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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옛 유행가를 희화해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그때 단연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한동안 일대 화제가 되었던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오빠는 풍각쟁이야 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뭐'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오빠는 풍각쟁이>였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익살맞은 가사에 딱 어울리는 독특한 목소리로 <오빠는 풍각쟁이>를 불렀던 가수가 박향림(朴鄕林)(1921-1946)이다.

1937년 가을에 태평레코드에서 박정림(朴貞林)이란 이름으로 데뷔한 박향림은 이후 콜럼비아, 오케 등의 음반회사를 거치며 일제시대 말기 최고의 인기가수로 활동했다. 불행히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잊혀지기는 했지만 독보적인 기교의 목소리를 구사하며 만요(漫謠)와 블루스풍 노래에 장기를 보였던 그의 자취는 우리 가요사에 뚜렷이 남아 있다.

일제 말기에 손꼽히는 인기가수였던 만큼 박향림도 역시 군국가요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김다인(金茶人)이 작사한 <진두(陳頭)의 남편>(박시춘 작곡·1942년·오케레코드 31091)을 박향림이 불렀다는 것을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밖에도 <총후(銃後)의 자장가>, <화랑> 같은 노래 역시 박향림이 부른 군국가요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조명암(趙鳴岩)이 작사하고 김해송(金海松)이 작곡한 <총후의 자장가>는 <진두의 남편>보다 조금 늦게 오케레코드에서 발매했는데(음반번호 31097) 현재 전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1943년에 오케레코드에서 군국가요들을 모아 만든 편집음반인 <오케가요극장>(음반번호 31175)에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어 있어 일부나마 확인할 수는 있다.

영화배우 유계선(劉桂仙)이 낭독한 대사와 함께 녹음된 <총후의 자장가> 제1절 가사는 다음과 같다.

(대사)아름다운 나라의 풍속이다 죽음을 겁내지 않는 병정의 결심과 그 어머니와 혹은 부자의 각오 그 하나인 총후의 자장가를 들어 보자
울지 마라 아가야 우리 애기 잘도 자/ 아버지는 용감하게 지원병으로/ 총을 메고 칼을 차고 떠나가셨다/ 떠나가신 ** 땅은 먼 곳이란다
(유성기음반에 실린 내용을 직접 채록한 것이다)

티 없는 동심을 달래는 자장가마저 군국의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동원하고 있는 점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던 일제의 극렬한 전쟁 광기를 여실히 보여 준다. 사실 자장가의 형식을 빌어 만들어진 군국가요는 일본에서 이미 <戰場の子守唄>, <軍國子守歌>, <軍國子守唄>, <大陸の子守唄> 등 허다한 작품이 나와 있었고(子守歌, 子守唄는 자장가를 뜻하는 말이다), <총후의 자장가>는 그러한 일본의 예를 참작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박향림이 부른 노래 가운데 군국가요로 짐작되는 또 다른 작품으로 <화랑>이라는 곡이 있다. 역시 조명암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한 <화랑>은 오케레코드에서 1942년 8월 신보로 발매되었는데(음반번호 31123), 아직 음원이나 가사가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오케레코드에서 간행한 광고책자에 실려 있는 선전문을 보면 그 역시 군국가요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랑>의 제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의 화랑을 이르는 것인데, 광고책자에 실린 선전문은 '신라(新羅)의 무사도(武士道)의 화랑(花郞)을 읊은 시(詩)와 노래, 고전(古典)의 전국반(戰局盤)!'이라는 내용으로 <화랑>을 소개하고 있다. <총후의 자장가>가 총력 전시체제 구축을 위해 동심을 끌어들인 것이라면 <화랑>은 역사를 끌어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차후 가사를 확인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겠지만, 신라시대 화랑의 이념으로 채택되었던 사군이충(事君以忠)이나 임전무퇴(臨戰無退)가 일제 말기에 나온 군국가요 <화랑>에서는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고 일본군으로 출전해 장렬하게 희생하는 것을 강요하는 이념으로 변질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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