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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 샘터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는 웃음을 해설하는 책이다. 어떤 웃음을? '조선시대 우스개와 한국인의 유머'란 부제를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우리 조상들의 삶 속에 진득하게 녹아있는, 끈끈한 이런저런 웃음들이다. 그냥 재미있게 웃고 깔깔 웃고 말면 되지 어떻게 웃음을 해설한다지?

격식과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시대에 유머를 즐긴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왜 우스개를 즐겼던 것일까? 우스개들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생겨났을까? 조상들이 남긴 우스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들은 조상들이 남긴 우스개를 왜 알아야만 할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대략의 주제들이다.

아무래도 사흘내리 굶을지언정 남에게 손 벌리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던 양반들이 웃음을 즐겼을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양반, 대학자들이 농담 따먹기를 예사로 즐기고 있다. 그 사람들 중 이항복과 권율, 강희맹과 서거정의 이름이 내게는 낯익다.

이들은 <태평환화골계전><필원잡기><촌담해이>와 같은 우스개집을 편찬하기도 하고 서로 서문을 써주고 있다. 특히 서거정의 외가 쪽 사람 중에는 ‘채수’가 있는데 채수는 금서가 된 귀신소설 <설공찬전>의 저자이기도 하다. 강희맹 역시 이름난 사람들과 끈끈한 혈연, 지연의 관계를 맺어 학문과 농담을 함께 즐기고 있다.

막역한 사이였던 이들은 틈만 나면 우스개를 즐겼다. 이중, 이항복은 '농담의 천자'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우스개를 즐겼는데, 그의 장인 권율과 마주앉아 틈만 나면 함께 빈정대고 희롱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이 책에서 만난 우스개 하나.

잠을 막는 방패였던 옛날 우스개들, 그 속을 맘껏 거닐다

무더운 여름날 입궐하게 된 이항복이 장인에게 "오늘은 날씨가 무척 무더우니 견디시기 힘들 것이라. 버선을 벗고 신을 신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위해주는 그 마음에 감복한 권율은 그리했다. 왕 앞에 대신들과 한참이나 있던 이항복이 나가 간청하기를 "날씨가 몹시 더워 나이 든 재상들이 의관을 갖추고 있기 힘들 것인 즉, 신만이라도 벗게 해주는 게 어떤가"하고 간곡한 주청을 한다.

선조는 일리 있는 말이라고 하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리하여 영의정부터 차례로 신을 벗는다. 하지만 권율만큼은 쩔쩔매면서 신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조는 권율이 차마 임금 앞에 신을 벗지 못하는 것이라며 내관에게 신을 벗겨드리라고 명을 내린다. 막상 내관이 신을 벗기자 맨발이 드러났다.

"사위 이항복에게 속아 이리되었사옵니다."

이 말에 선조도, 많은 대신들도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고 한다.

@BRI@하늘같은 왕과 체면을 앞세우는 여러 대신들 앞에 장인을 골탕 먹인 사위 이항복은 과연 '웃음의 천자'답게 이 책에서 만나는 여러 우스개들 속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이항복의 장난기와 재치는 워낙 명성이 높았으니 선조도, 대신들도 이전에 자신들이 속은 것처럼 속아버린 권율을 보면서 배꼽을 쥐고 웃었겠다. 재미있는 한 장면이다. 신을 벗어야 할 만큼 무더운 그날의 무더위를 이항복의 재치에 배꼽 쥐며 웃는 순간 시원하게 날렸음직하다.

이항복이 누구고 권율이 누구인가? 재치만점 양반대감으로 아이들도 잘 아는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 이항복은 그렇다 치자. 그의 장인 권율이 누구인가. 권율은 임진왜란 도원수로 육전을 총지휘했던 인물이다. 싸움터에서 용맹스러운 장군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권율을 이렇게 만나는 뜻밖의 기쁨이랄까?

강희맹, 서거정은 또 누구인가. 이들은 대문장가로 후손들에게 알려진 학자들이다. 그래서 얼핏 꼬장꼬장한 선비를 떠올리기 쉽다. 정직한 정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은 세종- 성종조에 총애를 받았고 서거정은 집현전 학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대감들이 다른 사람들과 나눈 우스개들 속에는 남이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며 '사흘 동안 똥비를 내려주소서'라며 하늘을 향하여 장난을 공모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튼 의외다.

유명한 문장가들이 남긴 우스개집(우스개모음집)을 통하여 만나는 우리 옛 조상들의 웃음이 그야말로 의외였고 다시 보게 되는 조상들의 면면이 실로 살갑다. 그런데 이 근엄한 선비들은 왜 우스개를 즐겼을까?

"우스개집의 서문에는 우스개의 다양한 쓸모를 언급하고 있다. 풍습이나 역사를 이해하거나, 세상살이의 근심을 풀어내거나,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아 잘못을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등. 그러나 대부분의 우스개에는 우스개가 졸음을 깨우는 효과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 효과는 우스개집의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잠을 막는 방패'라는 의미의 <어면순(禦眠循)>,'잠을 막는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의 <어수신화(禦睡新話)>,'잠을 깨우는 기록'이란 뜻의 <파수록(破睡錄)>, 역시나 잠을 깨는 잡다한 이야기라는 의미의 <성수패설(醒睡稗鐸)>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잠을 쫒는다는 것을 내세워 제목을 붙였을까?-책속에서


한국인의 유머, 그 원형인 옛날 우스개들 쉽게 해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웃기는 세상'이란 표현이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순수하게 웃기는 기분 좋은 웃음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즉 어이없고 이해할 수 없거나 분노하고 억울한 경우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사람들은 웃기는 세상과 어이없는 사람을 가지고 우스개를 만들어 낸다. 요즘처럼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집값을 가지고 만들 수도 있다. 자국민들의 비만이 염려스러워 전이지방 섭취는 금하면서 타 국민들을 죽음의 늪으로 밀어 넣는 광우병소에 대해선 수입 압박을 하는 미국을 조롱하는 우스개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이렇게 만들어진 우스개들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특별한 설명 없이 이해하고 공감하기 쉽다. 하지만 100년, 200년이 지난 훗날 사람들은 지금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고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스개에는 그냥 웃고 마는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삶과 역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우스개들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를 들어 저자는 옛날 속을 활보하며 만나는 우스개속의 그 시대적 배경과 풍습, 제도, 경제, 정치, 인맥 등을 우리들에게 유머와 곁들여 설명한다.

웃기는 코미디언이 웃자고 한 한마디가 유행을 주도하고 웃음치료사까지 등장, 잘 웃기는 사람이 각광받는 웃음전성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의미가 남다른 책읽기였다.

이 책에는 선비들, 즉 한문을 깨우친 사람들만 즐겼던 우스개만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옛사람들의 우스개만 소개되는 것도 아니다. 이름 없는 백성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우스개와 오늘날의 우스개도 함께 아울러 소개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조상들이 남긴 많은 풍성한 저서들을 맘껏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청소년기에 야사선집 12권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뜻밖에 이 책에서 낯익은 야사와 음담패설 몇 개를 만났다. 세상을 조롱한 야사든, 남녀 간의 끈끈하고 은밀한 성을 풍자한 음담패설이든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맛, 그 이해의 깊이는 특별했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류정월지음/샘터.2006년 10월/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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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