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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흥숙 그림 김수자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개량 한옥 같은 것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제가 자던 방과 부모님의 방 사이엔 요즘의 거실이라 할 수 있는 대청이 있었고 대청과 마당 사이엔 격자 유리문이 있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 서서 오른쪽으로 45도쯤 휜 길을 따라 뒤 안으로 가다 보면, 꽃밭과 광(요즘의 창고) 사이의 좁은 골목 왼쪽에 그 작은 판자 집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화장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그야말로 변을 보는 곳, 즉 '변소'였으니까요. 식구들이 기거하던 본채와 독립된 건물이었으니 아무리 작아도 집이었지요. 그땐 어느 집에나 그런 '작은 집'이 있어서 화장실을 간다고 할 때는 주로 "작은 집에 간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 나를 만난 그 시절의 작은 집
ⓒ 김수자
작은 집 양편에는 나무들이 있었고 그 뒤편은 바로 동네 골목이었습니다. 가끔 작은 집에 쭈그리고 앉아 일을 볼 때 바로 등 뒤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수런수런 수작을 꾸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럴 땐 행여 비밀을 엿들었다고 해코지하지나 않을까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다리가 저릴 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한참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살던 초등학교 4,5학년 때는 그곳에 갈 때도 책을 들고 가 어스름 속에서 책을 읽었고, 사는 게 뭘까 막 싹트기 시작한 십대의 고뇌와 두통도 그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밤에 작은 집에 가려면 이만저만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전기가 귀하던 시절이라 마당을 비추는 건 달빛과 별빛 뿐이었습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밤 그곳엘 가려면 그때까지 읽고 들었던 무서운 얘기들이 모두 머리 속을 맴돌아 겨우 몇 미터 거리가 몇 십 리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그 안에 들어 앉으면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온 몸이 막대기처럼 굳곤 했습니다.

언니 체면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동생 하나를 꼬드겨 문 앞에 세워놓고 "거기 있니? 문 앞에 있어?" 묻고 또 물었습니다. 동생들이 작은 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혼자 가야 할 때는 두려움을 떨치려고 가면서부터 올 때까지 알고 있는 모든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이래저래 작은 집은 모든 허세와 껍질을 다 벗어버린 나를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변소가 집안으로 들어와 화장실이 된 후엔 그곳엘 가는 일이 조금도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화장실엔 두어 권의 책을 꽂아 둘 수 있게 만든 책꽂이까지 붙박이가 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방'의 둥근 의자 위에 나날이 둥글어져 가는 몸을 얹어 놓고 <이상 李箱>을 읽으며 천재의 권태와 막막함을 생각합니다.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를 읽으면서는 티베트와 달라이 라마의 슬픔에 공감하고,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을 때는 너무 일찍 떠난 시인 기형도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합니다.

며칠 전엔 미셸 투르니에 때문에 소리 내어 웃고 말았습니다. <짧은 글 긴 침묵 Petites Proses>의 '밑바닥 세계'에 나오는 정화조 얘기 때문이었지요. 혼자 살고 있는 집의 화장실을 이웃 아이들이 자주 이용하는데 그걸 가만 두는 이유는 그 아이들이 자기 집의 "분식성 지하식인귀(糞食性 地下食人鬼)" 즉 지하의 똥 먹는 귀신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주어서라고 하더군요. 혼자 소식하며 '불모의 삶'을 살다 보니 그로 인한 불안감이 가끔 변비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정화조에서 '원망 섞인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 같다면서요.

작은 집은 이제 작은 방이 되었지만 그곳은 여전히 벗은 나를 만나는 곳입니다. 가끔 밝고 조용한 작은 방에서 어둡고 무섭던 작은 집을 생각합니다. 그 곳으로의 짧은 여행이 수반하던 공포와 그것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던 어릴 적 제 모습, 귀찮아하면서도 동행해주던 아우들, 그곳을 오가며 읊조리던 노래들, 그 모든 것들은 어느새 제 안에 들어 앉아 또 하나의 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상은 비밀이 많아야 부자라고 했지만 저는 추억이 많아야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집은 참 작았지만 그곳이 만들어준 추억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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