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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조변석개(朝變夕改): 말이나 행동, 결정 따위를 수시로 바꾸는 것을 지칭하며 일관성이 없음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18대 총선 한나라당 동작을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인 정몽준씨의 태도가 바뀐 건 23시간만이었다.

 

정몽준 후보는 2일 오후 6시경 사당3동 유세현장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MBC 김아무개 기자의 볼을 톡톡 친 뒤 "성희롱 한 겁니다"라는 항의에도 별다른 대꾸 없이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오전까지도 "성희롱이 아니다"고 강변하던 정 후보는 오후 5시 여의도 MBC 경영센터를 찾아 "사과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로 백배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야말로 '조변석개'한 것이다.

 

비단 정치인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내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 후보는 무슨 이유에선지 말과 태도를 바꿨다.

 

그 23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전엔 "성희롱은 인정할 수 없다"

오후엔 "수치심 느끼게 한 점 사과"

 

2일 'MBC 여기자가 정몽준 후보의 성희롱 의혹을 제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정 후보 선거사무소에 전화를 건 것은 오전 7시20분경. 정 후보 측에서 '해명자료'를 보내온 건 그로부터 20분 후였다.

 

'4월 2일 동작을 후보연설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드리는 말씀'이란 해명자료에는 "어깨를 툭 치는 순간 본의 아니게 김 기자의 얼굴에 손이 닿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성희롱'이 아니라 '실수'라는 뜻이었다.

 

'의도치 않은 실수였는데, 언론 등이 상황을 부풀리고 있다'는 정 후보 측의 상황인식과 태도는 이날 오전 내내 지속됐다.

 

오전 10시 40분 같은 당 유정현(중랑갑) 후보의 지원 유세를 위해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으로 나온 정몽준 후보는 "어제 저녁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해명자료에 실린 내용이 공식 해명이냐"는 질문에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자의 팔을 붙들며 정 후보를 대신해 말을 한 공보 특보는 "표를 얻으러 나간 후보가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여기자의 볼을 의도적으로 만졌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하며, "성희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세 내내, 그리고 중랑구 주민을 만나 악수를 나누면서 정 후보는 '성희롱 논란'을 의식하지 않은 듯 만면에 웃음을 담고 있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2일 정오를 넘기면서부터였다.

 

오후 1시 여성단체들이 "성희롱 후보 정몽준은 사퇴하라"는 주장을 하며 사당1동 정몽준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터넷에선 관련 기사를 읽은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이 넘쳐났다. 그간 여러 차례 걸쳐 소속 의원의 '성추문'으로 곤욕을 겪었던 한나라당도 난처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타. MBC측에서 "정 후보의 공식사과가 없다면 사건이 발생한 날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할 수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동영상 공개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태도 바꿔? 

 

동영상이 공개돼 국민들이 사건 현장 상황을 낱낱이 보게 된다면 그것이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런 상황에서 "오후 4시 30분부터 지역 유권자들을 만날 것"이란 공보특보의 설명과 달리 '정몽준 후보가 5시에 사과의 말을 전하러 MBC로 간다'는 정보가 들려왔다.

 

오후 5시 3분. 오전과는 달리 침통한 표정으로 검은색 양복을 입고 MBC 경영센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정 후보는 사가정역에서와 똑같은 태도로 기자의 질문을 회피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입에 머금고 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는 것.

 

그가 직접 '성희롱 논란'에 관해 최초로 입을 연 것은 MBC 사과방문 직후 찾아간 한나라당사에서였다.

 

오후 6시 10분쯤 당사 기자실에서 진행된 회견에서 정 후보는 "왼손으로 김 기자의 오른쪽 뺨을 건드려서 김 기자가 모욕감·수치심을 느끼게 한 점에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말했다. 아침에 나온 해명자료에 대해서도 "내 말이 보좌진에게 잘못 전달됐다"면서 "수정하겠다"고 물러섰다.

 

MBC 경영센터와 한나라당사를 오가느라 예정된 시각인 6시보다 45분 가량 늦게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 앞 유세장에 나타난 정 후보.

 

아내 김영명씨 등과 함께 유세차량에 오른 정 후보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라며 유권자들에게 큰절을 했고, MBC 김 기자에게 사과한 사실을 알렸다. "동작구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4일 아침. 정 후보의 홈페이지엔 전날과 다른 내용의 해명자료가 올라있었고, "(성희롱이 아니라) 실수였다"는 "뺨을 두 번 건드렸다"로 바뀌어 있었다.

 

정몽준 후보 사과는 '악어의 눈물' 인가?

 

정 후보가 왜 당초의 태도를 바꿔 성희롱 사실을 사실상 인정하고 당사자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MBC 보도제작국의 한 관계자는 "결국 당시 영상이 확보돼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면서 "성희롱을 부인하던 중에 영상이 공개됐다면 선거가 코 앞인 상황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을 계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합민주당 측은 "사건의 본질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한 정 후보의 사과는 '악어의 눈물'에 불과하다"고 논평했다.

 

3일 밤 흑석동 유세현장을 지나던 한 20대 여성은 "요즘 같이 (아동성추행 문제 등이 사회문제인 상황에서 정 후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놀랍다"며 "사과가 과연 진실일까"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정몽준 후보가 김 기자에게 전한 사과가 여론이나 여성단체의 압박에 굴복하거나, 영상 공개의 파문을 피해가기 위한 수단이 아닌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말'만으로 증명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무심결에 표출된 여성이나 자신보다 약자에 대한 그의 태도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연 바뀌었는지, 동작을 유권자들은 반드시 그것을 확인하고 투표소에 갈 필요가 있다. 


태그:#정몽준,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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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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