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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교 앞에서 사라지는 인문사회과학 책방

인문사회과학 책을 전문으로 다루는 책방 <논장>이 문을 닫을 준비를 합니다. 지난주부터 차근차근 책을 출판사로 반품하면서 매장에 꽂은 책들을 치우고 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책을 팔아서 책방을 더는 지켜나갈 수 없기 때문에 문을 닫습니다.

대학교 앞에 있던 수많은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문을 닫았습니다. 나라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는다는 연세대학교 앞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방이 사라졌고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 한국외대, 숙명여대 앞에 있던 인문사회과학 책방도 많이 문을 닫았고 이화여대와 홍익대는 일반 책방마저도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외대 앞에 있던 인문사회과학 책방 두 곳은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아직 책방 세 곳이 남았고 헌책방도 두어 곳이나 남았습니다. 고려대학교 앞 헌책방은 끝내 자리를 떠났고 서강대학교 앞은 거의 책방이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홍익대 앞은 헌책방 하나와 만화책 전문서점이 있고요.

생각해 보면 대학교로서는 자기들이 나라 안에서 내로라 내세울는지는 모를 일. 하지만 책 안 읽는 대학생이 있는 대학교라면 그다지 내로라 내세우기는 좀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여러 인문사회과학 책방 가운데 끝까지 책방 문을 열며 좋은 책을 좋은 독자에게 이어 주던 <논장>. 하지만 이제는 더는 잇지 못하고 옹글게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잠깐 쉬거나 힘을 다시 모둔 다음에 여는 게 아니라 옹글게 문을 닫는다는군요.

▲ 이제는 문을 닫을 책방 <논장> 앞에서. 이 모습도 이제는 '안녕'입니다.
ⓒ 최종규


<2> 성균관대 앞 책방 두 곳

성균관대 앞,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대학로 쪽에는 인문사회과학 책방 두 군데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하나는 <논장>이고 하나는 <풀무질>입니다. <논장>은 몇 번 어려움을 겪었으나 꿋꿋하게 다시 문을 열면서 책손님을 기다렸던 곳.

<논장>이 부대낀 어려움을 알고 여러 사람들이 뜻을 모아 공동출자도 했으며, 지금 자리는 지난 2000년부터 새롭게 책방을 꾸며서 연 곳입니다. 더욱이 출판문화를 새롭게 이루어가고자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최성욱 지음, 책동무 논장 펴냄)도 내던 <논장>이었어요.

그 <논장>이 문을 닫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지난 2월 1일에 얼핏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하고 농담처럼 한 귀로 흘렸고, 2월 5일에 진짜로 문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것 보통 일이 아닌가 보다'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대학로에 갈 때면 가끔씩 들러서 책을 구경하곤 했던 <논장>인데.

가만가만 생각해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널찍하고 알뜰하게 꾸민 <논장>보다 조그맣고 대학교재를 많이 다룰 수밖에 없는 <풀무질>이 오히려 더 힘들지 않을까 보았습니다. 그러나 <풀무질>은 어떻게 보면 '반쪽짜리 인문사회과학서점(대학 교재와 수험서를 더 많이 파니까)'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좋은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풀무질>을 찾는 손님들(대학생)에게 읽으라고 추천하고, <풀무질> 아저씨가 손수 쓴 사회비평과 책소개 글을 나눠주고 이야기를 걸곤 했습니다.

더구나 자리가 좁기 때문에 많은 책을 둘 수 없는 게 안 좋은 점이었으나, 그 안좋음을 오히려 '좋은 책 가운데 더 좋은 책을 알짜로 추려서' 진열하며 나름대로 책손님들을 즐겁게 해왔지 싶어요.

<논장> 또한 여느 대형책방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좋은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갈래에 따라 잘 나누어 놓고, 품절이나 절판되어 시중에서는 찾기 어렵던 책도 알뜰히 꾸려 놓던 곳입니다.

책방을 꾸리는 어느 분 말씀으로는 <풀무질>보다 <논장>이 더 어려웠을 거라고, <논장>이 있는 자리가 너무 목이 좋아 가게세가 비싸고, 대학로와 성균관대를 잇던 구름다리(육교)가 사라지면서 오히려 주변 상권도 책방으로 꾸리기에는 나빠진 것도 큰 까닭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논장> 앞에서 몇 분 동안 서서 책방 앞을 바라보노라면 책방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책방 안을 들여다보거나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가물에 콩 나듯 해요. 책방 안에서 책을 구경하면서 다른 책손들을 살펴보아도 학교에서 읽으라고 하는 추천도서나 과제물로 독후감을 내야 하는 책이나 방송사에서 추천하는 책 말고는 그다지 많이 안 찾는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3> 책 몇 권을 사고

앞으로 다시 책방 문을 열 생각이 없다는 <논장> 아저씨. 지난 2월 14일 토요일 낮에 찾아갔습니다. 책방 안에는 벌써 출판사로 반품하려고 쌓아둔 책이 한 가득. 아직 반품 처리를 하지 않고 책꽂이에 있는 책도 꽤 됩니다.

책방 안에는 <논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깝게 여긴 분들이 꾸준히 들어와서 서운한 마음과 위로하는 말씀을 건넵니다. 학교 앞 좋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사라지는 일이 못내 아쉽고, 좋은 책을 두루 나누던 곳을 더 만날 수 없는 아쉬움에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책을 살펴보려는 분들도 곳곳에서 조용히 책을 봅니다.

▲ <주해 을병연행록> 겉그림입니다.
ⓒ 태학사
저도 아쉬운 마음에 아내와 함께 책방을 둘레둘레 휘둘러보며 책을 살핍니다. 마침 요즈음 애타게 찾던 책 가운데 하나인 <을병연행록>(홍대용 지음)을 주해한 <주해 을병연행록>(소재영, 조규익, 장경남, 최인황 주해, 태학사, 1997)이 보입니다. 무려 842쪽에 이르고 책값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홍대용 선생이 지난날 쓴 옛날 훈민정음으로 되어 있어서 읽기는 까다롭지만 선뜻 고릅니다.

<홍대용과 그의 시대>(김태준 지음, 일지사, 1982)라는 책을 읽으며 늘 보고프던 책이 바로 <을병연행록>이었습니다. <을병연행록>은 김창업 선생이 중국을 다녀온 뒤 쓴 <노가재연행일기> 다음으로 나온 책으로, 그 뒤에 나온 <열하일기>(박지원 지음)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연행기 셋 가운데 하나입니다.

<열하일기>는 대체로 널리 알려졌으나 <을병연행록>이나 <노가재연행일기>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제대로 읽히지도 못했습니다. <열하일기> 못지 않게, 아니 <열하일기>와는 또다른 눈길과 줄거리로 펼쳐지는 <을병연행록>이에요.

이 책은 조선의 선비 홍대용이 청나라 선비 반정균, 육비, 엄성 셋과 사귀며 주고받은 이야기와 서로가 익히는 학문, 새로운 문물, 서양 사정 이야기를 중심으로 차분하게 담아냅니다. 그리하여 그때 조선 선비 가운데 실학파라고 하는 지식인들 세계관을 헤아릴 수 있는 한편으로, 청나라를 바라보는 생각과 갈등과 역사의식도 읽을 수 있어요.

다음으로 <산체스네 아이들>(오스카 루이스 지음/박현수 옮김, 지식공작소, 1997) 세 권을 만납니다. <산체스네 아이들>은 1978년에 청년사에서 '상·하' 두 권으로 나왔던 책입니다. 멕시코에 사는 어느 가난한 집안 이야기를 그린 <산체스네 아이들>은 1950년대 모습 이야기예요. 하지만 1950년대 산체스네는 1970년대에도, 2000년대에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스카 루이스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함께 하고 지켜보면서 기록한 '산체스 집안'은 멕시코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본보기이고, 그이는 가난한 산체스네뿐 아니라 멕시코에서 잘사는 사람이 '물질로는 잘살지만 정신은 가난하게 사는 현실'도 함께 담은 <가난이 낳은 모든 것>(홍성사, 1979 번역)을 쓰기도 했으며, 산체스네 식구 가운데 하나인 과달루뻬가 죽은 일을 앞뒤로 벌어지는 가난한 집안 사람들 생각과 삶과 모습을 담은 <산체스네의 죽음>(청년사, 1979 번역)도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어요.

그 가운데 <산체스네 아이들>이 스무 해 만에 다시 태어난 셈인데 여태까지 이 책이 새로 나온 줄을 몰랐군요. <산체스네 아이들>은 헌책방을 다니며 '하권'만 겨우 찾고 '상권'은 아직 못 찾아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참 잘 되었습니다.


<4> 이제 마지막일까?

<논장>은 수요일쯤이면 반품 갈무리가 거의 끝난다고 합니다. 이날(14일) <논장>에서 책을 보고 나와서 <풀무질>에 잠깐 들러서 책을 보았습니다. 한 시간쯤 책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논장> 앞을 다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논장> 문은 굳게 닫혀 있더군요. 쇠그물문이 내려져 있습니다. 이제는 손님을 받기 어려워 일찌감치 문을 닫으셨지 싶어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날 찾아간 게요. 앞으로는 참말로 책방 <논장>을 못 만날지도 모르겠어요. 아쉽고 쓸쓸합니다. 그래도 이게 현실이고 운명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겠죠.

장사가 안 되고, 살길이 어려우면 책방이든 다른 어떤 가게이든 문을 닫기 마련이에요. 다만 대학교 앞에 있는 책방들이 이렇게 하나둘 문을 닫고 사라진다는 모습이 참 안타깝습니다. 헌책방도 문을 많이 닫지만 인문사회과학 책을 다루는 책방도 참 많이 문을 닫습니다.

날은 마침 '밸런타인데이'라고 거리마다 초콜릿 파는 가게 가득하고, 대학로를 걷는 사람들 손과 손에는 꽃과 초콜릿 바구니가 하나쯤은 들려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 손에 초콜릿 말고 책이 한 권씩 들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몇 만원 하는 꽃과 초콜릿을 사는 돈을 조금 아껴서 오천원짜리 책 하나라도, 삼천원짜리 시집 하나라도 사서 읽을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상업주의와 소비주의가 맞물려 기업체들이 밸런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만들어 내는데, '책날(북 데이)' 같은 건 왜 안 만들까 하고요.

'책날'이 한 해에 하루 있으면 너무 적은 듯하고, 한 달에 한 번쯤, 그러니까 새달 첫날이나 마지막 날을 '책날'로 삼아서 동네에 있는, 또 대학생들은 대학교 앞에 있는 책방을 부지런히 찾아가서 우리 마음을 살찌우고 알뜰히 다독이는 좋은 책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헌책방만큼 문을 많이 닫는 인문사회과학 책방 운명을 돌아보며 철없는 생각일지 모르고, 헛된 꿈일지 모르나 '책날'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 봅니다.

<논장>이 문닫고 사라진 자리에는 어떤 가게가 들어설까요?

덧붙이는 글 | - 헌책방이 아닌 인문사회과학 책방 <논장>이지만, 헌책방과 비슷한 운명을 지녔다는 느낌이 들어서 "헌책방 나들이" 쉰아홉째 이야기로 <논장>이 문을 닫는 이야기를 올립니다.

- 이 글은 제 개인 누리집(http://최종규)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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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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