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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정조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춘향전>에는 4명의 청춘 남녀가 등장한다. 성춘향·향단과 이몽룡·방자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 <춘향전>의 작가가 춘향이의 ‘서포터’는 향단이라고 부르면서도, 이몽룡의 ‘서포터’는 그냥 직책인 방자(房子)로만 불렀다는 점이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공익근무요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방자는 관에 소속된 노비일 수도 있고, 혹은 요역에 동원되어 관청에서 일정 기간 동안 번(番)을 서는 평민일 수도 있다. 방자가 하는 일은 주로 관청의 사환 역할이었다. 

그런데 고을 사또도 아닌, 사또의 아들 이몽룡이 대낮(방자의 근무시간)에 방자를 데리고 놀러 다니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방자를 춘향과의 연애사업을 위한 심부름꾼으로 이용했으니, 이것은 당시의 법적 관념으로 보아도 엄연히 불법적인 일이었다. 그런데도 <춘향전>의 작가는 이 상황을 매우 자연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이 점은 조선 후기에 국가 노역체계에 동원된 많은 사람들이 고을 수령이나 그 가족들의 사적 용무에 사용되는 예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춘향전>의 작가가 불법적인 상황을 자연스럽게 묘사한 것은 그것이 그만큼 관행적으로 행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을 수령과 가족들의 사적용무에 봉사한 사람들

이는 인민으로부터의 인적·물적 자원 충당을 기반으로 하는 국가 노역체계가 지방 단위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춘향전>의 작가가 ‘이몽룡은 사또의 아들’이라는 관념과 ‘사또의 아들이 자신의 연애사업을 위해 관청 방자를 이용할 수 있다’는 관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것을 보면, 당시의 지방 관아에서 이 같은 사적 노동이 관행적으로 묵인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춘향전>의 배경보다 조금 빠른 시기인 15세기의 명나라에서도 관청 요역에 동원된 인민들에게 사적 노동을 시키는 사례가 매우 비일비재했다.

<명청시대 사회경제사>에 실린 강릉대학교 사학과 김홍길 교수의 논문 ‘세역제도’에 따르면, 당시 명나라의 중앙 및 지방 관아에서는 잡무를 맡아보는 조예(皂隸), 감옥을 지키는 금자(禁子), 문을 지키는 문자(門子), 아문의 창고를 지키는 고자(庫子), 거마를 부리는 마부, 각 학교에서 교관의 시중을 드는 재부(齋夫), 지방에서 치안업무를 담당하는 궁병(弓兵) 등등이 요역에 의해 충원되었다. 명나라 국가권력은 재정을 아끼기 위해 일종의 ‘공익근무요원’들을 징발해서 이런 직무에 충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위 논문에 따르면, 명나라의 관청들에서는 이런 ‘공익근무요원’들을 정원 이상으로 충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사적 용무에 동원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예컨대, 명나라 정통 6년(1441)의 조예(皂隸) 정원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포정사에는 36명, 부(府)에는 20명, 주(州)에는 14명, 현(縣)에는 10명을 둘 수 있었다. 관청에서 잡무를 맡아본 조예는 조선으로 치면 방자에 해당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관청에서는 이 같은 정원을 무시하고 몇 십 명을 초과 징발하거나 심지어는 이삼백 명씩 초과 징발하는 사례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초과 충원된 사람들을 사적 용무에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들로부터 금품을 받아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명나라 때 사료나 <춘향전>에 나타나는 이 같은 불법행위는 국가의 노역체계를 근간에서부터 뒤흔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인민의 충성심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것이었다. 명나라의 경우에는 위와 같은 요역체계의 병폐가 결국에는 국가 멸망의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고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국가가 사용해야 할 노동력을 관료 혹은 관료의 측근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현상은 비단 과거의 역사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주요 병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바로 군대다. 군대 안에서도 특히 고급 장교들의 관사에서 그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물론 많은 양심적 군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고급 장교들과 그 측근(특히 가족)들이 이러한 병폐를 양산하고 있다.

사단장 관사 경계병들이 지킨 것은 '냉장고'?

필자가 근무한 적이 있는, 경기도 서북부에 있는 모 부대의 사단본부 영내에서 사단장 관사를 지키는 경계병들 중 일부는 ‘관사 울타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주로 ‘냉장고’를 지키는 일을 했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그들에게는 사단장 대신 ‘사모님’이 ‘상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실례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더라도, 군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다른 관공서들의 경우에는 언론이나 시민단체의 이목 때문에 공적 노동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기가 쉽지 않지만, 군대처럼 사회적 견제가 제대로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여전히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만약 <춘향전>의 작가가 오늘날의 한국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그는 아마 ‘방자’라는 표현 대신 ‘관사병’ ‘공익근무’ ‘방위병’ 등의 표현을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노동력을 국가에 헌납할 의무를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자연적 질서에서는 누구도 그런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현실상의 필요 때문에 국가에다가 세금도 내고 노동력(특히 국방의 의무)도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매우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또 매우 신중하고 제한적으로 국민의 노동력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이 국가에게 그런 권한을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몽룡처럼 혹은 일부 몰지각한 고급장교들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공공 노동력을 사적 용무에 이용한다면, 이는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체의식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는 공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이미지도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근무시간에 이몽룡의 명을 받고 성춘향의 주변이나 맴도는 방자가 아니라, 군수님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관아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오후 5시만 되면 ‘칼퇴근’하는 그런 방자를 그린 미래형 <춘향전>은 나오지 않을까? 한국인들이 새로운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다 함께 노력한다면, 미래형 <춘향전>에서는 방자가 “도령님, 시험공부나 하시죠”라며 이몽룡의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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