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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단강(牧丹江) 편지>를 부른 이화자(李花子)(1918(?)-1950(?))는 정확한 생몰연대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은 많이 잊혀져 버렸지만, 광복 이전에는 실로 대단한 인기를 누린 가수였다. 1936년에 뉴코리아레코드에서 데뷔한 이후 폴리돌레코드를 거쳐 1938년부터는 오케레코드에서 전속가수로 활동했는데, 가수가 되기 이전 이화자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보통학교를 마친 뒤 기생이 되어 인천권번 소속으로 있었다는 정도만이 확인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 볼 때 그다지 고운 얼굴도 아니었던 이화자가 그토록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은 개성적이면서도 뛰어난 노래 솜씨 때문이었다. 흔히 청승맞은 색기(色氣)가 흘러넘친다는 평을 받았던 그의 목소리는 현재 음원이 남아 있는 몇몇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신민요의 경우에는 그를 능가하는 가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이화자의 노래 실력은 출중했다.

하지만 ‘신민요의 여왕’이라 불리며 1930년대 말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화자도 전쟁이 격화된 일제 말기에는 신민요 대신 어울리지도 않는 군국가요를 불러야 했다. <목단강 편지> 같은 곡은 군국가요로 볼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는 해도 아직 그렇게 노골적인 노래는 아니었으나, 그보다 나중에 나온 <마지막 필적>, <결사대의 아내> 등은 이화자가 부른 군국가요로 확실히 거론할 수 있는 것들이다.

1942년 9월에 조명암(趙鳴岩) 작사, 이봉룡(李鳳龍) 작편곡으로 발표된 <마지막 필적>(음반번호 31126)은 가사나 음원이 아직 공개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오케레코드에서 낸 선전 문구를 보면 군국가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전에서 ‘전지(戰地)에서 온 마지막 필적(筆跡)! 군국(軍國)의 아내는 아니 울 수 없고 아니 감사(感謝)할 수 없다’라고 했으니, 일본군으로 출전한 남편이 마지막으로 보내 온 편지를 읽고 울며 감사하는(아마도 충성, 나랏님의 은혜 등을 운운하며) 아내의 심정을 노래한 것임이 분명하다.

조금 더 늦게 1943년 1월 신보로 나온 <결사대의 아내>(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편곡, 음반번호 31145)는 제목에서부터 벌써 노골적인 군국가요의 모습을 보인다. 가사는 <마지막 필적>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일본군 결사대로 출전하기 전에 죽음을 앞두고 써 보낸 남편의 마지막 편지를 보면서 나랏님께 바친 그 사랑에 감격해 우는 아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상처의 붉은 피로 써 보내신 글월인가/ 한 자 한 맘 맺힌 뜻을 울면서 쓰셨는가/ 결사대로 가시던 밤 결사대로 가시던 밤 이 편지를 쓰셨네
세상에 어느 사랑 이 사랑을 당할쏜가/ 나랏님께 바친 사랑 달 같고 해와 같아/ 철조망을 끊던 밤에 철조망을 끊던 밤에 한 목숨을 바쳤소
한 목숨 넘어져서 천병만마(千兵萬馬) 길이 되면/ 그 목숨을 아끼리오 용감한 님이시여/ 이 아내는 웁니다 이 아내는 웁니다 감개무량 웁니다


(유성기음반에 실린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결사대의 아내>는 일제 말기에 발표되었던 군국가요들 가운데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복각이 이루어진 곡이기도 하다. 지난 1996년에 신나라레코드에서 제작한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에 수록되어 있는 이화자의 노래 19곡 가운데 마지막 곡이 바로 <결사대의 아내>이다.

비교적 음질도 양호한 <결사대의 아내>를 듣고 있자면 이화자의 목소리에서 특유의 청승맞음을 잘 느낄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런 노래를 짓고 불러야 했던 당시 상황에서 더없는 처량함을 느끼게도 된다. 죽음을 예감한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조차도 나랏님, 즉 일본 천황에게 바친 사랑의 표현으로 돌려야 했던 아내의 처지는 가사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군국의 결의와는 다른 서글픔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당시 이 노래를 들었을 조선 민중들이 가사에 나오는 대로 감개무량했을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 서글픔을 느꼈을지도 짐작하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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