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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당 순국 72주기 추모식에 추모사를 드리는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 박도

물거품이 된 고종의 해외 망명

▲ 독립운동 당시의 우당 이회영
ⓒ 우당기념관
신흥무관학교가 광화의 합니하로 이주하여 전성기를 구가하던 1913년 무렵, 이회영은 동지 맹보순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일제가 이회영을 비롯하여 이시영, 이동녕, 장유순, 김형선 등을 체포 또는 암살할 목적으로 형사대를 만주로 파견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지 이상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피신처로 권했으나 오히려 이회영은 고국 행이었다. 피신과 아울러 독립자금을 모금코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귀국 후 잠행하던 이회영은 두 차례나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평소 몸에 밴 철저한 보안과 천우신조로 무사할 수 있었다.

아들 규학이 대원군 사위 조정구의 따님 조계진과 혼인하는 계기로, 이회영은 고종황제를 북경으로 해외 망명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회영은 고종 시종 이교영을 통해 의사를 타진하자, 황제께서 선뜻 해외 망명에 승낙하였다.

1918년 말 무렵, 일제의 작위를 거부한 민영달이 내놓은 5만원의 거금으로 이회영은 아우 시영에게 전달하여 북경에다가 고종이 거처할 행궁을 마련하여 수리케 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구체화되던 과정에 고종이 예기치 못하게 급서해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고종의 급서는 의문점이 많았다. 당시 고종의 망명을 준비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망명정보가 누설되어 일제가 고종을 독살한 것으로 믿고 있다.

▲ 고종황제의 망명을 대비하여 북경에 마련한 황제의 임시 거처(궁내부대신 월파 조정구 대감이 지키고 있다)
ⓒ 우당기념관
역사의 가정은 부질없지만, 만일 이회영의 계획대로 고종이 해외로 망명, 망명정부를 세워서 대일 독립전을 선포하였다면 모든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기에 그 폭발력은 엄청났을 것이다.

또한 외교적으로도 황제가 직접 망명정부를 세웠다면 조선이 자발적으로 합방했다는 일본의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새로운 정세가 조성되었을 것이다.

우당 거처는 독립 운동가의 사랑방

1919년, 다시 북경으로 망명한 이회영은 이동녕, 이시영 등과 함께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다가 이듬해 3월, 이동녕, 이시영, 박용만, 신채호, 조완구, 이광, 조성환, 김규식 등과 북경으로 돌아왔다.

북경의 이회영 집은 독립운동가의 사랑방이 되었다. 아들 규창은 "그 당시 국내에서 뜻을 품은 청년들이 북경에 오면 부친을 뵙게 되고, 우리 집에 며칠씩 머물고 갔다"고 회상하였다.

북경에서 이회영과 자주 만났던 인물이 바로 한국 독립운동 인물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대로 한국 독립운동 노선에 주동 인물이었다.

김규식, 김창숙, 안창호, 조소앙 등은 민족주의를 고수했고, 홍남표, 성주식 등은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유자명, 이을규, 이정규, 정현섭, 김종진 등은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또 김원봉, 유석현 등은 일제를 공포에 떨게 했던 의혈단으로 직접 행동하였으니, 북경의 이회영 집은 온갖 성향의 독립 운동가들이 얽히고 설킨 인연의 사랑방이었다.

이 거처에는 시인묵객도 기거했던 바,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글에도 그 시절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북경서 지내던 때의 추억을 더듬자니 나의 한평생 잊히지 못할 한 분의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는 수년 전 대련서 칠십 노구로 민족 독립을 위하여 몸 바치고 이미 고혼이 된 우당 선생이다.

▲ 혁명열사증명서(중화인민공화국민정부 발행)
ⓒ 우당기념관
나는 그 어른을 소개받아서 그 분이 계신 북경으로 갔다. 부모 슬하를 떠나 보지 않았던 19세의 소년은 우당장과 그 어른의 영식 규룡씨의 친절한 접대를 받으며 월여(한 달 남짓) 묵었다.

조석으로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북만에서 고생하시던 이야기며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지는 소식도 거기서 들었는데, 선생은 나를 막내아들만큼이나 귀여워해 주셨다….
(<동아일보> 1936. 3. 13)

삼한갑족의 후예 이회영의 사상적 종착점이 아나키즘이라는 사실은 뜻밖이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1920년대에 50대 중반의 나이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회영은 아나키즘에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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