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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전쟁>
 <사랑과전쟁>
ⓒ 사랑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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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8년 동안 400회를 넘긴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하면 왠지 선정성이라는 단어를 연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성(性)과의 전쟁일 만큼 자극적인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점 때문에 우호적이었던 방송관련 시민단체가 적(?)으로 돌아서기도 했는지 모른다. 이 때문에 이혼으로 치닫는 전쟁은 결국 성문제 때문이라는 도식을 낳게도 했다. 성매매, 성폭행, 성희롱, 간통, 근친, 스와핑, 잠자리 횟수와 부부갈등, 성도착증, 성인 나이트클럽 부킹, 총각파티, 몰래카메라, 밀회, 옛 애인과 동침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3류 잡지에나 나올듯한 일들이 공중파 방송에서 드라마로 극화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존재했다. 이럴 때 불륜의 아이디어 뱅크, 불륜의 정석, 불륜의 백과사전이라고 할만하다. 이러한 성적인 요소 때문에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라는 지적도 있었다.

성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성인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한국에서 <사랑과 전쟁>은 성인드라마의 전형일터다. 이런 성인드라마에 음주장면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나 매년 음주장면이 최고 많은 드라마에 뽑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 때문에 평균 시청률 18%대를 유지해온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불륜은 각인 효과가 강하기 때문에 몇 번 방영된 것이 매번 불륜이 나온 것으로 인식되는 심리적 경향도 있다. 성문제보다 의미 있는 것들이 더 많이 다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혼수문제, 게임․주식중독, 기러기아빠, 매 맞는 아내, 성형중독, 고부갈등, 여성의 경제력, 치매 걸린 아내 등이 대표적이다.

선정성과 말초적 자극성은 있고 클리닉 없는 프로그램이라는 딱지가 붙기도 하지만 스타급 연기자가 아닌 조연급 연기자만으로 시청률이 제법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KBS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의 인기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찌 보면 간단하다. 시청자 특히 부부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부의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심리에 적절하게 부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점은 미혼자나 이혼자에게도 통하는 요소다. 다가오는 결혼에 대한 잠재적 불안심리이거나 지나간 결혼 생활에 대한 사후 검토 차원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랑과 전쟁>의 부부, 혹은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문제 있는 이들이다. 그들의 문제요소들은 모두 이혼갈등으로 이어진다.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시청자라면 어떠한 상황, 요소가 이혼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눈여겨 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자기반성이나 성찰도 하게 된다. <사랑과 전쟁>은 예방주사와 같을 수 있겠다.

인생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사랑하는 법, 결혼 생활을 잘하는 법을 교과서나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부부생활에서도 경쟁에서 이기라고 가르칠법한 게 제도 교육이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은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인지 모른다.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을 해결해나가야 하는지 교육은 말이 없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사안들에 대해 <사랑과 전쟁>은 구체적인 사례별로 압축해서 영상으로 보여준다. 제도 교육의 허점과 우리 사회의 무관심 사이에서 <사랑과 전쟁>은 영상 결혼생활 상담소의 기능을 한다.

<사랑과 전쟁>은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 <사랑과 전쟁>에 등장하는 이들은 자기의 결혼 생활과 비교의 대상이 된다. 자신의 이야기라 맞장구칠 수도 있고, 제 발 저리기도 한다. 일종의 준거점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드라마는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적이 되기도 한다. 현실에 바탕을 두었지만 현실적이지 않아 실제적이지 않는 것이다. 하이퍼 리얼리티는 비현실적이 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극단적 현실로 치달을수록 자신들은 아직 문제가 없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기 마련이다. 우리보다 더한 부부들도 있구나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웬만한 보통 커플들의 문제는 드라마상의 부부가 가진 문제점에는 미치지 못하고 만다.

아직까지 일반적으로 부부 생활은 기나긴 여정이다. 멀고먼 길에 나선 항해는 언제나 처음 가는 길이다. 따라서 불안한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끊임없는 선택과 대안가능성 앞에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불안과 번민의 와중에 불행한 극단의 사례는 안온한 심리적 위안감을 준다. 그 위안감이 <사랑과 전쟁>의 시청률을 이끌어낸 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혼율이 증가하는 사회, 아니 세계 1위의 이혼국가라는 보도가 나올 때마다 <사랑과 전쟁>의 생명은 더 길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 효과는 단 한 가지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는 전제이다. 만약 실제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렇게 눈여겨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혹은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현실성을 구현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과 전쟁>의 리얼리티 때문에 이혼과 결혼 문제만을 다룬 미니시리즈나 단막극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웬만해서는 <사랑과 전쟁>의 리얼함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감은 거친 면이 많아야 생명력이 있다. 이 때문에 코믹하거나 환타지 요소를 강화해야 그나마 버틸 재간이 생겼다. 만약 <사랑과 전쟁>이 사실에 모두 기초하고 있다면 “현실이 어떠한 픽션(꾸며낸 이야기)보다도 상상을 뛰어 넘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게 만든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 아닌가.

소재의 리얼리티가 장점으로 꼽히지만 3분의 2정도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사실이라고만 전제한다. 보도 기사가 사실을 전제로 하지만 얼마나 허구적인 경우가 많은가. 많은 상황이 특수한 현실이라 일반인들에게 일어나지 않으므로 허구성은 탄로날 가능성이 없이 센세이션만 일으킬 수 있다. 물론 드라마는 성공한 게 된다.

<사랑과 전쟁>은 리얼리티를 강조해야 하기 때문에 잘 알려진 배우일수록 허구라는 사실을 강하게 만든다. 따라서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일수록 각광 받는다. 재연배우의 영역을 확실하게 확인시킨 것이 <사랑과 전쟁>인 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랑과 전쟁>의 인기 덕에 잘 알려질수록 배우는 배제될 가능성이 많아진다. 각인이나 낙인효과도 발생해 다른 드라마 영역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사랑과 전쟁>의 테두리에 갇힐 가능성도 많다. 이혼녀, 불륜녀의 딱지가 붙기 때문이다. 이혼해야 사는 여자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유지현, 이시윤, 김예령, 김혜옥 등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낯선 경계인이다.

<사랑과 전쟁>의 공로는 연애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생활 이야기에 대한 담론을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중요성에 비해 부부, 결혼 생활은 단지 친구들끼리 사석에서 나누는 정도에 머물렀다. 한국의 일상 문화에서 카운슬러를 통해 상담을 받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도 차이의 문제이겠지만 다른 사람, 부부의 사생활에 관음증 심리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랑과 전쟁은 이러한 은밀 속에 갇힌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양지로 꺼냈다. 공론의 장으로 부부 결혼 생활을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저렇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깨달음이 일어나면 <사랑과 전쟁>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일종의 특화 시장 전략의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개 드라마에서 부부 생활은 피상적이거나 다른 가족들의 이야기에 묻혀버리고 만다. 하지만 <사랑과 전쟁>은 부부생활을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따라서 좁지만 넓은 포지셔닝 전략이었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기도 하다.
시청자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배심원의 판결은 또 하나의 기준 역할을 하면서 동시대 한국인들의 상식을 확인한다. 쌍방향 소통의 차원에서 소재는 많은 부분 시청자의 사연에서 얻기도 하고 배심원 판결도 시청자가 한다. 드라마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상품을 주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자찬은 가볍지만 진중한 의미를 준다.

소통의 차원에서 보자면 솔루션 프로그램의 개가라고도 볼 수 있다. 기존 솔루션 프로그램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한계는 전문가의 견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획일적인 해법의 강요 문제였다. 물론 공존의 룰, 가정을 지키기 위한 원칙의 정립이 지향점은 같다. 이런 면에서는 보수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 같은 보수성은 공중파 방송이라는 면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닐 것이다.

예컨대, 일부에서는 법원 조정위원들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즉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기껏 하는 일이란 4주 후에 보자는 식의 간단한 말뿐이라며 전문적인 조언이나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랑과 전쟁>의 공로는 그 하는 일이 없음에 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 개입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때가 많다. 임상심리에서도 의사가 완벽한 멘토링을 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점에서 <사랑과 전쟁>은 시청자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만든다. 잘못하면 어줍지 않은 전문가들의 말보다 훨씬 가슴에 와 닿는 담론들이 시청자 게시판에 오가는 것은 <사랑과 전쟁>이 만들어낸 담론 소통의 효과다. 이혼여부에 대한 판단을 통해 우리시대의 사랑과 부부 그리고 가족관계에 대한 성찰들을 얼마나 이끌어내는가가 중요하며 전문가의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부차적이다. 스스로 느껴서 행동하도록 만들면 최상의 해법이 된다.

가슴에 맺힌 것을 털어 놓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있다. <사랑과 전쟁>을 보거나 보고나서 이루어지는 시청자들의 대화는 오히려 큰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과 전쟁>이 매우 절대적 효과를 낳는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른 대안 프로가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이다.

또한 솔루션 프로의 요소를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랑과 전쟁>은 드라마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을 바꾼 드라마이기도 하다. 다만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유용성을 주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현실적 유용성이 있기 때문인지 하나의 엿보기 심리 차원에만 머물고 마는지 따져보아야 하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드라마에 미친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드라마의 모든 소재가 <사랑과 전쟁>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사랑과 전쟁>에 드라마의 모든 소재가 들어 있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함의도 지니고 있다. 1999년 10월 22일 첫 선을 보인 뒤 한국 드라마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는 내용들이 <사랑과 전쟁>에 모두 들어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삼각관계, 불륜-외도, 이혼, 혈연주의, 출생의 비밀 등등을 떠 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좋게 말한다면, 부부갈등 아니 가족 갈등의 모든 소재들이 <사랑과 전쟁>에 담겨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부부 갈등 혹은 이혼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때문인지 다른 드라마에서 차용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MBC <앞집 여자>나 KBS <애정의 조건>은 사랑과 전쟁에서 소재를 얻었다는 혐의(?)를 받았다. <사랑과 전쟁>에서 방영되었던 내용과 겹치는 설정이 이들 드라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사 드라마, 재연드라마라는 사이비(?)가 원조 드라마의 뿌리가 되는 역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오류일 수 있다. 독특한 형식면에서 보자면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전쟁>이 꾸준히 주목을 받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 독특하고도 모호한 형식이다. 드라마라고 보기에는 문제의식이 강하고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열린 구조이며 드라마라고 보기에는 리얼리티가 강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라는 면에서 재연 다큐라고 보기에도 모호하다. 논픽션도 픽션도 아닌 그 경계의 어름에 있다. <사랑과 전쟁>은 이른바 경계성 콘텐츠(Borderline contents)다. 그 경계선은 집과 집 사이, 기혼자와 기혼자사이에 있어서 일종의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전문직 드라마가 아니라 전문 테마 드라마의 입지를 굳혔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랑보다는 이혼이라는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8년 동안 매주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왔기 때문이다. <사랑과 전쟁>의 시청률은 지속성의 힘일 수도 있다.

<사랑과 전쟁>에 시청자들이 당연하게 기대하는 바가 형성되었고, 매주 그 기대치를 어느 정도 채워준다. 그 기대치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 변화를 주기 때문에 변화하는 대중의 기호에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 더구나 드라마의 시청 층이 30-40대일 때 이혼은 그들에게 기대 충족의 큰 요소가 된다. 또한 가족 갈등보다 개인주의적인 갈등이 증가하는 상황의 반영은 중요해 보인다.

단순, 간결, 명확성은 <사랑과 전쟁>의 장점이다. 한 가지 내러티브와 주제 상황, 하나의 인물 갈등 구도는 매주 완결되어 맺는다. 명확한 상황과 캐릭터와 관련 여러 입장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장점은 단점이 된다.

<사랑과 전쟁>의 인물은 중간이 없다. 아주 착하거나 아주 악하거나 아주 문제적이거나 문제가 없거나. 어디 사람이 그럴까. 평면적인 인물형에 고전적 전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권리가 시청자에게도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내레이션이나 자막으로 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의 적시가 왜 필요할까? 왜냐하면 시청자들은 실제 자신들의 삶과 비추고 견주어 부부 혹은 가족의 앞날을 가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적인 구성을 위해서 지나치게 사안을 단순화하거나 이분법적인 구도를 즐겨 사용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할 수 있다. <사랑과 전쟁>에는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반드시 등장한다. 대개 선과 악이라는 명확성을 통해 시청자의 주목을 끈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이러한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는 암묵적인 전제를 통해 교묘하게 시청자들을 속이는(?) 행위가 된다. 현실은 그렇게 명확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심리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상황의 지나친 단순화는 장애요소가 된다. 세상에 딱 부러지게 요약할 수 있는 사안이 얼마니 될까? 한 시간 안에 그 수십 개월 혹은 몇 년에 걸친 상황과 애환, 갈등이 반영될 수 있을까? 그 상처의 치유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특수한 사례일수록 간단화의 문제점이 드러날 가능성이 없으므로 더욱 선호된다. 더욱 일반적인 소재보다는 특수한 사례를 선택할 여지는 더욱 강해진다.

이런 차원에서 <사랑과 전쟁>이 장수 프로그램이 될수록 소재 고갈의 딜레마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아무리 주목을 받는다 해도 트랜스젠더나 씨받이 같은 소재들이 지속적일지는 알 수 없다. 소재주의 차원에 머물 여지는 언제나 방송에 존재하기 때문이고 이는 더욱 <사랑과 전쟁>이 장수할수록 강화될 수밖에 없다. 갈수록 특이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를 택할 여지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황당하고 엽기적인 소재라는 비판은 이때 쏟아지기 마련이다. 2001~2002년에는 30%, 2006년까지 20%대 최근에는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더욱 모색이 필요한 시점인 듯싶다.

외국인(이주민)여성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는 것은 다문화가정 차원에서 하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적잖은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언제나 잔존한다. 이성애 혹은 혈족 중심의 가족보다는 영화 <가족의 탄생>과 같은 범주까지 확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한국사회의 인식단계와 발맞추어 갈 문제이기는 하다.

드라마가 대리만족물일 뿐이라면 <사랑과 전쟁>은 이혼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침서다. 이혼 후의 현실을 더욱 부각할수록 더욱 그렇다. 어떻게 보면 <사랑과 전쟁>의 상황은 부부사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관계의 맺고 풀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존의 룰은 결국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한다. '사랑과 전쟁'을 '관계와 전쟁'으로 바꾸어야하는지 모른다.

<사랑과 전쟁>은 '문제'에서 탄생해서 성장했다. 결국 발목을 잡을 것도 그 '문제'일 것이다. 문제가 없거나 문제적이지 않으면 사랑과 전쟁의 생명력은 떨어진다. 끊임없이 문제 상황을 설정해 내야 한다. 한편으로 문제적 진단은 그 대상에 대한 선입관을 낳는다.

<사랑과 전쟁>을 통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의 형성은 여전히 우려되는 점이다. 부부의 생활은 문제 덩어리의 삶인가. 아무리 예방주사라지만 그것조차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은 있듯이 결혼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심, 결혼생활 염려증을 만들어내지 않을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부생활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양하고 미세해지는 가치관과 그 가치관이 부딪히는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갈수록 갈등상황은 명확하게 드러나는 문제점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다. 미묘하고 복잡하고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많다. 그만큼 가치관의 변화가 크고 그 미세한 차이들에 따른 갈등 상황도 분명 다종하고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것을 <사랑과 전쟁>이 다루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미세한 가치 판단과 심리묘사는 <사랑과 전쟁>의 방식으로는 그려내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자가 그것을 감내할 여력이 되는지 되묻게도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것은 과연 헤어진 그들이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다. 거꾸로 헤어지지 않았는데 잘 사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여전하다. <사랑과 전쟁>의 목적은 그것에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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