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풍경 명봉사 마당 한복판에 오층돌탑이 하나 있지요. 그 돌탑 귀퉁이에 달아놓은 풍경이 꽤 멋스러웠답니다.

어제는 경북 예천 남서쪽에 있는 회룡포 마을을, 오늘(12월 24일)은 하루 동안에 예천 곳곳을 둘러보려고 마음먹었기에 시간을 잘 쪼개어 쓰고, 계획을 알차게 세워야했어요. 가장 먼저 가기로 한 곳이 북쪽에 있는 명봉사와 용문사랍니다.

 

아침 일찍 여관방을 빠져나와 명봉사까지 가는 버스를 탔어요. 지난번에 ‘산업곤충연구소’로 가던 길인 하리를 지나 손님이라고는 우리밖에 없는 시골버스를 타고 갑니다. 아스팔트로 길이 잘 깔려있었지만 땅모양을 그대로 살린 길이라 꼬불꼬불한 게 버스 타는 재미도 꽤 남달랐어요.

 

게다가 둘레 풍경은 시골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마음 같아서는 버스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가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녀볼 곳이 저마다 거리가 뚝뚝 떨어진 곳이라 시간이 빠듯하니 어쩔 수 없지요. 우리가 예천에 이렇게 자전거로 길을 터놨으니,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 여기고 아쉬운 마음 달래면서 차창 밖 풍경을 즐기면서 갑니다.

 

버스는 명봉사가 종점이었는데, 민박집 둘과 가게 하나가 서로 마주보며 어렴풋이 여기가 관광지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이른 아침인데다가 아직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조금은 썰렁했지만, 순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겅중겅중 뛰면서 개 임자인 듯 보이는 이와 산책을 하고 있어요.

 

명봉사 가는 길 명봉사까지 가는 숲길은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가 많아요.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하여 쉬러 오는 이들도 많다고 해요.

 

연못 한가운데에 보살님이 연못은 꽁꽁 얼었어요. 보살님 모습이 낯설지 않고 정겹게 보였답니다.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새로 끼워 맞추고 첫 들머리부터 오르막인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어요. 낯선 곳에서 만날 여러 가지 즐거운 일들을 기다리면서….

 

명봉사 가는 길은 겨울철인데도 숲길이 퍽 아늑하고 아름다웠어요. 소나무와 전나무, 느티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곳이라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하여 이곳 숲에서 쉬었다가 가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요. 숲길을 벗어나자 작은 연못이 나오고 그 가운데에 보살님(문수보살님인가? 그건 잘 모르겠음)이 고운 모습으로 서있는데, 퍽 정겹고 낯설지가 않았어요.

 

절집에 들어서자마자 온통 조용하던 세상을 큰 개 짖는 소리로 흔들어 깨웁니다. 여기도 어김없이 개가 우리를 먼저 반기네요.

 

“괜찮아. 우리 나쁜 사람 아니거든? 가만히 둘러보고 갈 테니까 너무 그러지마.”

 

언젠가 절집에서 사나운 개를 만나 혼쭐이 난 뒤로 개 소리만 들어도 덜컥 겁부터 나는데, 누군가가 그때 내가 쓴 글을 읽고 “개랑 대화를 하라!”고 했던가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말투와 웃는 얼굴로 얘기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짖어대기만 했어요. 쩝!

 

명봉사 무량수전 단청을 입힌지 그리 오래되어 뵈진 않았어요. 아마도 새로 지은 법당인 듯했어요.

 

명봉사 절집이 그리 크지는 않아요. 우리는 이런 곳이 더욱 좋더군요. 아늑한 멋이 깃든 절집이랍니다.
기왓장 돌탑 위에 얹어놓은 기왓장이에요. '침묵속에서 지혜가 자랍니다.'

 

 

성주 세종대왕 왕자태실에는 없었던 걸 여기서 보네!

 

명봉사 마당 위,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무량수전 곁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빗돌 두 개가 나란히 서있어요.

 

“아하! 이거구나. 자기야! 빨리 와봐! 이게 문종대왕 태실비야.”

 

무량수전 화려한 단청 문양과 공포를 부지런히 찍고 있는 남편을 불렀어요. 앞에는 ‘문종대왕태실비’라고 적혀있고, 뒤에는 ‘숭정기원후일백팔십을묘’라 새겨져있어요. 사실 나는 이 비문에 새긴 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조선 5대 임금인 문종대왕의 태실비를 1735년(영조11년)에 세웠다는 거라고 안내판이 따로 있어 알았어요.

 

얼마 앞서 성주에 있는 ‘세종대왕 왕자태실’에 갔을 때, 세종대왕의 아들인 왕자들의 태실이 그곳에 모셔져 있어 모두 봤는데, 문종대왕의 태실은 없었거든요. 그랬는데, 이곳 예천까지 와서 만났네요. 이 태실비는 일제강점기 때에 명봉사 법당 뒤 산봉우리에 묻혀있던 걸 찾아내어 여기에 다시 세웠다고 해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태실은 없고 태실비만 남아있었어요.

 

지난번에 성주 태실에 갔을 때, 세종대왕의 왕자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좋은 터에다가 따로 모셔두었다는 걸 보고난 뒤라 그런지 한낱 빗돌이지만 퍽 반갑고 정겨웠답니다.

 

문종대왕태실비와 명봉사사적비 무량수전 법당 곁에 나란히 서있는 빗돌 두 개. 그런데 두 빗돌이 생김새가 매우 비슷해요. 알고보니, 명봉사사적비도 태실비였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누구의 태실비일까?

 

사도세자 태실 비문을 깎아내고 절집 사적비문을 새겼다고?

 

문종대왕 태실비(경북유형문화재 187호)와 나란히 있는 빗돌, 바로 ‘명봉사사적비’예요. 그런데 희한하게 태실비와도 모양이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아니, 어찌 보면 이 사적비가 더 오래된 듯 보였어요. 처음엔 그저 이 절집을 세운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 있겠거니 하면서 봤답니다. 하기야 앞뒤로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자를 모조리 한문으로만 적어두었으니, 나 같은 사람은 알아보려고 해도 알 수 없지요. 또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나중에 예천에 다녀와서 자료를 찾아보고 알았는데, 이 ‘명봉사사적비’에는 아주 남다른 얘깃거리가 있었답니다. 바로 이 사적비는 그 옛날 조선후기 영조 임금의 아들, 그러니까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죽은 사도세자의 태실비였다고 해요.

 

‘어쩐지 문종대왕태실비와 그 모양과 생김새가 매우 닮았다했더니, 이것도 바로 태실비였구나!’

 

이 얘기도 일제강점기 때 일인데요. 그때 명봉사에 주지로 있던 스님이 사도세자의 태실비 비면을 깎아내고 거기다가 명봉사 사적을 기념하는 비문을 새겨 넣었다고 하네요. 이때, 이 일 때문에 크게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답니다. 나라 잃은 설움도 크고 깊은데, 왕실과 관련된 유적을 망가뜨리다니요? 어쩌면 일제가 저지른 몹쓸 짓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어요.

 

우리가 절집에 자주 찾다보니, 처음 절집을 세우고 그 뒤 이런저런 모진 일을 겪으면서 불타버리고 무너진 걸 또 다시 짓거나 새로 고쳐 세웠다는 기록을 참 많이 봐왔어요. 그 때마다 그 끄트머리에는 늘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때 망가진 것들이 많았어요. 글쎄, 내가 일제강점기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소중한 문화재마다 흠집을 낸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는 기록을 보면, 참 화가 많이 났지요.

 

그때 명봉사 주지스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니면 어떤 지시를 받아 이와 같은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문화유적을 망가뜨렸다는 건 매우 안타깝고 딱한 일이랍니다. 우리가 명봉사에 갔을 때에는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그저 ‘문종대왕태실비’를 본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쁜 마음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실을 알고 나니 매우 씁쓸했답니다.

 

문종대왕태실비(경북유형문화재 187호) 앞에는 '문종대왕태실비'라고 써있고, 뒤에는 ‘숭정기원후일백팔십을묘’라 새겨져있어요. 영조 임금 때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태실비도 일제강점기 때에 명봉사 뒤 산봉우리에서 찾아내어 이곳에 세운 거라고 하네요.

 

명봉사 사적비 아! 그런데 이게 본디 '사도세자 태실비'였다고 하네요. 이것 또한 일제강점기 때에 명봉사 주지 스님이 태실비면을 깎아내고 명봉사 사적을 새겨넣었다고 해서 말썽이 일었다고 해요. 그러고 보니, 둘 다 모양과 생김새가 매우 닮았어요.

 

명봉사를 벗어나와 이제는 그 곁으로 난 산길(임도)을 따라 올라갑니다. 이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고려시대 절집이고 꽤 크고 이름난 ‘소백산 용문사’가 나오지요. 여기 산길도 자전거를 타는 재미가 꽤 남달라요. 며칠 앞서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아직 산자락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어서 난생 처음으로 하얀 눈길에서 자전거를 타봤답니다. 더구나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라 한쪽은 탁 트여있어요. 양쪽으로 꽉 막혀있는 다른 산길에 견주어보면 경치가 매우 멋스러워요. 발아래 저 멀리 성냥갑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도 무척 정겹지요.

 

자! 이제는 용문사까지 냅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거기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눈덮인 산길 명봉사에서 용문사까지 가는 산길(임도)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어요. 우리는 이때 난생 처음으로 하얀 눈길에서 자전거를 타봤답니다.

덧붙이는 글 |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