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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국영의 여동생인 원빈 홍씨. 드라마 <이산>.
 홍국영의 여동생인 원빈 홍씨. 드라마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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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운 악역이 드라마 <이산>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홍국영의 누이동생인 원빈 홍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으뜸 원(元)자가 들어간, 좀 귀에 거슬리는 작호를 가진 원빈은 혜경궁 홍씨를 자기편으로 만들어놓고는, 성송연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걺은 물론이고 효의황후(고종 때 추존)와도 곧잘 충돌을 일으킨다.

의빈 성씨는 원빈 홍씨가 사망하고 나서 3년 뒤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만약 실제 역사 속에서 원빈이 누군가와 갈등을 일으켰다면 그 대상은 의빈보다는 효의황후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원빈은 효의황후의 리더십에 제동을 걺은 물론이고 그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원빈의 회임을 축하하기 위해 혜경궁이 주최한 연회에서, 원빈은 "원손을 못 낳으면 내 무슨 낯으로 살리요!"라며 효의황후를 약 올리기도 했다.

또 그는 자신의 상상임신을 진짜 임신처럼 가장하기 위해,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오빠 홍국영에게 "어의의 입을 막아달라"고 부탁한다. 여동생이 가엽기만 한 홍국영은 누이동생을 위해 그 좋은 머리를 또 회전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드라마 <이산>에서 갈등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위와 같이 드라마 <이산>에서 원빈 홍씨는 세도가 홍국영을 배경으로 오만불손한 행위를 저지르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드라마 속 원빈을 보면서 '남매는 용감했다'는 표현을 떠올린 시청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럼, 실제 역사 속의 원빈 홍씨는 궁궐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그의 궐내 태도는 어떠하였을까? 그는 정말로 악독한 후궁이었을까? "그 오빠에 그 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정말로 오만한 사람이었을까?

유감스럽게도, 원빈 홍씨의 궐내 생활태도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직접적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정조실록>이나 <순조실록>에서도 객관적인 사실관계만 기록했을 뿐 그의 궁중생활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평가를 남기지 않았다.

공식기록에선 찾기 힘든 원빈의 '생활기록부'

그렇다면, 공식 기록에서는 원빈 홍씨에 대해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는 걸까? 그의 궐내 생활은 그야말로 상상의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걸까?

공식 기록에서는 원빈의 '생활기록부'를 찾기가 힘들지만, 우리는 원빈에 대한 실록의 기록 태도로부터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원빈 홍씨에 관한 기록 자체가 매우 적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홍국영과 원빈 홍씨에 대한 차별적 기록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조실록>의 편찬자들은 원빈 홍씨에 관한 부분에서도 홍국영을 욕하면 욕했지 원빈의 생활 태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평가를 남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사망한 원빈에 대한 기록인 '원빈 홍씨 졸기'에서도 정작 본인인 원빈에 대해서는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고 홍국영에 대해서만 "그의 방자함이 날로 극심했다"는 평가를 남겼을 뿐이다.

이 점은 <순조실록>의 편찬자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혜경궁-효의황후-원빈 3자가 관련된 부분에서 <순조실록>은 "홍국영의 악이 무르익었을 적에 그 누이동생을 궁중에 들이고는 원빈이라고 일컬으면서 분수에 벗어나는 일을 넘보았다"라며 원빈 홍씨보다는 홍국영을 나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혜경궁·효의황후·원빈이 주어로 등장해야 할 부분에서 혜경궁·효의황후·홍국영이 주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후궁이 되어 입궁하는 원빈 홍씨. 그는 입궁 1년도 채 안 되어 사망한 비운의 여인이다. 드라마 <이산>.
 후궁이 되어 입궁하는 원빈 홍씨. 그는 입궁 1년도 채 안 되어 사망한 비운의 여인이다. 드라마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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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원빈 홍씨가 직접 관련된 부분에서마저 원빈보다는 홍국영을 비난하는 실록의 기록태도를 놓고 볼 때에, 우리는 원빈 홍씨가 궐내에서 그렇게 욕먹을 만한 행적을 남기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홍국영에 대해서는 한없이 부정적인 <정조실록>의 편찬자들. 그런 사람들이 홍국영의 누이동생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남기지 않았다. <순조실록>의 편찬자들 역시 홍국영이 원빈 홍씨를 궐에 들여놓고는 중전 효의황후를 괴롭혔다고만 했을 뿐, 정작 원빈 홍씨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평가를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홍국영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눈에도 원빈 홍씨가 오빠와 다른 사람으로 비쳐졌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원빈 홍씨마저 오빠의 세도를 믿고 방자하게 굴었다면, 실록 편찬자들은 분명히 원빈 홍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남겼을 것이다.

원빈, 홍국영과 달리 조심스런 궁 생활한 것 같아 

화완옹주 및 정후겸과 관련해서는 "그 어미에 그 아들"이라는 표현까지 남긴 <정조실록>이 홍국영 및 원빈 홍씨에 대해서만큼은 두 사람을 분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원빈 홍씨가 드라마에서처럼 방약무인했다기보다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원빈 홍씨가 "원빈은 오빠와 달리 매우 훌륭하구나"라는 감탄사를 자아낼 만큼의 덕행을 남기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랬다면, 실록 기록에서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 평가가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빈 홍씨는 특별히 이렇다 할 덕행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오빠에 그 누이"라는 비난이 나올 만큼 악독하게 굴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홍국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에, 원빈 홍씨란 존재는 '그 오빠 때문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비난하기도 힘든 그런 사람'으로 비쳐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원빈에 대한 기록에서까지 원빈을 욕하지 않고 그 대신 홍국영을 욕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이 홍국영과 달리 원빈 홍씨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궐내 생활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에, 우리는 두 남매의 성격이 상당히 판이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상당히 적극적인 데다가 경망스럽기까지 했던 오빠와 달리 그 누이동생은 매우 조심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세도 안 돼 세상을 떠난 원빈 홍씨

집안 식구 중에서 한 사람의 기가 너무 세면 다른 사람의 기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 다른 사람마저 똑같이 기가 세면 그 집안에서는 분란이 일어나기 쉽겠지만, 한 사람은 기가 세고 다른 한 사람은 기가 약해진다면 그 집안에서는 별다른 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홍국영 남매가 바로 그러했던 것 같다. 외모 좋고 말 잘하고 머리 좋은 오빠 홍국영은 그 야심이 하늘을 찔러 세상 사람들을 한없이 피곤하게 만든 데 반해, 누이동생은 상대적으로 꽤 조신해서 사람들의 비난을 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빈 홍씨가 그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실록 편찬자들도 원빈은 욕하지 못하고 홍국영만 욕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속 원빈 홍씨는 효의황후와 성송연을 괴롭히는 악녀로 묘사되고 있지만, 어쩌면 원빈 역시 홍국영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후궁이 되지 않고 그냥 밖에서 평범하게 여자의 인생을 살았더라면, 나이 이십도 안 되어 세상을 떠나는 불운을 겪지 않았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스무 살도 안 된 여자가 궐에 들어간 지 1년도 못 되어 병들어 죽은 데에는 오빠의 과도한 기대와 궁중 생활의 엄격함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홍국영은 중전이 자기 여동생을 죽였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어찌 보면 원빈 홍씨는 오빠 홍국영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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