 2병이나 비우며 말했습니다. 저도 사량도에 가 본 적이 꼭 두 번 있다고. 한 번은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철모르고 갔었고, 또 한 번은 2년 앞,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갔었다고.   

저는 다시 소주 한 잔 홀짝 마신 뒤 싱싱한 전어회 한 점을 초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새콤달콤 고소하게 씹히는 늦가을 전어회는 입 속에서 살살 녹아내렸습니다. 그때 이 시인이 마치 오래 묵은 추억을 길어 올리듯이 나지막하게 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바다가 된 그대에게 보내는 생선회 편지를 마무리하듯이 그렇게.   

그 해 삼천포 앞바다

떠나도 아무도 잡지 않았다
갈 곳도 없으면서 부두 찬바람
잰걸음으로 맞으며
경복호 싼 판에 발을 내디딘 늦가을 아침
소녀는 마중 나와 몇 번 만나다 제 갈 길로 떠나고
한 발짝도 더 뗄 수 없는
배고픔보다 더 캄캄했던
그 해 가을 삼천포 앞바다엔
암담한 어둠만이
노을 바람에 선연했다

돌아가자 해도 돌아갈 곳도 없고
삼천포 시외버스 정류장이 덩그랗게 서있는
벌리 너머 더 이상은 넘어 설 땅이 없어
노산 등대에 퍼질러 앉아
한없이 바라보던 설움의 쪽빛 바다
어둠이 깃들면 바닷새도
어디론가 찾아드는데
밤바람 드세 지친다리 끌다
망연자실 서있던
고대구리 도깨비 시장도 서 있을 곳은 아니었다

은회색 불빛을 머금던 수은등이
가을 찌르라미 울음에 잦아들고
유신의 방아쇠가 70년대 마지막 가을에
함성되어 울려 퍼질 때도
삼천포 쪽빛 앞바다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성모님을 믿는 소녀만 기다렸다

소녀가 기다리다 떠난
삼천포 쪽빛 앞바다
떠나도 아무도 잡아줄 사람 없던
그 쪽빛 바다엔 아직도
망부가를 부르는 듯한
암담한 그 해 가을의
슬픔이 진하게 베어있다

- 이적, '귀어도' 모두

사량도 생선회 탱긑탱글 씹히는 고소한 맛이 끝내준다
▲ 사량도 생선회 탱긑탱글 씹히는 고소한 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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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문어 삶은 문어도 쫀득쫀득 씹히는 구수한 깊은 맛이 정말 기막히다
▲ 삶은 문어 삶은 문어도 쫀득쫀득 씹히는 구수한 깊은 맛이 정말 기막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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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의 시를 들으며 그제서야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인의 시를 새기며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매일매일 보내는 사량도 싱싱한 생선회가 그저 맛난 먹을거리만이 아니라 뭍을 향한 섬사람들의 오랜 꿈과 슬픔이 담겨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다가 된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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